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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경, 무고 승계와 아름다운 동업 정리...재계 큰 어르신 표본


입력 2019.12.14 16:06 수정 2019.12.14 19:14        이홍석 기자

세대교체 내세워 70세에 은퇴...경영혁신 몸소 실천

57년간 이어온 구·허 양가 동업 순조롭게 마무리

세대교체 내세워 70세에 은퇴...경영혁신 몸소 실천
57년간 이어온 구·허 양가 동업 순조롭게 마무리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70세에 스스로 그룹 수장 자리를 내려놓는 혁신의 자세로 재계의 큰 어르신의 표본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은 구자경 LG명예회장(왼쪽)이 지난 1999년 8월 아들인 구본무 회장과 담소하고 있는 모습.ⓒLG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70세에 스스로 그룹 수장 자리를 내려놓는 혁신의 자세로 재계의 큰 어르신의 표본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은 구자경 LG명예회장(왼쪽)이 지난 1999년 8월 아들인 구본무 회장과 담소하고 있는 모습.ⓒLG
14일 별세한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70세에 스스로 그룹 수장 자리를 내려놓는 혁신의 자세로 재계의 큰 어르신의 표본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그의 마인드는 후대로 이어져 57년간 이어져온 구·허 양가의 동업을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것으로 이어졌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지난 1995년 2월 회장으로서 25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 스스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지난 1950년 LG그룹의 모태인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 이사로 취임하면서 그룹 경영에 참여한지 45년만이었다.

부친인 고 구인회 창업주에 이어 지난 1970년 그룹 2대 회장에 취임한지 25년만에 스스로 수장의 자리에서 내려온 것으로 이는 국내 최초의 대기업 ‘무고(無故) 승계’로 기록되며 재계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켰다.

구 명예회장은 당시 퇴임에 앞서 사장단들에게 “그간 혁신을 성공시킬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노력을 충실히 해 왔고 그것으로 나의 소임을 다했으며 이제부터는 젊은 세대가 그룹을 맡아서 이끌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퇴임 의사를 표명했다.

구 명예회장이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경영혁신의 일환으로 경영진의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결심한 데 따른 것이었다.

이는 당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출범 등 본격적인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글로벌화를 이끌고 미래 유망사업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젊고 도전적인 사람들로 세대교체가 이뤄져 이들이 주도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판단을 했던 것이었다.

당시로서는 아직 은퇴할 나이가 아니었음에도 변화와 혁신의 물결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새 인물이 필요하고 그것은 자신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모습을 보이며 재계의 귀감이 됐다.

특히 부친이었던 고 구인회 창업주가 생전에 강조한 '한번 믿으면 모두 맡겨라'라는 말도 후세 경영인들에게 맡기고 은퇴를 선택하는데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왼쪽)이 지난 1995년 2월 개최된 회장 이취임식에서 구본무 당시 회장에게 LG그룹의 사기를 전달하고 있다.ⓒLG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왼쪽)이 지난 1995년 2월 개최된 회장 이취임식에서 구본무 당시 회장에게 LG그룹의 사기를 전달하고 있다.ⓒLG
구 명예회장은 당시 회장 이·취임식장에서 이임사를 통해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이 요구되는 이 시점에서 여러분을 믿고 나의 역할을 마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공인의 위치에서 평범한 자연인으로 돌아가게 되니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나 싶어서 무상감도 들지만 젊은 경영자들과 10만 임직원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기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를 넘기고자 한다”고 말해 임직원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구 명예회장이 회장에서 물러날 때 창업 때부터 그룹 발전에 공헌을 해 온 허준구 LG전선 회장, 구태회 고문, 구평회 LG상사 회장, 허신구 LG석유화학 회장, 구두회 호남정유에너지 회장 등 창업세대 원로 회장단도 젊은 경영인들이 소신 있게 경영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동반퇴진’을 단행했고 이러한 모습은 당시 재계에 큰 귀감이 됐다.

구 명예회장은 은퇴를 결심하면서 ‘멋진’ 은퇴보다는 ‘잘 된’ 은퇴가 되기를 기대했다. 육상 계주에서 앞선 주자가 최선을 다해 달린 후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배턴 터치가 이루어졌을 때 ‘잘 됐다’는 표현이 어울리듯, 경영 승계도 마찬가지라 생각했던 것이다.

구 명예회장에게 은퇴는 그가 추진해 온 경영혁신의 일환이었고 본인 스스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혁신 활동이었다.

그는 훗날 회고에서 “은퇴에 대한 결심은 이미 1987년 경영혁신을 주도하면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며 "새로운 경영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차기 회장에게 인계한다는 것이 경영권 승계에 대한 내 나름의 밑그림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어 "내 필생의 업으로 경영혁신을 생각하게 됐고 혁신의 대미로서 나의 은퇴를 생각했던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구자경 명예회장의 이러한 마인드는 후대로 이어져 지난 57년간 이어져 온 구·허 양가의 동업관계가 순조롭게 정리되며 아름다운 이별로 국내 재계 역사에 한 획을 긋기도 했다.

구자경 명예회장 퇴임 후 2000년대 들어 이뤄진 구·허 양가의 ‘아름다운 이별’은 재계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사례다. 57년간 사소한 불협화음 하나 없이 일궈왔으며 지난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사업매각이나 합작, 국내 대기업 최초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 등 모든 위기 극복과 그룹 차원의 주요 경영 사안은 양가 합의를 통해 잡음 없이 이뤄졌다.

양가는 기업의 57년의 관계를 아름답게 매듭짓는 LG와 GS그룹의 계열분리 과정 또한 합리적이고 순조롭게 진행했다. 구 명예회장 직계가족은 전자·화학·통신 및 서비스 부문 맡아 LG그룹으로 남기기로 했고 허씨 집안은 GS그룹을 설립해 정유·유통·홈쇼핑·건설 분야를 맡기로 했다. 또 전선·산전·동제련 등을 묶어 구태회·구평회·구두회 창업고문이 LS그룹을 공동 경영하기로 했다.

이렇게 순탄하게 계열 분리가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구 명예회장이 합리적인 원칙에 바탕을 둔 인화의 경영을 철저히 지켰고 상호 신뢰와 의리를 바탕으로 사업을 이끌어 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아름다운 이별’은 고 구인회 창업회장의 유지를 잘 받든 것이기도 했다. 구 창업회장은 평소 구 명예회장에게 “한번 사귀면 헤어지지 말고 부득이 헤어지더라도 적이 되지 말라”고 당부했었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오른쪽)이 구인회 창업회장 흉상 앞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LG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오른쪽)이 구인회 창업회장 흉상 앞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LG
이홍석 기자 (redston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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