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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 한국적 흥행 법칙이 작용했다!


입력 2016.10.21 09:40 수정 2016.10.21 09:41        김헌식 문화평론가

<김헌식의 문화 꼬기>이 심각한 시대에 진정으로 웃을 수 있게

초특급 반전 코미디 '럭키'가 역대 최고 오프닝을 기록했다. ⓒ 쇼박스

2014년 여름, 영화 '명량'이 천 칠백만 관객을 동원하며 진지하게 분위기를 몰아갈 때 또다르게 진지했던, 영화 '해무'는 전문가들의 호평을 받았지만 흥행은 별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낮은 평가를 받았던 영화 '해적'이 높은 흥행 기록을 세웠다. 흥행 이유는 비교적 간단했다. 심각하고 진지한 영화들 사이에서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영화가 바로 '해적'이었다. 세월호 사건은 매우 충격을 주었기 때문에 온 국민이 침잠되어 있었던 때에 여름철 무더위를 유쾌하게 날릴 수 있는 영화가 필요했다.

2015년 여름, 영화 '암살'이 흥행을 했는데 역시 진지한 내용이 전체적인 흐름을 유지했다. 이때 주목을 받았던 영화는 '베테랑'이었다. 웃음과 통쾌함에 초점을 맞춰 흥행에 성공했다. 그러나 진지한 영화 그자체였던 '협녀'는 막대한 제작비와 전도연, 이병헌, 김고은이라는 스타 파워에도 불구하고 흥행에서 참패할 면치 못했다. 하지만 11월에 개봉한 '내부자들'은 이병헌, 조승우의 유쾌한 결말로 19금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500만 관객 동원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확장판을 만들어 재개봉하기까지 했다. 영화에서 백윤식의 대사인 '개돼지' 발언은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화 되기도 했다.

2016년 여름, 영화 '밀정'과 '부산행'이 주목을 받았다. 하나는 유행하는 일제 시대 배경의 영화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형 좀비재난 영화로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이 영화들은 모두 진지한 영화들이었다. 오히려 심각한 영화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었다. 영화 '곡성'은 악귀에 대한 영화로 강력한 진지함을 넘어 괴기스러운 공포감을 주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도 전쟁오락영화 방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진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실존 왕가의 여성이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덕혜옹주'는 이야기 자체가 암울한 시대의 우울을 그대로 담아낸 작품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좀 더 관객들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는 영화가 마땅하지 않았다.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웃음을 배합했지만, 온전히 유쾌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결국 주인공 김정호(차승원)는 유쾌한 웃음을 짓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극장은 여름 휴가철에서 추석에 이르기까지 웃음을 주는 영화를 선보이지 못하고, 쎈 청불 영화 유행의 코드에 합류에 나선 영화 '아수라'에 이른다. 정우성, 황정민, 곽도원, 주지훈 등 충무로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출동했고, '무한도전'도 분위기를 띄웠지만, 흥행은 예상만 못했다. 사회적 구조적 모순을 깊숙히 다뤘다는 평가를 들었지만, 그 진지함을 지나 잔혹함이 피로증을 유발할 수 있었다.

결국 영화 '럭키'라는 저렴한 제작비의 유해진 원톱 영화에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물론 이 영화는 확실한 일본 원작을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한국판이 일본 영화보다 낫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럭키'가 코미디 영화의 새로운 기록들을 써내려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영화 '럭키'는 복합 장르를 표방하는 B급 영화다. A급 영화들이 진지함으로 잔뜩 무게를 잡고 있을 때, 영화 '럭키'는 차라리 그냥 아무 생각없이 볼 수 있게 했다. 영화 '아수라'에서는 매우 잔혹한 살해 장면들도 영화 '럭키'에서는 연극적으로 다루거나 희화화 한다. 마치 인생이 한편의 연극과도 같다는 점을 드러내주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물론 당연히 이 영화에서 다뤄내는 이야기들이 현실적인 것이라 말하지 않으며 관객들도 이러한 점을 알고 본다.

유해진이라는 캐릭터가 이미 알리고 있듯이 현실에서 이뤄질 수 없는 대리만족의 느낌을 충족시키는 데 충실하려 한다. 어차피 이뤄질 수 없는 것들을 한바탕 유쾌하게 재밌게 구성했을 뿐이다. 대부분 영화적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때, 그 실제 현실의 결핍을 넘어서서 웃음으로 채워주었던 것이다. 그동안 진지한 메세지에 피로증을 가지고 있던 관객들에게 청량감을 준 셈이다. 영화 '춘몽'의 주제의식인 인생이 일장춘몽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작품이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을 할만한 작품이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상이란 뭔가 그럴듯한 주제의식이 진지하게 점철되어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코미디오락영화에게 권위 있는 수상을 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수준 낮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일반 대중관객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영화적 소비 행위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천만 관객을 목표로 인위적인 관객 몰이를 위한 대규모 마케팅이 이뤄질 리가 없다. 관객들이 영화에 사육당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어쨌든 한국 극장 관객은 진지한 영화에 감정이 소모되는 현상이 있다. 감정의 순환이 필요하다. 노래방에서 진지한 노래만 불러서도 아주 가벼운 노래들만 불러서 되는 게 아니라 적절하게 순환을 해야 한다는 점이 영화를 포함한 문화 콘텐츠 수용과 소비의 심리적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계속 심각한 메세지의 영화가 많을 때, 피로증이나 감정 소진 현상이 벌어진다는 점을 알고 개봉 시기를 조정하는 곳은 제작자, 유통 배급사, 그리고 관객들에게도 필요한 일이다. 모두 소중하고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는 작품들이 적절한 타이밍에 닿으면 그 진정한 가치를 제대로 찾고 공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적 가치 여부를 넘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김헌식 기자 (codess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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