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 제국’ 첼시의 역사는 2003년 팀을 인수한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1905년 창단한 첼시는 로만 시대를 맞이하기 이전 리그 1회, FA컵 3회, 컵대회 2회, UEFA컵 위너스컵 2회(현재 폐지) 우승이 전부였다. 하지만 아브라모비치가 구단주에 오른 뒤에는 리그 4회, FA컵 4회, 리그컵 3회, UEFA 챔피언스리그 1회, UEFA 유로파리그 1회 우승이라는 걸출한 성적을 남긴다.
98년간 8차례의 우승이 전부였던 첼시가 13년간 13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린 셈이다. 그만큼 아브라모비치가 첼시 역사에 남긴 족적은 뚜렷하다. 그런 그에게도 피할 수 없는 비판이 있으니, 바로 구단 운영을 함에 있어 전횡을 휘두른다는 점이다.
사실 첼시는 EPL 구단 중 다소 독특한 지휘 체계를 갖추고 있다. 대부분의 잉글랜드 구단들은 감독이 선수단 관리를 넘어 선수 영입, 재계약 여부까지 맡는 것이 일반적이다. 심지어 2군과 유소년 팀에도 깊숙이 관여한다. 그야말로 전권을 부여받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첼시는 구단주와 보드진, 그리고 감독 사이에 ‘디렉터’라는 특이한 직책이 존재한다. 메이저리그에 빗대면 단장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의 역할은 선수의 영입과 재계약 등을 진행하는 것이다.
실제로 첼시 선수들이 재계약을 하거나 새로 영입된 선수들이 사진을 찍을 때 감독이 아닌 낯선 인물들과 함께 하는데 이들이 바로 디렉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과거 아브라모비치의 비서였던 마리나 그라노브스카이아라는 여성이다.
현장과 팀 운영을 분리한 첼시의 정책은 빛과 그림자가 분명했다. 감독 입장에서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선수를 영입하는데 한계가 있었고, 심지어 원치 않는 선수가 첼시 유니폼을 입기도 했다. 안드리 셰브첸코와 페르난도 토레스가 대표적이다.
게다가 감독과 디렉터간의 신경전, 즉 힘겨루기도 불가피했다. 선수들과의 불협화음으로 쫓겨나다시피 팀을 떠난 펠리페 스콜라리,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 감독을 비롯해 조제 무리뉴 감독은 직접적으로 보드진과 잦은 마찰을 일으킨 사령탑이었다.
반면, 디렉터가 계약 실무를 담당하다 보니 보다 전문적이고 효율적인 선수 영입이 가능해졌다. 또한 감독이 팀을 떠나도 구단이 추구하는 방향은 변함없기 때문에 선수들이 동요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 부임 후 첼시 이적시장. ⓒ 데일리안 스포츠
첼시의 보드진이 최근 돈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썼는지는 이적시장에서의 지출로도 드러난다. 첼시는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팀을 인수한 뒤 4~5년간 이적시장의 지각변동을 일으킬 만큼 엄청난 돈을 퍼부었다. 이후 글로벌 경제위기와 함께 구단주가 자금난에 직면하자 약 2년간 지갑을 닫게 된다.
그리고 2010년대에 들어 다시 돈을 풀기 시작한 첼시는 2011-12시즌, 그토록 염원하던 UEFA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빅이어를 차지한 첼시의 정책은 놀라울 정도로 변화한다. 여전히 이적시장에서 거금을 풀었지만 그만큼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잘 사고 잘 파는 전형적인 ‘거상’의 모습을 갖춰나갔다. 물론 이 시기 UEFA가 재정적페어플레이(FFP) 규정을 내밀어 긴축 재정이 불가피했다는 외부 요인도 있었다.
잘 운영되던 첼시의 이적시장 정책에 균열이 발생한 것은 다름 아닌 지난 시즌이다. 첼시는 무리뉴 감독과의 불화 등 내홍을 겪으며 전 시즌 우승팀이 10위로 떨어지는 굴욕을 맛봤다. 여기에 레스터 시티라는 중소 클럽이 우승을 차지하며 프리미어리그 판도는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든 모습이다.
돈을 쓰지 않아도 우승할 수 있다는 명제가 증명됐음에도 첼시를 비롯한 맨체스터의 두 팀과 리버풀, 심지어 아스날과 토트넘까지 돈 보따리를 풀었다. 난세를 돈으로 바로 잡겠다는 암묵적 합의가 이끌어낸 결과였다.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