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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기획┃흔들리는 공연 생태계①] 메르스 사태, 왜 교훈이 되지 못했나


입력 2020.04.23 13:10 수정 2020.04.23 17:51        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메르스 사태 불구, 또 다른 악몽 생각 못해

"공연 관련 정책 구멍 많다는 점 실감"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방역작업자들이 방역 소독을 하고 있다. ⓒ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산으로 공연계가 초토화되고 있다. 1월부터 침체기에 빠진 공연계는 2월과 3월을 지나 4월에 이르기까지 계속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현장의 분위기 또한 참담하다. 이미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겪긴 했지만, 이번엔 그 강도가 차원이 달랐다. 공연예술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4월 22일 현재 공연 매출액은 19억 908만 원에 불과했다. 3월 매출액인 91억 2196만 원과 비교해 20% 수준에 불과하며, 2월(210억 69만 원)과 1월(406억 2224만 원) 매출액과 비교하면 더욱 처참한 수준이다.


이는 지난달 21일부터 정부가 시행한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국립문화예술시설들의 운영 중단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나온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앙상블 배우의 확진 소식도 악재로 작용했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에 내몰려 생계 위협을 호소하는 공연계에 대한 정부의 지원 정책은 보이지 않았다. 문체부가 지난달 19일 내놓은 대책은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이후에 초점이 맞춰져 공연계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문체부는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는 대로 예매처별로 1인당 8000원 상당의 '공연관람료 할인권'을 300만 명에게 제공하고, 경영난에 빠진 소극장과 공연단체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장 산소호흡기가 필요한 공연계에 도움이 될 만한 소식은 없었다.


공연 관계자들도 정부의 정책 중 공연계가 실질적인 도움을 받은 건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 공연 관계자는 "오히려 탁상공론으로 만들어진 정책으로 황당했던 기억이 있었다"며 서울시의 좌석간 2m 거리 유지 지침을 꼬집었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달 26일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을 위한 공연장 잠시멈춤 및 감염예방수칙 엄수 협조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공연장에 보내 6가지 감염 예방 수칙 중 하나로 '공연 시 관객간, 객석 및 무대간 거리 2m 유지'를 요구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공연 관계자는 "200석짜리 소극장 공연장이 2m 거리 유지를 적용해봤더니 10석만 팔 수 있더라"며 "현실을 무시한 지침"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연의 메카 대학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좀처럼 활기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 뉴시스

한국예총 이범헌 회장은 지난달 18일 "현장 예술인 및 단체의 피해에 따른 생활·운영자금 지원 등 긴급 조치가 필요하다"며 "조속한 추경 편성과 집행을 130만 예술인의 이름으로 강력히 요청했지만,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되고 말았다.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도 정부는 여러 가지 문화예술계 지원책을 내놨지만, 미봉책에 그친 바 있다. 대표적인 게 추경예산 300억 원을 투입해 마련해 '원 플러스 원' 대책인데, 이를 정작 피해가 큰 제작사들은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공연 기간을 특정하고, 지원 대상도 티켓 가격을 5만 원 이하로 못 박았기 때문이다. 공연계가 메르스 사태를 기억하면 먼저 떠올리는 정책이다.


가장 큰 문제는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정책 마련을 게을리 했다는 점이다. 이는 코로나19 사태로 고스란히 돌아오고 말았다.


"당시엔 생활 방역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고, 일시적인 현상이라고만 봤지 또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도 없었다"는 한 공연 관계자의 말처럼, 당장 위기를 넘어간 것에 안도했을 뿐 지속적인 노력은 부족했던 게 현실이다. 이는 현재 마련돼 있는 미흡한 관련 법규를 통해 엿볼 수 있다.


공연평론가인 지혜원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애초에 공연 관련 정책엔 구멍이 많았던 것 같다. 관련 법규 등이 아예 부재한 건 아니지만 체계를 갖추지 못한 게 문제"라고 진단했다.


특히 지 교수는 "(문화예술 관련) 법규들이 어떻게 보면 추상적인 부분들이 있다. 뮤지컬만 봐도 콘텐츠 산업에도 들어가고 문화예술육성법에도 들어간다. 이처럼 장르와 공연 형식, 극장 사이즈 등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공연은 라이브로 진행하는 데다, 영화와 달리 1·2차 시장이 죽으면 그 이후가 없어 피해가 더 크다.


지 교수는 "공공의 영역과 민간의 영역이 다르고, 클래식·발레와 뮤지컬·연극이 또 다르다. 각각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그걸 기반으로 하는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관련된 법규들을 세분화시켜 특성에 맞게 재정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연계는 코로나19로 많은 걸 잃었지만, 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이번 기회를 관련 법규를 정비하고 내실을 다지는 계기로 삼는다면, 위기에 강한 공연계로 거듭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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