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세력, 긴 호흡으로 '제2의 건국' 위해 싸워야 할 때다
박근혜, 검찰 포승줄에 묶여서라도 결백 증명해야
태극기세력, 산업화·보수우파 가치 매도에 반발
처음부터 헌재의 심리 따위는 형식적 절차였다. 8대0 평결과 헌재 선고문은 헌법수호의 마지막 보루라는 헌재에 걸었던 기대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게 한다.
언론이 시작해 좌파 노조와 검찰 그리고 국회를 거쳐 헌재가 완성한 이 반란은 처음부터 실체적 진실 따위는 중요치 않았고, 헌재는 정치적이고 비열한 이 반란의 끝판왕이었다.
180일이란 권고기간에도 불구하고 헌재는 처음부터 뭔가에 쫓기듯 서둘렀다. 그들의 진짜 목적은 '장미 대선'이었다. 주심 재판관이 국회측의 허접한 소추안을 수정하라고 한 것은 판사가 처음부터 유죄 심증으로 검찰에 유죄를 받아 내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고 담합한 것과 다름 없었다. 그러니 피고 측에 유리한 증인이나 증거는 아예 채택하지도 않았다.
헌재의 판결문을 보라. 이건 판결문이 아니라 두서없는 교장 선생님 훈시문 수준이다.
법적 쟁점이 될 걸로 예상했던 부분은 전부 대통령 쪽 손을 들어 주면서도, 정작 법적으로 문제 삼기 어려운 최순실 문제를 걸어 지극히 주관적인 수사인 '대통령의 헌정수호의지'가 없다고 결론내린 건 헌재의 정치성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헌재의 비열함의 하이라이트는 8대0 평결이다. 이적 단체인 통진당 해산 때도 소수 의견이 있었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잘못이 내란을 시도한 통진당보다 중한 것인가?
언론은 촛불민심이 진짜 민심이라고 부추겼고 헌재는 철저히 그 촛불민심에 굴복한 것이다. 촛불에 타죽고 싶냐는 하태경의 협박이 국무총리가 아니라 헌재에 통한 것이다.
어째든 이제 헌재의 결정은 수용해야 하고 대통령 파면은 돌이킬 수 없다. 좌파들 같으면 죽창들고 나서겠지만 우파의 가치는 법치에 있기 때문이다.
이젠 어디로 가야 할까? 그동안 엄동설한에 태극기를 들고 광장을 가득채웠던 그 민심은 무엇을 해야 될까?
이번 사태를 큰 틀에서 보면 이른바 87체제 이후 민주화란 미명 하에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온 우리 사회 전반의 좌경화의 산물이다.
권위주의 시대 대학생활을 한 386세대가 사회의 주축인 4~50대가 되었고, 전교조 교육세대가 그 아래를 받치고 있다. 정치와 언론은 물론 법조도 예외가 아니다. 당연히 좌편향일 수 밖에 없다.
불과 몇년전만 해도 좌파들은 우리 사회를 우측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불평했다. 그러나 그 운동장이 이젠 좌측으로 기울다 못해 아예 절벽이 되어 버렸다. 좌파 집회는 1만이 백만이고, 우파는 백만이 1만이다. 좌파 전문시위꾼 한 명이 폭력시위 중 사망하면 '열사'고, 우파 시위대 3명이 사망한 건 기사조차 안되는 현실이다.
촛불로 대변되는 좌파세력은 이번 사태를 통해 우파 권력의 상징 박근혜를 파면했고, 대한민국 시장경제의 상징 이재용을 구속시키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대통령 파면 이후 광화문 촛불들의 축하 파티 현장을 찾아 보았다. 사드배치 반대 등 반미 구호가 난무하고, 심지어 시대를 거슬러 이승만, 박정희의 잔재 청산 주장까지 나온다. 우파 가치는 철저하게 부정되고 괴멸될 지경이다. 태극기들의 걱정이 기우가 아니라 현실화하는 듯하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데는 이명박은 물론 박근혜의 책임이 크다. 지난 대선 이명박 정권의 분탕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문재인 대신 박근혜를 선택한 건 국가 안보와 대북정책 등 우파 가치의 수호 때문이었다.
51.6%로 승리한 박근혜 정권에 바란 민심은 명백했다. 그러나 박 정권은 멋을 부렸다. 실현 불가능한 100% 국민행복을 내세우며 좌고우면하다 무능함만 노출했고, 또 주변 관리에 실패하면서 이 지경에 이르렀다.
이번 사태에 대한 대응 역시 잘못됐다. 상대는 반란을 꾀하고 있는데 나만 잘못 없으면 된다는 안일한 대처가 화를 키웠고 결국 파면에 이르렀다.
박근혜의 좌절은 개인의 좌절이 아니다. 진심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51.6% 국민들의 좌절이다. 박근혜는 싸워야 할 때 싸우지 못했다. 혼자만 고고했다. 그게 패착이다. 선거 여왕의 한계다.
2차 대전 당시 프랑스는 1차 대전의 교훈으로 마지노선을 구축하고 진지전에만 대비하다 독일의 신개념 전략인 전격전(블리츠)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개전후 6주만에 항복했다.
박근혜 역시 마찬가지다. 상대는 1차 언론의 고공 융단폭격에 이어 2차, 3차 전격전으로 탱크를 몰고 진격했는데 박근혜는 1차 대전식 진지전으로 대응하다 괴멸되고 말았다.
지난 두 달 시청 앞을 태극기로 뒤덮었던 우파들의 상실감이 크다. 수백 만의 태극기 물결은 박근혜 개인에 대한 지지보다 산업화와 보수·우파 가치가 매도당하는 데 대한 반발이었고, 87체제 이후 30년간 진행되어 온 우리 사회 좌경화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승만 없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대한민국 건국은 생각할 수도 없고, 박정희 없는 산업화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없는 민주화는 더 가능했고 더 잘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국과 산업화는 폄하되었고, 민주화는 분에 넘치는 보상과 대우를 받았다. 그게 오늘날 대한민국 불행의 실체다.
늦었지만 이제 박근혜가 싸워야 할 때다. 정치권에서는 5월초 대선에 대한 역풍을 우려해 박근혜에 대한 수사를 대선 후로 연기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이건 박근혜가 두 번 죽는 길이다. 헌재가 인용한 국정농단 등 비리에 대해 본인이 나서서 결백을 증명해야 한다. 당장 검찰 수사를 자청하고 영장이 청구되면 포승줄에 묶여 끌려 가야 한다. 수사 결과 잘못이 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다만 그 잘못이 대통령직을 파면당할 만큼인지는 늦더라도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헌재가 인용한 국정농단이 얼마나 터무니 없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해야 할 것이다. 그게 본인과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는 길이고 보수 우파의 가치를 살리는 길이다.
또 하나, 이번 태극기집회에서 표출된 민심을 어떤 식으로든 정치세력화하여야 한다. 그동안 이들은 너무 순했다. 그만큼 이분들은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고 희생하며 살아 온 세대다. 그런데 이번 사태로 자신들의 고단했던 삶과 그런 삶의 결과로 만들어 놓은 나라 자체가 부정 당하는 것에 분노해서 광장으로 나섰던 것이다. 다시 말해 항상 수세적이고 소극적이던 산업화 세력들이 이번 태극기 집회를 통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스스로의 정치적 잠재력을 확인했다.
남북으로 갈린 나라가 동서로 분열되고, 좌우의 이념대립에 더해 세대간 갈등까지 가세할 기세다. 어떤 식으로든 이런 갈등을 제도권 내로 수렴하고 봉합할 의무는 미우나 고우나 정치권의 몫이다. 그러나 그동안 기성 정치권의 행태로 보아 이런 중차대한 책무를 해낼지는 회의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태극기 집회의 정치 세력화는 시의적절하고 필요하다고 본다.
좌파 촛불세력에 대항하여 자유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킬 태극기 세력의 태동이다. 이제 보다 긴 호흡으로 제2의 건국을 위한 싸움을 가져가야 할 때다. 집회 중 숨진 세 분의 명복을 빈다.
윤종근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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