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처한 李 엄호하는 '우군' 전혀 안보여
'당내 세력 없는' 현실 정확히 보여준단 지적
'우군 엄호' 받았던 역대 대권주자와 '대비'
설전, 李 본래 성품 툭 튀어나왔단 해석도
여야를 통틀어 대선 주자 선호도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여의도에서 가장 외로운 남자'가 됐다.
이 전 총리가 경기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 합동분향소 조문 태도 논란으로 큰 '홍역'을 치르고 있지만, 이 전 총리 주변에는 논란을 앞장서 차단하고 야당의 공세를 막아줄 '호위무사'가 단 한명도 보이지 않는다. '친박'(친박근혜)과 '친문'(친문재인)이라는 든든한 우군을 앞세우고 대권 행보를 펼쳤던 박근혜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 전 총리는 지난 5일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 유가족들과 나눈 대화 내용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부끄럽게 생각한다"며 6일 결국 고개를 숙였다.
민주당 코로나19 국난극복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 전 총리는 이날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유가족의 슬픔과 분노는 아프도록 이해한다. 유가족의 마음에 제 얕은 생각이 다다를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라며 "저에 대한 비판을 아프게 받아들인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그것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것은 저의 수양 부족이다. 그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는 유가족을 다시 만날 계획에 대해선 "나중에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이 아니다'고 말한 이유에 대해선 "'지난 몇 년 동안 국회가 싸웠다'는 말씀을 (유가족이) 하시길래 그것에 대해 답을 드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전 총리는 장제원 미래통합당 의원 등이 비판한 것에 대해서도 "좋은 충고를 해주신데 대해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는 사과했지만 민주당 국회의원·당선인들 중 이 논란에 대해 언급하거나 방패막이를 자처한 인사는 단 한명도 없었다. 민주당의 공식 논평도 없었다.
이 전 총리는 4·15 총선 과정에서 여권의 유력 대권주자로서 입지를 확실하게 굳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서 황교안 전 통합당 대표를 여유롭게 꺾은 것은 물론, 당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전국 지원 유세를 다니며 총선 승리에 힘을 보탰다.
특히, 이 전 총리가 후원회장을 맡았던 38명의 민주당 후보 중 22명이나 21대 국회 입성에 성공하면서 그동안 당내 기반이 허약하다는 약점도 희석되는 듯 했다. 또, '이낙연 대망론' 효과를 본 호남 지역 당선인 27명도 이 전 총리의 후원 그룹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이 전 총리가 실언으로 위기에 처하자, 이 전 총리를 엄호하는 우군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을 두고 정치권에선 "당내 기반이 없는 이 전 총리가 처한 현실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은 이날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이 전 총리를 결사적으로 옹위해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당내 자기 사람이 없다는 것"이라며 "이 전 총리의 본질적인 한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종적으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기 위해선 본인이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민주당 관계자도 이날 통화에서 이 전 총리의 상황을 "주식형제 천개유(酒食兄第 千個有), 급난지붕 일개무(急難之朋 一個無)"라고 말했다. '함께 술을 마시고 밥을 먹을 때는 형이니 동생이니 하는 친구가 천 명이나 있지만, 형편이 어려워지고 급한 일이 생겼을 때는 마음을 같이할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다'는 뜻의 중국의 고사성어다.
한편, 평소 절제되고 신중한 언행으로 '품격 있는 총리' 이미지를 구축해온 이 전 총리였던 만큼, 이번 실언 논란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원래 이 전 총리의 성품이 나온 것"이라는 평가도 동시에 나왔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번 실언 논란은 이례적인 게 아니라 이 전 총리 본래의 까칠한 성품이 툭 튀어나온 것"이라며 "이 전 총리는 기자 생활 할 때도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앞서 이 전 총리는 지난 5일 이천 화재 참사 합동분향소를 방문해 조문을 마친 뒤 유가족 30여명과 만났다. 유가족들은 이 전 총리에게 "노동자들의 죽음이 계속되고 있다. 대책을 가져오라"고 했고, 이 전 총리는 "현직에 있지 않아 책임 있는 위치가 아니다. 책임자 처벌을 포함해 기존 법에 따른 조치는 이행이 될 것이고 미비한 것은 보완이 될 것"이라고 원론적인 대답을 내놨다.
이에 유가족들이 "대안을 갖고 와라. 유족들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냐"고 하자, 이 전 총리는 "장난으로 왔겠나. 저는 국회의원도 아니고 일반 조문객으로 왔다"고 맞받았다. "사람들 모아놓고 뭐 하는 거냐"는 항의에는 "제가 모은 게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한 유가족이 "그럼 가라"고 하자, 이 전 총리가 "가겠다"고 답해 10여 분만에 면담은 끝났다.
이 전 총리와 이천 화재 참사 유족들 간 '설전' 소식이 알려지자, 야당에선 강도 높은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장제원 미래통합당 의원은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차기 대통령 선호도 1위이신 분이 가족을 잃고 울부짖는 유가족과 나눈 대화라니 등골이 오싹하다"며 "머리만 있고 가슴은 없는 정치의 전형, 이성만 있고 눈물은 없는 정치의 진수를 본다"고 비판했다. 황규환 통합당 부대변인도 이날 논평을 통해 "이 전 총리는 선거운동 마지막 날 '오만한 민주당 버릇을 잡아놓겠다'고 국민 앞에 다짐했는데, 자신도 오만해진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