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사슬 정점' 막강한 자금력 앞세운 금융지주들 '광폭행보'
회장 교체 시즌 앞두고 또 '전운'…아픈 과거는 '현재 진행형'
'먹이사슬 정점' 막강한 자금력 앞세운 금융지주들 '광폭행보'
회장 교체 시즌 앞두고 또 '전운'…아픈 과거는 '현재 진행형'
2600조원.
우리나라에 금융지주사 10곳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 규모다. 정확히 10년 전 6개의 금융지주사가 1100조원의 자산을 확보하고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회사 숫자도, 그들이 쥐고 있는 돈의 양도 상전벽해란 표현이 무색치 않다.
이제 우리 금융권은 지주사 천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대한 돈 주머니를 차고 잇따르는 쩐의 전쟁에서 연전연승을 거두고 있다. 국내 대기업이 토해낸 매물부터 외국계 자본이 남긴 유산에 이르기까지, 금융사라면 모두 이 포식자들의 먹잇감이다.
올해는 신한금융이 KB금융을 제치고 오렌지라이프를 손에 넣으며 리딩뱅크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앞선 2015년과 2017년에 각각 현재의 KB손해보험, KB증권을 품에 안으며 선두에 섰던 KB금융은 반전을 위한 새로운 사냥감을 찾고 있다.
다음 타자는 우리금융이다. 해체의 아픔을 겪은 지 4년여 만인 올해 초 다시 은행에서 지주로 재출범한 우리금융은 곧바로 자산운용사와 신탁사를 인수하며 발톱을 내보였다. 2001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금융지주 간판을 달았던 원조의 반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금융지주사로의 도전을 꿈꾸는 곳들도 생겨난다. 우리나라 상위 6대 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비(非) 지주 체제로 고군분투 중인 IBK기업은행이 그 중심이다. 기업은행이 금융지주에 뜻을 둔 건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윤용로 전 행장이 2008년 IBK투자증권을 설립하면서 이듬해 지주사로 탈바꿈하려 했지만 무됐다. 그리고 지금의 김도진 행장이 취임하면서 중장기 청사진으로 다시 지주사 전환 카드를 꺼내 들었다.
금융지주의 매력은 역시 식구들의 자금을 총 동원해 얻을 수 있는 머니 파워다. 여기에 낮아지는 규제 장벽은 광폭행보를 뒷받침하는 포인트다. 20% 출자 제한을 받는 은행과 달리 금융지주는 이런 한계에서 자유롭다. 은행들이 금융지주로의 재탄생에 군침을 흘리는 이유다.
커진 돈뭉치는 곧 권력이다. 이어 그 힘은 욕망을 쫓는다. 금융지주가 모습을 드러낸 이래 회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암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내부 인사들은 물론 관(官)까지 싸움에 달려드는 모습은 금융지주의 수장이 교체될 때마다 벌어지는 진풍경이다. 재벌 기업과 달리 뚜렷한 주인 없이 수백조의 자산을 거느리게 된 금융지주들의 태생적 취약점이다.
얼마 후면 또 다시 몇몇 금융지주 회장들의 임기가 끝난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과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의 임기는 내년 초 정기 주주총회까지로, 사실상 올해가 금융지주 수장으로서의 마지막 해가 될 전망이다. 이들을 둘러싼 인사 태풍의 조짐은 벌써부터 심상치 않다. 누가 유력한 차기 후보라는 근거 없는 하마평으로 인해 이미 시장은 뒤숭숭하다. 견제 받지 않는 돈의 정점에 오르기 위한 레이스에서 금융권은 또 다시 홍역을 예고하고 있다.
이는 금융지주 회장의 권한이 그만큼 막강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또 이를 보여주는 전례들은 금융지주들의 감추고픈 역사다. 금융지주들 가운데 제일 최근 수장이 교체된 JB금융의 내홍은 또 다시 반복된 근래의 사례다. 김기홍 JB금융 회장은 정점에 오르자마자 지주사 직원 절반 가까이를 계열사로 내치며 피바람을 예고했다. 금융지주의 핵심인 은행장도 감히 벌일 수 없는 칼부림을 둘러싸고 금융권에서는 다시금 뒷말이 무성했다.
상대방의 재산이 자신의 10배가 되면 그 에게 욕을 하게 되고, 100배가 되면 그를 두려워하게 되고, 1000배가 되면 그의 밑에서 일을 하게 되고, 1만배가 되면 그의 노예가 된다. 중국 고대의 역사가 사마천이 과거 부자들의 일대기를 소개하며 남긴 화식열전의 교훈이자 경고다.
마치 이자가 이자를 낳듯, 금융지주들의 커진 돈 주머니는 더욱 빠르게 세를 불렸다. 작은 재산은 사라지지만 큰 재산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대마불사의 논리와, 부(富)는 집중된다는 자본의 속성은 수천 년이 지나도록 유효한 현실임을 증명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차지하려는 자산이 우리와 무관치 않다는데 있다. 누군가에겐 내 집 마련을 위한 저축이자, 은퇴 후 삶의 전부다. 지금의 자본주의는 개인의 이기심이 모여 사회적 부가 된다고 여겼던 아담 스미스의 아이디어로부터 시작됐다. 반대로 사회적 부를 노리는 개인적 이기심은 자본주의가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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