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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성의 여정] '합의 민주주의' 사라진 국회…정말 이래도 되나

  • [데일리안] 입력 2020.06.30 07:00
  • 수정 2020.06.30 05:55
  • 정계성 기자 (minjks@dailian.co.kr)

정세균 국무총리가 29일 오후 미래통합당이 불참한 가운데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3차 추경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정세균 국무총리가 29일 오후 미래통합당이 불참한 가운데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3차 추경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2013년 국회를 처음 출입했을 때다. 국회 안건처리 과정을 몰라 헌법과 국회법 규정집을 살펴보고 있었다.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은 헌법에도 규정돼 있는 예산안 처리 시한을 입법 기관인 국회가 준수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언론은 당연하다는 듯 정치권을 비판했고, 여야 의원들은 통과의례라는 듯 개의치 않았다.


사수였던 한 선배 기자는 "여야 합의가 더 중요하다"고 설명해줬다. 그리고 "국회법은 여야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절차를 규정한 법"이라고 했다. 즉 합의만 이뤄진다면 다른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였다. 하긴 국가 구성원리인 헌법도 여야 합의만 있다면 개정이 가능한데, 어쩌면 법 보다 우선되는 가치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듯 싶다.


합의는 민주주의를 이론이 아닌 현실에서 실천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다수결의 원리가 지배하는 민주주의에서 '합의'가 없다면 51이 곧 100이 되는 세상이 된다. 민주주의적인 방법으로 민주주의의 종언을 고했던 히틀러의 나치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래서 역대 여야 의원들은 국회법 규정 보다 시일이 늦어지더라도 합의가 우선이라는 공감대가 있었고 이를 지키기 위해 인내했다.


여야의 합의를 위한 노력과 결과물은 국회 선례집에 기록돼 미래세대에 전해진다. 국회 사무처는 1992년부터 매 국회 회기의 선례집을 빼놓지 않고 만들어 보관해왔다. 법률상 공백이 있거나, 여야 간 쟁점이 첨예할 때마다 해석의 지침이 되는 교과서다. 이런 관행이 쌓여 민주당은 81석의 절대 소수일 때도 여야 합의로 국회 법사위원장을 가져갈 수 있었다.


그런데 21대 국회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민주당이 오랜 관행을 깨고 법사위원장을 마음대로 가져가는가 하면, 1987년 이후 처음으로 합의가 안 됐다는 이유를 들어 18개 상임위원장을 독식했다. 다수 무리한 일임을 감안했는지 이른바 '알짜' 상임위를 양보하고, 국정조사와 청문회까지 받아들이며 합의를 종용했다. 미래통합당의 거부로 무산됐다는 주장을 하지만, 법사위를 강제로 가져갔던 것이 시작임은 부인할 수 없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한 비상시국이어서 여야 합의를 기다릴 수 없다는 명분이 있긴 하다. 하지만 민생이 시급하지 않았던 때가 어디 있었던가. '시간이 없다'는 명분은 언제라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국회생활 1년만 해도 다 안다. 코로나는 결국 지나갈 것이지만, 민주당이 다수의 힘으로 법사위는 물론이고 전체 상임위를 다 가져간 의정사는 두고두고 선례로 남게 됐다. 앞으로 151석을 가진 원내 다수당은 관습법이나 관례 따윈 버리고 입맛에 맞는 상임위부터 골라갈 것이 뻔하다. 여차하면 독식하는 것도 방법일터다.


비단 원구성에만 끝나진 않을 것 같다. 매 회기마다 진행했던 여야 의사일정 합의도 원만하지 않으면 명분을 만들어 강행할 것이고, 친여 정당만으로 열리고 있는 파행적 상임위는 관례로 굳어질 수 있다. 법률안 처리도 마찬가지다. 다수결의 원칙이 의미를 갖는 것은 공정한 게임의 규칙과 구성원 간의 신뢰가 있을 때 가능하다. 두 가지 조건이 없는 다수결은 다수의 폭력에 불과하다.


17개 상임위 강제배경을 마친 박병석 국회의장은 "국회의장과 여야 모두 국민과 역사의 두려운 심판을 받겠다"고 했다. 역사는 현 집권여당을 어떻게 평가할까. 위기의 시기 '결단'이라고 할까. 아니면 합의제 민주주의의 종언이라고 할까. 분명히 하자. 무엇이 됐든 그 책임은 오롯이 거대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져야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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