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권주의 청산, 무계파 금단증세부터 극복해야
반기문 국민통합, 경선은 피하는 게 상책
새누리 보수본류, 새 것과 헌 것의 양자택일
정치권 세 개의 메시지와 세 개의 난제
반기문 국민통합, "경선은 피하는 게 상책"
새누리 보수본류, "새 것과 헌 것의 양자택일"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메시지는 민심의 향배(向背)를 좌우한다. 정당과 정치인의 비전 또는 지향점이 담겨 있는 정치 메시지가 시대정신과 맞물려 국민 공감을 얻게 되면 선거승리에 이르는 첩경이 열릴 수 있다.
반기문의 메시지, 국민통합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귀국 일성으로 “분열된 나라를 하나로 묶어 세계 일류 국가로 만드는 데 제 한 몸 불사를 각오가 돼 있다”면서 ‘국민통합’의 메시지를 던졌다.
좌우익으로 갈려 피를 흘렸던 해방공간에서부터 보수와 중도, 진보도 모잘라 각종 계파로 갈라진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의 분열상과 그에 따른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인식하고 있는 정치인이라면 국민통합은 누구나 관심 갖는 가치다. 그러나 18대 대선 득표율 ‘52대 48’의 숫자가 말해주듯 반반으로 쪼개진 민심 속에서 호락호락 달성할 수 있는 목표는 아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각종 선거마저 국민 분열에 일조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안타까운 현실이다.
국민통합을 위해서라면 경선은 피하는 게 상책
선거제도는 엘리트의 무력이나 술수를 배제하고 국민 총의를 모아 리더를 뽑는다는 점에서 인류 지성이 만들어낸 걸작품이다. 그러나 선거전이 치러지는 동안 유권자들이 후보를 중심으로 피아(彼我)로 갈리고 편가르기가 이뤄지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차라리 선거가 없었다면 잠복해 있을 이질감과 차이점이 선거를 통해 수면 위로 불거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긁어서 부스럼 만드는 격이다. 선거기간 동안에만 발현되는 ‘반짝’ 증세로 끝나면 다행인데, 선거문화가 성숙되지 못한 사회에선 후유증이 오랫동안 남는다. 유권자 수가 적은 선거일수록 더욱 그렇다.
국민분열의 축소판인 여의도 정치권의 분열상에는 대선후보 경선이 중대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10년간 보수정권 하에서 '친이 vs 친박', '친박 vs 비박' 계파가 갈라져서 계파 이익을 우선시하고 진영논리에 빠져있었던 자화상을 되돌아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대부분의 후보들이 250개 전후의 지역구 원내외 당협위원장 리스트를 펼쳐 놓고 피아를 꼼꼼이 체크하면서 선거운동을 벌인 탓이다. 선거가 끝난 뒤에는 내편 네편 꼬리표가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닌다.
그런 의미에서 반 전 총장이 국민통합을 이루려면 본선 전에 경선을 최소화하는 정치 역량이 요구된다. '친반(親潘)', '비반(非潘)' 식의 세력 분화를 막아 적어도 보수진영의 분열 방지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어김없이 “본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철저한 검증과정을 거쳐야 하고 그렇게 해야 흥행 효과도 살릴 수 있다”는 반론에 부닥치게 된다. 한편으론 타당한 주장일 수도 있지만, 경선을 통해 자기 몸집을 키우기를 바라는 경쟁후보의 허울 좋은 핑계일 수도 있다. 경쟁자가 단순히‘페이스 메이커’를 자처하지 않는 이상 상대를 깎아내리는 네거티브 공격이 불가피하고 경선이 끝나면 쉽게 아물지 않는 감정의 골만 남는다. 국민통합을 위해서라면 경선은 가능하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바른정당 메시지, 패권정치 청산
바른정당은 ‘패권정치 청산’을 기치로 내걸었다. 정병국 창당준비위원장은 지난 12일 서울시당 창당대회에서 “지긋지긋한 ‘패권주의 청산’, 사당(私黨) 청산하고 그야말로 국민과 당원이 중심이 되는 진정한 정당을 만들기 위해서 이 자리에 섰다”고 역설했다. ‘패권’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분야에서 우두머리나 으뜸의 자리를 차지하여 누리는 공인된 권리와 힘’이라고 다소 가치중립적으로 적혀 있다. 그러나 정치권의 패권정치는 최강 세력이 하위 세력들을 억압하고 가치 배분 과정에서 이들을 배제함으로써 권력을 독식한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지난 1997년 17대 대선 이후 친이세력이 패권정치의 칼날을 휘둘렀고, 2012년 18대 대선 이후에는 친박세력이 똑같은 행태를 보였다. 18․19․20대 총선을 앞두고 어김없이 되풀이된 ‘공천학살’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정부와 공공기관의 요직 배분에서도 패권세력이 거의 독식하다시피했다. 지금 바른정당 의원들 중에서 이런 패권정치의 과오(過誤)로부터 자유로운 자는 얼마나 되겠는가? 한때는 친박 또는 친이 계파 패권주의가 제공하는 단맛에 취해 계파의 일원이 된 것을 즐기지는 않았던가? 공천심사에서 특혜를 누리기 위해 패권자의 측근임을 자임하지는 않았던가? 당분간 패권과 떨어져 있어야 하는 형편 때문에 패권주의 청산을 내걸었다는 지적도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패권주의 청산 위해선 계파의 유혹과 무계파의 금단증세 극복해야
정치권에서 패권주의를 청산하기 위해선 ‘줄세우기’와 ‘줄서기’ 관행부터 없애야 한다. 바른정당이 패권주의를 청산하기 위해선 기존 잠룡들은 물론이고 반 전 총장과 뭉치는 계기가 있더라도 후보자 중심의 세력 형성은 스스로 거부해야 한다. 특정 계파가 만들어지면 구성원들끼리 배타적 이익을 추구하게 되고, 권력을 잡게 되면 패권으로 변질되기 마련이다. 계파의 유혹과 무계파의 금단증세를 극복할 수 있느냐에 패권주의 청산의 성패가 달려있다.
새누리당 메시지, 인적청산과 보수본류 회복
분당(分黨)의 풍파를 겪은 새누리당은 “인적청산을 완수하고 보수본류의 위상을 되찾겠다”고 선언했다. ‘친박당’, ‘최순실 부역당’이라는 오명을 씻어내고 환골탈태 수준으로 당을 쇄신하는 작업이 급선무다. 그렇게 되면 경쟁력 있는 대권후보를 영입할 수 있고 정권 재창출도 기대할 수 있는 활로가 열릴 것이다.
이를 위해 인명진 비대위원장은 친박 색채가 강한 ‘주류핵심’들을 겨냥해 자진탈당을 압박해왔고 그들과 일촉즉발의 대결국면까지 갔다왔다. 서청원 ․ 최경환 ․ 윤상현 의원 등은 자진탈당을 거부하고 있지만 오래 버티기는 힘든 모양새다. 인 위원장은 정주택 신임 위원장을 중심으로 윤리위 구성을 서둘러 마친 뒤 강제 출당도 불사하겠다는 태세다.
그러나 주류핵심의 출당이 모두 관철된다 하더라도 친박당의 이미지를 충분히 벗을 수는 없다는 게 주위 지적이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전임 이진곤 윤리위원장 체제에서 박 대통령 징계가 추진됐으나 윤리위 인적구성이 달라지면서 좌절된 바 있다.
둘 다 가질 수 없다는 게 새누리당 딜레마
윤리위가 16일 첫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지만 박 대통령 안건은 다루지 않을 전망이다. 앞으로도 다룰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새누리당의 핵심 지역기반인 대구경북(TK)과 부산경남(PK) 민심이 그렇게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최순실 국정농단에 분개해 박 대통령에 등을 돌리고 있지만 어느 순간 달라질 수 있는 가변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만일 역풍이라도 불게 되면 TK와 PK 지역은 발원지가 될 수밖에 없고 새누리당은 직접 영향권에 들게 된다.
그렇다고 대선은 다가오는데 박 대통령을 마냥 끌어안고 있을 수도 없다. 친박 '때'를 제대로 벗겨내지 못한 정당에 경쟁력 있는 대권주자가 들어설 일은 만무하다. ‘불임정당’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최악의 경우 야당(野黨) 할 각오를 해야 한다. 둘 다 얻을 수는 없다는 게 새누리당의 딜레마다. 새 것과 헌 것의 양자택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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