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회보험료 2조 돌파…1년 새 3000억 넘게 확대
출혈 경쟁 부작용 가시화…저금리 역풍에 고객 불만 우려
국내 생명보험사들의 연간 연금보험 신규 판매 규모가 1년 새 3000억원 넘게 늘어나면서 2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가입자가 과포화 상태에 다다르며 더 이상 고객을 끌어 모으기 힘든 다른 상품들과 달리,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 속 연금보험만큼은 수요가 끊이지 않으며 위기에 빠진 생명보험업계에 동아줄이 되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판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중·소형 생보사들을 중심으로 불완전판매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몰고 온 제로금리 역풍으로 기대 수익이 더욱 줄어들게 되면서 고객들의 불만은 점점 커져갈 것으로 보인다.
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생보사들이 연금보험에서 거둔 초회보험료는 2조97억원으로 전년(1조6776억원) 대비 19.8%(3321억원)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초회보험료는 고객이 보험에 가입하고 처음 납입하는 보험료를 일컫는 표현으로, 생보업계의 대표적 성장성 지표로 꼽힌다.
생보사 별로 보면 최대 사업자인 삼성생명의 연금보험 초회보험료가 같은 기간 7369억원에서 7953억원으로 7.9%(584억원) 증가하며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그 다음으로 AIA생명의 연금보험 초회보험료가 2382억원에서 3610억원으로 51.6%(1228억원) 급증하며 뒤를 이었다.
농협생명의 해당 금액은 2273억원에서 2157억원으로 5.1%(116억원) 줄었지만 여전히 연금보험 시장 3위 자리를 유지했다. 한화생명의 연금보험 초회보험료도 1909억원에서 2131억원으로 11.7%(222억원) 늘며 2000억원 대를 유지했다. 이밖에 교보생명(1995억원)·동양생명(772억원)·오렌지라이프생명(481억원)·ABL생명(275억원)·흥국생명(167억원)·IBK연금보험(163억원) 등이 연금보험 초회보험료 상위 10개 생보사에 이름을 올렸다.
이 같은 연금보험의 성장세는 최근 생보업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다른 상품들의 경우 한정된 국내 고객들을 둘러싸고 생보사들 간 뺏고 뺏기는 출혈경쟁이 이어지면서, 전체 시장은 정체 내지는 후퇴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종신보험처럼 계약자가 사망했을 때 보험금을 지급하는 사망보험에서 생보업계가 거둔 초회보험료는 1조117억원에서 9989억원으로 1.3%(128억원) 감소하며 마이너스 성장을 면치 못했다. 사망과 생존 시 보장을 동시에 담은 생사혼합보험에서 생보사들이 기록한 초회보험료는 2조6405억원에서 2조6941억원으로 2.0%(536억원) 증가하는데 그치며 제자리걸음 수준에 머물렀다.
문제는 연금보험을 둘러싼 불완전판매 우려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불완전판매는 가입자에게 운용방법이나 위험도, 손실가능성 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상품을 파는 행위를 뜻한다. 이 때문에 높은 불완전판매 비율은 통상 금융권에서 무리한 경쟁에 따른 부작용으로 풀이된다.
생보업계의 지난해 연금보험 관련 신계약 대비 불완전판매 비중은 0.22%로 전체 상품 평균(0.19%)을 웃돌았다. 상품별로 보면 종신보험(0.59%)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나머지 상품들에서의 불완전판매 비율은 ▲어린이보험 0.06% ▲암보험 0.10% ▲저축보험 0.07% ▲치명적 질병보험 0.20% 등으로 모두 연금보험보다 낮았다.
특히 비교적 회사 규모가 작은 생보사들의 연금보험에서 불완전판매가 잦은 것으로 분석됐다.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큰 대형사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무리한 영업에 나서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처브라이프와 KDB생명의 연금보험 불완전판매 비율은 각각 1.73%와 1.04%로 1%가 넘었다. BNP파리바카디프생명과 ABL생명의 연금보험 불완전판매 비율도 각각 0.85%와 0.56%로 높은 편이었다. 또 오렌지라이프생명(0.46%)·농협생명(0.40%)·DGB생명(0.30%)·교보생명(0.30%)·흥국생명(0.26%)·KB생명(0.22%) 등의 연금보험 불완전판매 비율이 생보사 전체 평균을 웃돌았다.
이런 와중 대형 생보사들이 연금보험에 매기는 이자율인 공시이율을 낮추고 나서면서 소비자들의 불안은 더 커져가고 있다. 공시이율이 떨어지면 그 만큼 가입자가 받을 수 있는 만기 환급금이 줄어드는 대신 보험료만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번 달 삼성생명은 연금보험 적용 공시이율을 2.47%로 기존보다 0.03%포인트 내려 잡았다. 한화생명도 2.45%로, 교보생명 역시 0.35%로 각각 0.03%포인트씩 연금보험 공시이율을 하향 조정했다.
이는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사태로 갑작스레 기준금리가 0%대까지 추락하게 된 후폭풍이다. 유래 없는 제로금리 시대가 가시화하면서 보험사들로서는 가입자들을 상대로 한 지급 이자율을 예전만큼 책정해주기 어려운 입장이다. 한은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타격과 금융권의 불안이 커지자 지난 달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더 내린 0.75%로 운용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의 기준금리가 1% 아래로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생보업계 관계자는 "근래 시장 여건에서 생보사들이 영업 확대를 꾀할 수 있는 분야는 현실적으로 연금보험을 주축으로 한 노후 소득 연계 상품뿐"이라며 "다만, 과잉 경쟁은 불완전판매로 이어져 장기적으로 고객과 보험사에 모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어느 때보다 철저한 영업 현장 관리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