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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환 집행유예, 정준영 실형, 무엇이 다른가


입력 2019.12.06 08:20 수정 2019.12.06 07:13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이슈분석> 사법체계, 성범죄에 관대하다는 인상 만들어

<하재근의 이슈분석> 사법체계, 성범죄에 관대하다는 인상 만들어

외주 스태프 여성 2명에 대한 준강간 혐의로 긴급체포된 배우 강지환이 지난 7월 12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출석을 위해 경기도 성남시 분당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외주 스태프 여성 2명에 대한 준강간 혐의로 긴급체포된 배우 강지환이 지난 7월 12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출석을 위해 경기도 성남시 분당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강지환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준강간 및 준강제추행 혐의에 대해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모두 유죄가 인정된 결과다. 정준영과 최종훈도 똑같이 준강간 혐의인데 실형이었다. 무엇이 다른 걸까?

정준영과 최종훈은 횟수가 강지환보다 더 많은 것으로 의심 받고 있고 단순 준강간이 아닌 특수준강간이며, 불법촬영 및 영상 공유 문제까지 겹쳐서 죄질이 더 안 좋다. 뿐만 아니라 이 두 사람은 혐의를 일부 또는 전부 부인하기 때문에 온전히 반성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반면에 강지환은 준강제추행이 추가되긴 했지만 어쨌든 성폭행에 해당하는 준강간은 한 차례이고 ‘특수’가 아니며, 준강간에 대해선 죄를 인정했다. 법정에서 눈물로 반성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피해자들과의 합의가 이루어져 결심공판 당일에 피해자들의 합의서와 처벌불원서가 제출됐다. 이런 차이 때문에 강지환은 집행유예에 처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집행유예가 국민의 법감정에 부합한다고 하기는 어렵다. 한 마디로 ‘대한민국이 성폭행해도 풀려나는 나라인가?’라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강지환은 처음엔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가 중반에 태도를 바꾸어 혐의를 인정했다. 이것은 증거로 인해 부인하기 어렵게 되자 전략을 바꾼 것 아니냐는 의혹을 샀고, 그렇다면 그것이 과연 진정한 반성이냐는 물음이 나왔었다.

죄질도 상당히 좋지 않다. 스타 앞에서 절대적으로 을이라고 할 수 있는 여성 외주 스태프 두 명에게 동시에 범행을 시도했다. 그 전에 술을 먹도록 해 항거불능 상태를 유도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었다. 충격적인 내용이다. 이런 사건에도 합의하고, 반성한다는 말만 하면 세상을 활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의아하다.

합의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합의했다고 그냥 풀어주다시피 하면 부자, 강자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 범행을 저질러도 부자는 돈으로 쉽게 합의할 수 있다. 강자는 위력을 활용해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 피해자가 업계의 을인 경우 앞길이 막힌다는 불안감을 갖게 할 수 있고, 또는 업계에서 좋은 자리를 맡게 해주겠다는 식으로 회유할 수도 있다. 강지환이 그랬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일반적인 구조가 그렇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 합의했다는 이유로 바로 풀어준다면 부자나 강자는 파렴치한 범행을 저질러도 너무 쉽게 풀려날 것이다.

얼마 전 구하라 사망 이후 ‘가해자 중심적인 성범죄의 양형 기준을 재정비해주세요’라는 국민청원에 사람들이 몰려갔다. 구하라에게 영상협박한 이가 집행유예를 받은 것에 사람들이 분노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성범죄자에게 우리 사법체계가 관대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두 사람에게 동시에 성폭행과 추행을 저지르고도 집행유예로 풀려난 강지환 사례는 이런 생각을 더 강화할 것이다.

재판부가 탄원서 내용을 언급한 점도 의아하다. ‘피고인의 주변 사람들이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피고인이 지금 이 자리에 있기까지 어려웠던 무명생활을 거쳤고 나름 성실하게 노력해왔다고 글을 적어냈다. 글 내용이 진실이기를 바라고 피고인이 재판과정에서 보여준 여러 다짐들이 진심이길 기대한다’라고 했다는데, 무명배우 생활을 한 것과 성폭행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성폭행 피해자가 가해자의 무명배우 전력까지 참작해야 하나?

이런 점도 우리 사법체계가 성범죄에 관대하다는 인상을 만들어내는 요인이다. 그런 세간의 인식을 불식시키지 못한다면 피해자들의 불안과, 성범죄 피해를 많이 당하는 여성들의 분노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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