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지도부, '거국내각'에 사활 걸렸나?
거국내각에 야당과 청와대의 합의 도출해야 존재이유 확보
전문가 "국민을 상대로 거국내각 당위성 설파가 중요"
그동안 야권과 여권 일부에서 나오던 거국 중립내각론을 새누리당이 30일 전격 수용한 뒤 청와대를 향해 거국내각 구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당초 거국내각을 외치던 야당이 돌연 거부 입장으로 돌아섰고, 청와대도 선뜻 중립내각을 받아들일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어 새누리당 지도부는 곤혹스런 처지다. 따라서 거국내각이라는 절충점으로 야당과 청와대의 합의를 이끌어내야 지도부가 활로를 찾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성원 새누리당 대변인은 이날 "책임있는 집권 여당으로서 우리 새누리당이 좀 더 선도적으로, 적극적으로 이 사태를 해결해 나가자 이런 큰 뜻에서 거국내각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여권은 그동안 정국의 혼란만 야기시킨다며 거국내각 구성에 반대해왔으나 사태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거국내각을 받아들인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전 대표, 손학규 전 상임고문, 김부겸민병두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 등은 대통령이 2선으로 물러날 것을 주문하며 중립내각을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야당은 새누리당의 이번 결정에 '국면전환용 꼼수'라며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선 진실규명'을 주장하고 거부 의사를 밝혔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31일 거국내각은 무엇을 전제로 하든, 진상규명이 먼저여야 하는 것이고 국권을 유린시키고 헌정질서를 교란시킨 데 대한 진상규명이 선행돼야 한다"며 "헌법상 아무 근거가 없는 거국내각은 정치적 혼란으로 더 이상 대통령이 헌정질서를 이끌어갈 자격과 상황이 되지 못할 때 정치적 지도자 간의 합의로 분위기가 조성돼야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야당이 입장을 바꾼 것은 여당이 거국내각을 통해 최 씨의 국정농단 파문이 커지는 데 따른 국면전환을 꾀하려 한다고 봤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침몰하는 '박근혜호'에 야권이 굳이 몸을 실을 필요가 없다는 내부 분위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도 "거국내각 구성에 의하면 최 씨 귀국 배경을 밝히는 국면이 인사 국면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응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야당은 자기들이 먼저 제안한 것을 우리 당이 수용하니까 바로 걷어차는 딴죽걸기, 갈지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며 "끊임없이 국정을 혼란스럽게 하고, 대통령을 끌어내려서 하야정국, 탄핵정국으로 몰고 가고, 대한민국을 헌정중단·국정중단·아노미 상태로 만들겠다는 것 아니냐"고 힐난하고 있다.
거국내각은 여야 합의로 총리 후보를 추천하면 대통령이 이를 임명하고, 총리가 여야를 아울러 내각을 구성해 국정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거국내각은 의원내각제 성격이 가미된 정치 체제로, 대통령의 권한이 대폭 축소되는 대신 총리를 중심으로 하는 내각이 국정을 주도하기 때문에 대통령은 사실상 국정 2선으로 물러나게 된다. 대통령은 외치를 맡고 총리가 내치를 담당토록 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다.
그러나 대통령제를 채택한 나라의 헌법에서 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내각이 대통령의 권한을 넘어설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또 집권세력이 모든 권한을 내각에 넘겨줘야 한다는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수용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뒤따르고 있다.
새 총리 후보군을 놓고는 벌써부터 전직 총리와 장관, 거물급 정치인들까지 다양한 후보군이 오르내리고 있다. 야당은 적어도 그들이 용납하는 인사가 총리가 돼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총리를 전면에 등장시킨다는 것은 곧 박 대통령의 힘을 약화시킨다는 것인데 여권 인사가 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여야에선 손학규 전 상임고문이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와 함께 김종인 전 더민주 대표, 박지원 위원장,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김황식 전 총리 등도 물망에 오르고 있다. 강봉균·진념 전 경제부총리 역시 후보군에 포함된다.
거국내각 선택한 여당, 야당 설득할 방안은 무엇?
새누리당이 대통령 권한의 대폭 축소를 감수하면서도 거국내각을 주장하고 나선 것은 일종의 고육책으로 풀이되고 있다. 사실상 당이 대통령을 버리고 가는 모양새로도 비춰질 만큼 특단의 조치다. 그러나 이 속내에는 동력을 잃은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돌파구로 야권과 공동 책임을 지는 국정 운영을 염두에 두고 박 대통령이 이미 제안한 '개헌'을 고리로 내각제를 지지하는 야권 일각을 포섭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거국내각을 출범할 경우 총리나 장관 임명 과정에서 여야가 다시 충돌하며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을 예상해 본질을 흐리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것도 야당이 갖고 있는 의혹의 시선이다.
결국 여당의 거국내각 수용은 실현 가능성보다는 코너에 몰린 정국에서 어떻게든 탈피해보자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는 평가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31일 '데일리안'에 "여당이 거국내각을 수용한 것은 전격적인 의외의 결정이었다"면서도 "표면적으로 드러난 그대로를 믿을 순 없다. 여당으로서도 어떤 것이 자신들에게 도움됐을지 철저히 따져봤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야당은 여당의 거국내각 제안을 일거에 거절했고, 그 바람에 돌파구를 마련해보려던 여당은 답답한 지경에 처했다. 여당 지도부로선 어떻게든 절충점으로 야당의 입장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31일 오전 여당의 정진석 원내대표가 여야 3당 원내대표 회동을 시작도 하기 전에 야당에게 서운함을 표하며 자리를 박차가 나간 것도 여당이 얼마나 난처한 상황에 처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당 지도부는 거국내각에 여야 합의를 이끌어 내야 수세국면 탈출이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본보에 "대통령 탈당이 선행되지 않은 거국내각 구성은 의미가 없다. 여당의 최근 행태를 보면 국민을 위한 행동이라는 진정성을 찾기 힘든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엄 소장은 "여당은 비상 사태에 대응책을 한 발짝 먼저 내놓는 게 아니라 국민 여론을 확인하고 그에 맞게 한 발짝 뒤늦게 대응책을 내놓는 식이다. 이런 식이라면 야당이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이정현호가 퇴진하고 새 지도부가 국민을 위한 진정성을 갖고 재논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김용철 부산대 교수도 "여당은 야당을 설득하기 이전에 국민들에게 거국내각의 당위성을 알리고 동의를 구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최순실 씨의 행위에 대한 진상 규명이 우선인데 거국내각만 이루면 모든 게 끝나는 것처럼 여기는 여당의 행태가 이해되지 않는다"며 "새누리당이 왜 거국내각을 하려고 하는지 정확히 잘 모르겠다. 우선 여당은 국민들을 상대로 거국내각의 당위성을 설파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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