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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을 잡으려는 정치지도자에 국민들은 속고 있다”


입력 2017.02.02 10:22 수정 2017.02.02 10:46        이상준 기자

반기문, 무조건 비난과 속여야 한다는 메카니즘 이해 못해

포퓰리즘 정책, 서민들의 삶이 더욱 어려워진다는 건 사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일 국회 정론관에서 돌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회견장을 나가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난국 앞에서 정치지도자는 국민들은 목전 이익에 급급한 모습에 많은 분들이 개탄과 좌절감을 표명했습니다...(중략)...일부 정치인들의 구태의연한 이기주의적 태도 실망했습니다...(중략)...정치권은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이러한 독존 태도를 버려야합니다. 우리 후세에 물려주기 위해서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묵묵히 해나가야 합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지난 1일 대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하면서 내뱉은 소회의 일부 발언이다.

지난달 귀국한 반기문 전 총장은 정치교체를 외치며 한국 정치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불과 20일 만에 대선 중도포기를 선언한 것. 10년간 ‘세계의 조력자’로 불리는 유엔사무총장을 맡으며 국제적인 경험을 쌓았지만, 정치에서는 새내기였던 반 전 총장은 결국 현실 정치의 벽을 넘지 못했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정치 초보 반기문, 현실 정치의 벽 못 넘었다”라는 헤드라인으로 조롱 섞인 해석을 쏟아내고 있다.

평생을 외교 관료로 살았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귀국 직후부터 ‘직업 정치인’이 겪어야 할 매서운 현실과 부닥쳐야 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일거수일투족이 생중계됐고 비판적인 뉴스도 함께 쏟아졌다.

유엔사무총장 직에서 내려오자마자 유엔 결의안을 무시하고 한 나라의 대통령 선거에 도전해도 되느냐는 따가운 시선과, 조카 등 친인척을 둘러싼 잇단 의혹 제기도 예상하지 못한 장벽이었다. 또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초보자가 당적 없이 홀로 광야에 선 것도 패착이었다. 대선주자로서의 반기문을 정치적, 경제적으로 보호해줄 울타리가 없었던 것이다.

‘정치 교체’를 외치던 반 전 총장은 결국 냉혹한 현실 정치의 벽을 넘지 못하고 3주 만에 대통령선거 출마의 뜻을 접었다.

반기문 전 총장은 “정치지도자는 국민들이 믿고 맡긴 의무는 저버린 채 목전 좁은 이해관계만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대해 많은 분들이 개탄과 좌절감을 표명했다”라며 한국이라는 국가에서 정치지도자에 대해 결국 쓴 소리를 하고 말았다.

결국 한마디로 반기문 전 총장은 정치인이 될 수가 없었다. 자신 이외의 사람에게 칭찬은 둘째라 치고 일단 무조건적인 비난과 헐뜯기에 익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책임지지 않고 국민들을 속여야 한다는 기본 메카니즘조차 이해를 못했기 때문이다.

정치인(정치지도자)가 무서운 가장 큰 이유는 정권장악을 목표로 뛰는 자나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모두 ‘기회주의자’라는 점이다. 정치인들은 겉으로는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계층을 위한 ‘지상천국’을 건설할 것처럼 말하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정치적 기득권을 확보하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다.

정치인들이 기득권을 확보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이분법’이다, 즉 국민 계층 간 분열을 조장해 다수의 대중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드리려는 전술이다.

그들은 공통된 문제로 걱정하고 고민하는 대다수 서민의 고통을 해결해 줄 것처럼 호도해 이들을 자신의 편에 서도록 만든 후 ‘우리’라는 표현을 써서 굳건한 동지의식을 심어준다.

그러는 한편 이들과 대치되는 특정계층을 찾아내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고, 서민들이 특정계층에 더 큰 적개심을 갖도록 만든다. 그런 다음 자신들이 서민의 편에 서서 그들의 이익을 지켜내기 위해 그들을 억압하는 특정계층과 싸우는 것처럼 연출한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의 많은 정치인들이 이민자, 실업자, 특정인종, 동성애자 등을 포함한 사회 소수계층을 혐오세력, 극단세력으로 몰아붙여 공격해 온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트럼프를 미국 대통령으로 뽑을 당시 특히 실업률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외국 이민자들은 노동자층의 표를 얻고자 하는 정치인들에게는 좋은 ‘먹잇감’이 된다. 정치인들은 이민자들을 악으로 규정하여 그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생각하는 저소득층 노동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정치적 재물로 활용한다.

정치에 있어 이러한 이분법 전략은 특정집단에 대해 피해의식이나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 자기편으로 만드는 데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외국의 정치인들이 아군과 적군을 나누기 위해 실업률을 이용했다면 한국의 정치인들은 표밭을 일구기 위해 줄곧 민족의 암울한 역사를 이용했다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한국전쟁을 치른 우리 국민들에게는 반일·반공 정서가 깊숙이 뿌리 박혀 있다. 이 같은 정서는 정치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선동전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훌륭한 소재가 아닐 수 없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사회계층은 다분 화되고, 이들의 사회적 요구가 절실해질수록 정치인들은 더 많은 아군과 적군을 만들어낸다.

요즘처럼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서민들이 심각한 생활고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재계-서민’, ‘재계-노동자’ 등으로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를 아군과 적군으로 구분해 대치시키는 것도 그들의 고전적인 수법 중 하나이다.

자신의 편, 즉 사회·경제적으로 시급하고 절박한 문제를 안고 있는 다수 층이 정해지면 정치인들은 눈앞의 이익으로 이들을 현혹해서 환심을 사려한다.

정치인들은 구조적인 환경개선 등 장기적인 정책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단지 국가예산을 활용해 지금 당장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가시적인 효과가 큰 정책들만을 내세운다. 선거철을 맞아 세금을 깎아주겠다거니 모든 사람들에게 금전적인 혜택을 주겠다고 공약하는 것 등이 좋은 예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꿈이룸학교에서 '4차 산업혁명, 새로운 성장의 활주로'를 주제로 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김나윤 기자


반기문 전 총장은 문재인 전 대표의 1년까지의 군 복무기간 단축, 이재명 성남시장의 한수 더 떠서 10개월 복무기간,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모병제 등 미국의 주한미군 분담금 증액요구와 북한 김정은의 호전적 도발행위로 한반도의 군사적 불안이 갈수록 증대하는 현실에서 안보를 위협하는 최소한의 거짓 대선공약을 내뱉을 수 있어야 했다.

특히 이재명 성남시장의 청년과 노인, 농어민, 장애인 등 국민 2800만 명에게 기본소득으로 연간 100만 원씩 지급이나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의 노동시간 단축을 법적으로 의무화해 정시 퇴근을 유도하는 이른바 ‘칼퇴근 시대’ 법안을 대선 공약은 경제를 살리겠다는 대책이나 근본의지는 찾아볼 수 없고 무조건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 국민에게 나누어 주겠다는 것과 국가가 기업이 운영하는 근로자의 출퇴근을 관리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참으로 어이없는 발상이요. 대권주자 자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또한 공무원 숫자를 대폭 늘려 일자리를 만들겠다느니 서울대나 교육부를 폐지하겠다는 공약 등은 정책의 실효성이나 부작용에 대한 대책이 없는 선심성 공약으로 비판을 받는다.

그저 국가 미래에 대한 깊은 성찰과 신중한 고려 없이 그저 표만 얻기 위해 남발하는 공약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여론이다.

이렇다 보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포퓰리즘 정책으로 비롯되는 한 가지 공통점은 대다수 국민들, 특히 서민들의 삶이 더욱 어려워진다는 사실이다.

선심성, 단기성 정책개발에만 집중하다 보니 관료들은 경제와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 결과적으로 문제는 더욱 악화되고, 거대한 정책비용이 소요되면서 재정악화까지 가져오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야당 시절에는 세상을 다 바꿀 것처럼 요란하게 행동한다. 그들은 서민을 순수하고 위대한 역사의 주인공, 국가의 주인으로 치켜세우며 자신들이 앞장서서 지배계층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이들의 억울함을 대변해 싸울 것을 약속한다. 체제개혁의 선봉장인 것처럼 자신을 포장하면서 정권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 나서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집권하고 나면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온건한 타협 노선으로 선회하고 만다. 결국에는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악’으로 규정했던 경제적 실세들과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고, 보수적인 행정논리를 펴게 되는 것이다.

현실에 안주하기는 대중도 마찬가지다. 생존경쟁에 시달리는 다수 대중은 개혁에 따르는 고통을 견디기 보다는 눈앞의 실리를 차지하기를 원한다. 문제의 해결을 찾기보다는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얹으려고만 하는 것이다.

이처럼 지도자나 대중이 ‘염불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더 많으면 포퓰리즘 특유의 선동정치가 성행하게 된다.

결국 국민들은 스웨덴 정치인과 같이 되지 않는 이상 야당이 정권이 잡든 여당이 정권을 잡든 달라지는 게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정치인들도 국민들 세금으로 월급 받으면서 일하는 사람들인데 반성 좀 했으면 좋겠다. 서로 헐뜯기나 하지 말고...

이상준 기자 (bm2112@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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