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멸 위기의 보수, 황교안 말고는 희망 없나?
보수 진영, 군소주자만 남아 재집권 시나리오 무용
황교안마저 불출마시 '정통 보수' 대선 동력 잃어
보수 진영이 궤멸 위기에 처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로 기존의 보수 재집권 시나리오는 사실상 무용지물 됐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반기문 표’가 보수 진영의 여타 주자들에게 흘러가는 양상이지만 반전을 이루기에는 녹록지 않다. 정통 보수의 타개책으로 ‘황교안 등판론’이 더욱 힘을 받고 있음에도 정작 출마 여부는 가려지지 않아 위기의식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반 전 총장은 차기 대선에서 ‘정권 교체’로 흐르는 분위기를 막고 보수의 재집권을 위한 ‘불쏘시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그는 현실 정치에 발을 들인 지 20일 만에 중도 하차했다. 이 때문에 보수 진영이 향후 대선 레이스를 이끌어갈 동력을 상당 부분 잃게 됐다. 여권 관계자는 “보수는 지금 죽도 밥도 아닌 상황”이라고 했다.
반 전 총장의 지지율 하락세와 새누리당, 정통 보수의 위기의식이 만들어 낸 ‘황교안 등판론’은 거세지고 있다. 반 전 총장으로 모였던 정통 보수의 표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옮겨붙는 모양새다. 일부는 보수 진영의 또 다른 주자인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으로 이동했지만, ‘반기문 불출마’의 최대 수혜자는 황 권한대행이라는 시각이 많다.
새누리당에는 이제 ‘황교안만이 희망이다’라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반 전 총장의 불출마 결정 전 다소 조심스러웠던 ‘황교안 띄우기’는 이제 더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박완수 비대위원은 2일 오전 비대위 회의에서 “황교안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국민이 탄핵 정국에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생각하고 있고, 깨끗한 이미지의 정치인 찾고 있으며, 어려운 기간에 국정을 맡아서 하고 있다는 신뢰감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인명진 비대위원장은 “황 권한대행에 대한 관심이 새누리당이 대선 후보를 내도 된다는 국민의 허락”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황 권한대행은 출마 여부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쏟아지는 대권 출마 여부 질문에 묵묵부답했다. 정가에는 황 권한대행이 공식 석상 발언에서 출마 가능성을 닫지 않았고, 새누리당의 등판론이 거세진다면 결국 부응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전망과 그 반대의 전망이 상충하고 있다. 황 권한대행이 국정 공백을 메워야 할 역할인 만큼 출마 명분이 약하고, 그의 정치 이념과 지지층이 정통 보수에만 국한돼 확장성이 크지 않다는 점에서다.
만약 황 권한대행이 출마하지 않을 경우 보수는 궤멸 위기에 처할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유 의원, 남경필 경기도지사, 이인제 전 새누리당 최고위원,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등이 있지만, 이들 중 유의미한 지지율을 보이는 이는 사실상 없다. 여권 관계자는 “황 권한대행마저 불출마한다면 사실상 보수 진영, 특히 정통 보수와 새누리당은 몰락할 수도 있다”며 “그래서 황 권한대행을 내세워 일정 지지율을 확보하면 새누리당이 ‘보수의 적자’로 다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평론가는 본보에 “정치공학적으로 얘기하면 보수는 이번에 깨지는 판”이라고 강조했다. 이 평론가는 “황 권한대행이 출마하지 않으면 정통 보수는 위기감에 탄핵을 반대하는 장외집회에만 열중할 것”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에 실망했어도 진보 진영에는 표를 주고 싶지 않은, 특히 전통적 보수층으로 분류되는 60대 이상의 투표율은 최저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반면 신율 명지대 교수는 “우리나라의 기본적인 이념 지형으로 봤을 때 보수가 몰락할 수는 없다”면서도 황 권한대행이 출마 여부를 조속히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신 교수는 “‘샤이 보수’들이 ‘패닉 보수’로 바뀌었다. 보수는 기본적으로 역대 대선에서 48% 정도의 결집을 보였기 때문에 그 표를 다시 모을 수 있는 계기만 있다면 침체된 분위기는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므로 황 권한대행이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 분명히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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