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귀환…'권력은 정치인 아니라 국민들 가슴에서 나온다'
홍준표가 마주해야 할 독배…과거 보수 정권의 모든 부채
보다 긴 호흡과 안목으로 차분하게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
홍준표의 귀환, 그 득(得)과 실(失)
홍준표가 돌아온다. 5․9 대선에서 낙선한 직후인 지난 달 12일 홍준표 전 경남지사는 훌쩍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23일이 지난 오늘 오후 귀국한다. 홍 전 지사는 7월3일 개최되는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당권에 도전할 것이 확실하다. 지금의 분위기라면 홍 전 지사가 당권을 잡을 가능성은 거의 99퍼센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리멸렬한 자유한국당에서 그나마 몇몇 친박 중진들이 도전장을 낼 수는 있겠지만 홍준표를 꺾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유한국당, 대구·경북에서조차 3위
그러나 홍준표를 기다리고 있는 정치 환경은 최악이다. 2일 발표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결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84%로 역대 최고치다. 또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이 50%인 반면, 107명의 국회의원이 있는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8%로 바른정당, 정의당과 동률 3위(2위는 국민의당 9%)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보수의 텃밭이라 할 수 있는 대구․경북에서도 자유한국당은 18%로 더불어민주당 34%, 바른정당 22%에 이어 3위에 그쳤다는 점이다.
홍 전 지사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을 보면 지난 달 12일 미국으로 출국하면서부터 계속 국내 정치현안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23일 동안 22개의 글을 올렸으니 거의 하루에 한 개 꼴이다.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는 것은 물론이고, 바른정당에 대해서도 거친 비판을 멈추지 않는다. 당내의 친박에 대한 공격(예를 들면 바퀴벌레 발언)도 더욱 강해지고 있다. 7․3 전당대회를 겨냥해서는 현행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대표를 별도로 선출)를 바꿔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강하게 주장한다.
대선 패배 이후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시간이 필요
예전 대선 패장들의 모습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1992년 대선에서 패배한 김대중(DJ) 후보는 바로 정계은퇴를 선언했고, 한 달 후 영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7개월이 지나서야 귀국했다. 공식적으로 정계에 복귀한 것은 그로부터도 거의 2년이 지나서다. 그 2년 동안 DJ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미래를 착착 준비했다. 아태재단을 설립하고 뉴DJ플랜의 구체적 콘텐츠를 준비했다. ‘지역등권론’을 기반으로 한 공동집권구상(나중에 DJP구상으로 현실화)을 가다듬었다.
1997년 대선에서 DJ에게 39만 표 차 패배로 눈물을 흘렸던 이회창 후보도 일단은 자리를 비웠다. 사실상 정치적 무대를 상실하고 명예총재로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50년 만의 정권교체 이후 당시 DJP정권의 야당 의원 빼가기, 정치 보복적 성격의 사정 드라이브가 계속되자 보수층은 이회창을 찾았다. 1998년 8월31일 전당대회를 통해 이회창은 한나라당 총재로 복귀했고, 그로부터 4년 동안 여의도 정치의 주인이 되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또다시 패배하면서 정계를 은퇴할 때까지 말이다.
홍준표가 마주해야 할 독배(毒杯)
지금 홍준표 전 지사가 이렇듯 빨리 현실 정치에 복귀하는 데는 물론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보수 세력이 완전히 붕괴되어 흩어져버린 상태에서 누군가는 총대를 메야하기 때문이다. 피하고 싶은 독배(毒杯)라 할지라도 그 독배를 누군가는 들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치인 홍준표 개인의 차원에서도 자유한국당의 입장에서도 좀 더 크게는 보수 세력의 앞으로의 나아갈 길을 놓고도 과연 홍 전 지사의 조기 귀환이 꼭 도움이 되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여지는 있다.
우선 앞서 인용한 DJ나 이회창과는 다른 점이 있다. 첫째 홍 전 지사에게는 DJ와 같은 확고한 당내 지지 세력과 지역적 지지기반이 없다. 또 이회창과 같은 아쉬움, 즉 39만 표(1.5%포인트 차)의 패배라는 안타까움도 없다. 게다가 대선과정에서 불거졌던 비호감의 이미지가 희석되려면 아무래도 조금은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보수 세력은 둘로 쪼개져 있는 데다, 자유한국당에는 여전히 박근혜 전 대통령의 그림자가 너무도 짙게 드리워져 있다.
게다가 지금 문재인 정부는 무엇을 해도 잘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보수 세력들 입장에서는 고통의 비명이 터져 나올 지경이지만, 상당수 국민들 심지어 보수 성향의 국민들조차 문 대통령의 행보에 고개를 끄덕인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과거 보수 정권의 모든 부채를 떠안은 듯 온갖 지청구와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홍 전 지사가 제대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나 있을지, 자칫하면 그나마 몇 안 되는 소중한 카드를 너무나 값싸게 허비해버리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부를 때까지…
“세상이 나를 다시 부를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아직 남은 세월이 창창하고 자유대한민국을 위해 할 일이 남았습니다.” 홍준표 전 지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던 다짐의 글이다. 홍 전 지사가 이 글을 쓴 것은 지난달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던 바로 그 시간이었다. 맞는 말이다. 보수층 유권자들이 또 국민들이 홍준표를 찾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정도(正道)다.
비록 범(凡)보수 세력의 표가 홍준표-유승민-안철수 세 후보에게 흩어졌다고는 하나, 557만 표라는 역대 최대의 격차로 패배한 것만은 사실 아닌가. 아직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그리고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민들의 배신감과 괘씸함 그리고 그에 대한 응징의 마음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마음 속에는 박 전 대통령이 4년 가까이 그렇게 불통과 무능 그리고 국민들을 감쪽같이 속였는데도 집권세력은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연대책임을 묻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
홍준표 전 지사나 자유한국당이 궤멸 일보 직전의 위기를 맞고 있는 보수 세력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국민들의 가슴 속에서 용서의 기운이 움틀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올바른 수순일 것이다. 물론 그냥 망연자실하게 있어서는 결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마치 풍비박산 난 집에서 값나가는 가재도구 몇 개 더 챙기겠다는 그런 모습을 보여서는 더더욱 안 될 것이다. 홍 전 지사도 “초상집의 상주가 되지는 않겠다”고 이야기한 바가 있지 않은가.
권력은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들의 가슴에서 나온다
3일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오는 7월에 있을 전대에서 대표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심 대표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된 전국위원회 모두발언을 통해 이같이 밝히면서 “리더십은 자리가 만드는 것”이라는 참 의미 있는 한 마디를 남겼다. 이번 대선을 통해 정의당의 존재감과 그들이 지향하는 바에 대해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심 대표의 분명한 거취표명은 또 다른 감흥을 준다.
권력은 정치인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가슴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1934년 중국 국민당의 압도적 공격으로 궤멸의 위기에 빠졌던 중국 공산당이 쭌이회의(遵义会议)를 통해 비주류 중에 비주류였던 마오쩌둥을 새로운 리더로 선출하고, 1년이 넘는 ‘대장정’을 통해 엄청난 희생을 겪으면서도 민중의 가슴을 파고들면서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심었다. 그 결과 1949년 베이징에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선포할 수 있었다.
마가렛 대처 총리이후 18년간 영국 보수당이 장기 집권하는 가운데 만년 야당인 노동당은 44세의 젊은 변호사 토니 블레어의 ‘제3의 길’에서 새로운 길을 찾고 정말 환골탈태(換骨奪胎)의 혁신을 통해 결국 집권에 성공한다. 지금 어차피 문재인 정부가 진보 정권 20년을 기획하고 있다면, 그에 맞서는 보수 세력들의 다짐도 남달라야 할 것이다. 홍 전 지사도 자유한국당도 보다 긴 호흡과 안목으로 차분하게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글 / 황태순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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