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보수②] ‘보수 심장’ 영남과 ‘불모지’ 호남의 시선

박진여 기자 / 황정민 기자

입력 2017.12.21 05:00  수정 2017.12.20 23:38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박 대통령 원망스러워”

“뭣이 중헌지도 모르면서” 엇갈린 영호남 민심

탄핵 정국을 거치며 보수 진영이 몰락 위기에 처했다. 보수는 여전히 종북·안보불안 등 과거 프레임을 고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료사진) ⓒ데일리안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박 대통령 원망스러워”
“뭣이 중헌지도 모르면서” 엇갈린 영호남 민심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파면으로 쪼개지고 갈라진 보수진영. 반면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은 고공비행 중이다. 이런 가운데 보수진영 인사를 향한 사정칼날에 맞서, 이들은 ‘재건’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데일리안은 2017년이 저무는 지금, 보수의 위기배경과 민심 그리고 보수가 나갈 방향을 제시해 본다.

탄핵 정국을 거치며 보수 진영이 몰락 위기에 처했다. 진보 진영의 질주가 본격화됐지만, 보수는 여전히 종북·안보불안 등 과거 프레임을 고수하고 있다.

‘보수 심장’ 영남권 민심은 세 갈래로 흩어졌다. 보수진영 본류인 자유한국당의 현 ‘홍준표 체제’ 지지자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부당성을 고수하는 대한애국당 지지자, 일부 바른정당 지지자가 그들이다. 한국당 현 지도부의 보수재건 방향성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대다수지만 반발도 여전하다.

보수정당의 불모지인 호남에서는 보수의 몰락에 대해 예견된 결과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보수정당에서는 여전히 ‘친박(친박근혜)’, ‘친홍(친홍준표)’ 간 계파갈등으로 당내 분란이 이어지며 위기를 자처하고 있다는 게 호남의 여론이다.

또다른 대안으로 떠오른 중도보수 통합 문제도 호남의 뜨거운 감자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당 내 호남인사의 반발이 거센가 하면 바른정당이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점에서 지역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원망스러워” 보수 심장 영남의 시선

대구 서문시장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만난 기사는 본인을 스스로 ‘보수’라고 밝히며 헛헛한 표정을 내비쳤다. 택시 기사는 “박 전 대통령이 원망스럽다”며 “우리는 박 전 대통령이 주머니에 얼마를 챙겼는지가 궁금한 게 아니라 상황이 이렇게 흐르게 한 것에 대한 미움”이라고 전했다. 한국당의 박 전 대통령 출당 조치에 대해서도 “이해한다”는 입장이었다.

지난해 탄핵 정국을 거치며 보수 진영이 몰락 위기에 처했다. 보수 정권이 9년의 집권만에 물러나면서 진보 진영의 독주가 본격화됐지만, 보수는 여전히 종북·안보불안 등 과거 프레임을 고수하며 제어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대구 수성구에 거주하는 한 시민은 “보수 정치권이 아직 한국당으로 결집하지 못하고 ‘자중지란’(自中之亂)하는 것 같아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TK 곳곳 ‘박근혜 대통령 무죄석방’ 요구도

TK 곳곳에는 ‘박근혜 대통령 석방하라’ 등의 문구가 새겨진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또 무죄석방을 위한 서명운동 천막도 번화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탄핵 과정에서 한국당을 탈당한 조원진 대한애국당 대표가 대구 달서구를 지역구로 둔 만큼, 다른 지역보다 활발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바른정당 측에선 이달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 TK 지역에서 한국당 지지율을 역전했다는 입장이다.

“뭣이 중헌지도 모르면서” 불모지 호남의 시선

호남이 생각하는 보수진영의 이미지는 여전히 수구꼴통, 영남패권주의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국민들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변화를 갈망하는데 보수진영의 정치인들은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해 안일하고 고압적인 집권 형태를 보여왔다는 게 호남 지역 다수의 평가다.

호남 주민들은 보수의 몰락을 두고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다. 특히 지난 9년간의 보수정권을 ‘적폐’로 규정하고 있다

지역 정가의 한 관계자는 “호남에서 보수는 여전히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며 “지금까지 보수는 기득권 유지 세력, 고집불통 세력으로 인식돼 왔기에 ‘망해도 싸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어 “과거 프레임을 과감히 바꾸고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보수가 자리잡기 힘들 거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탄핵 정국을 거치며 보수 진영이 몰락 위기에 처했다. 보수 정권이 9년의 집권만에 물러나면서 진보 진영의 독주가 본격화됐지만, 보수는 여전히 종북·안보불안 등 과거 프레임을 고수하며 제어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자료사진) ⓒ사진공동취재단

청년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선대 재학 중인 박모(24) 씨는 “탄핵정국에서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국민들이 촛불을 들었던 건 지난 9년 간 보수정권 하에서 억압됐던 국민의 민심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며 “그런 상황에서도 보수진영은 북풍몰이 등 종북프레임으로 진영싸움, 기득권 싸움에 혈안이 되는 모습만 보여왔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탄핵 정국에서 진정성 있는 반성과 개혁이 먼저 이뤄졌어야 했는데, 밥그릇 싸움, 이념전쟁만 거듭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안 그래도 보수 정권의 적폐와 무능에 질려있던 국민들 입장에서는 변화와 개혁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호남권, 중도·보수 통합 우려 확대

보수의 위기 속 또다른 대안으로 떠오른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 논의가 호남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광주·전남을 지지기반으로 두고 있는 국민의당이 대구·경북을 주 무대로 하는 바른정당과 통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호남에서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상태다.

광주 북구에 거주 중인 박모(57) 씨는 “바른정당이 나름대로 자유한국당에서 나와 적폐청산을 외치고 개혁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호남에서는 여전히 바른정당의 전신은 새누리당이고 또 자유한국당과의 통합론도 거론되면서 우려스러운 게 사실”이라며 “국민의당도 신뢰를 많이 잃었다. 사드배치, 개성공단 재개 문제 등을 놓고 왔다갔다하면서 당 정체성이 흔들리는 모습에 호남도 흔들렸다”고 전했다.

호남은 앞서 안 대표가 새정치를 들고 나왔을 때 몰표를 줬지만, 촛불정국을 거치며 개혁을 추진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대변자로 선택했다. 보수의 몰락 앞에서 호남이 더 간절히 개혁을 요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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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여 기자 (parkjinyeo@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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