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제네바 합의는 북한의 대사기극…시간벌기용"
국내 학술회의 데뷔…"인센티브 제공해 비핵화에 도달 생각은 안돼"
"북한 정책 이행의 기준은 김 씨 일가의 장기집권에 유불리 여부"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9일 1994년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과 북한이 체결했던 제네바 합의를 ‘대사기극’이라고 지적하고 “북한이 요구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해 북한 비핵화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안 된다”고 밝혔다.
태 전 공사는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주최한 ‘동북아 안보 정세 전망과 대한민국의 선택’이라는 제하의 국제학술회의에 토론자로 참석해 북한 핵문제 해결 방안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이 자리에서 그는 1994년 제네바 합의에 대해 “결국은 북한의 대사기극으로 끝났다”며 “북한 외무성은 그 때 당시에도 (제네바 합의가) 김정일과 클린턴의 사기 합작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김일성의 사망과 내부 경제적 위기, 우방이었던 소련의 해체 등으로 위기에 처한 김정일로서는 미국으로부터 공격받지 않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고, 반면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은 북한이 스스로 붕괴하도록 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각자의 필요에 따라 합의를 도출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태 전 공사는 “처음부터 제네바 합의가 이행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외무성을 포함해 북한에 한명도 없었다”며 “북한 핵문제의 본질은 진정으로 핵문제를 해결할 것이냐, 아니면 진정한 핵문제 해결을 믿지 않으면서 사기를 쳐볼 것이냐 이 두 가지이며, 두 방향 중에 우리가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태 전 공사는 북한 내부적 요인으로 인해 비핵화 합의는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당 정책과 어긋나는 발언이나 제안을 하는 사람은 그 순간 당 정책을 반대한 반당분자로 낙인찍혀 외무성은 물론 평양에서도 추방되는 강력한 당적 규율이 적용된다”며 “미국과 한국으로부터 인센티브를 받아내고 핵무기를 내놓는다는 안을 제기하면 그 사람은 당 정책, 김일성과 김정일의 핵 업적을 말살하는 사람으로 목이 날아가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인센티브를 받아서 경제를 회생시키고 나라를 발전시키자는 안이 나올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북한이 어려운 처지에 있으니 김정은이 살아날 수 있게 숨통을 열어주고 김정은에게서 핵무기를 빼앗을 수 있지 않을까 이 문제인데, 북한이 정책적으로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문제”라며 “북한 정책 이행의 기준은 김 씨 일가의 장기집권에 유리하냐 유리하지 않느냐이고, 위협을 주고 불리하다고 생각되면 절대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북한으로서는 외화 유치를 위해 러시아와 중국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가스관, 도로 등을 설치하고 막대한 이득을 취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외부와 전략적으로 이해관계가 얽히게 되면 결과적으로 김정은 집권 장기화에 위협 요소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태 공사는 “그래서 핵 문제 해결은 인센티브의 양과 질에 의해 혹시 북한을 비핵화로 도달할 수 있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본다”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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