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타 미지급금 해소 못 해...계약 해제 조건 성립
최종 결정 미루고 시간 벌기...정부 압박에 눈치 보기?
인수 무산 책임 최소화 속 추가 지원 염두 행보 해석도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인수 계약 해제 요건을 충족했다고 발표하면서도 최종 계약 해제 결정은 미룬 것을 두고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당장 계약 해제 결정을 내리지 않아 향후 상황에 따라 시한 연장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인수 불이행 명분을 축적하며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위한 조치로 보는 해석이 우세하다.
이 때문에 지난해 저비용항공사(LCC)간 인수합병(M&A)으로 주목받았던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결합이 결국 파국을 맞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16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과의 주식매매계약(SPA) 해제와 관련 계약 해제 조건이 갖춰졌다면서도 당장 해제 결정을 내리지 않은 것은 정부의 중재 압박 노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제주항공은 앞서 이날 오전 입장자료를 통해 “15일 자정까지 이스타홀딩스가 계약 선행조건을 완결하지 못해 계약을 해제할 수 있게 됐다”면서도 “다만 정부의 중재노력이 진행 중인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계약 해제 최종 결정 및 통보 시점을 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제주항공은 지난 1일 이스타항공에 "영업일 기준 10일 안에 미지급금 해소 등 선결조건을 이행하지 않을 시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공문을 보내며 인수 포기 가능성을 시사했다.
지난 3월 SPA 이후 발생한 약 250억원 가량의 체불임금을 포함해 1000억원 안팎의 미지급금을 해소하라는 요구였지만 거의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이스타항공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리스사와 조업사, 정유사 등에 비용 탕감이나 상황 유예 등을 요청했지만 정유사가 이를 사실상 거절하는 등 해소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제주항공은 이날 "전날 이스타홀딩스가 보낸 공문에 따르면 계약 선행조건 이행 요청에 대하여 사실상 진전된 사항이 없었다"며 이같은 요구가 거의 해소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항공이 당장 계약 해제 선언을 하지 않은 것은 정부의 중재 노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인수 이행을 위한 극적인 상황 반전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당장 계약 해제 절차를 밟지 않은 것은 이를 감안한 조치로 풀이된다. 이날 발표가 지난 1일 최후통첩 당시 강경했던 문구와 비교하면 사뭇 달랐던 것도 이때문으로 보인다.
최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채형석 애경그룹 부회장과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불러 M&A 성사를 촉구한 데 이어 고용노동부까지 체불 임금 해소에 대한 양측의 의견을 청취하는 등 정부가 중재에 나선 상황에서 계약 해제를 바로 발표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는 것이다.
특히 항공업은 국가기간산업이라는 중요성으로 인해 항공면허 취득부터 운수권·슬롯 확보, 취항 스케줄 조정 등 모든 부분에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대표적인 산업이어서 정부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는 게 중론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양사간 논의를 통해 현 상황이 바뀔 요인이 없는 만큼 결국 정부 손에 달린 것”이라며 “시장 진입이 제한되고 규제가 많은 항공업의 특성상 정부를 대놓고 무시할 수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인수 무산에 대한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위한 명분 쌓기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당장 계약을 파기하기 보다는 시한을 추가로 줘서 자칫 제기될 수 있는 책임론에서 보다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행보라는 것이다.
이스타항공은 제주항공으로 인수가 무산되면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파산 수순을 밟게 되는데 약 1600명의 실직자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제주항공에 인수 불이행에 따른 책임론이 제기되면서 대규모 실업사태를 야기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부담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에 결국 시간을 벌면서 정부의 추가 지원 등의 조치들을 지켜보면서 최종 결정해도 늦지 않는다는 판단으로 귀결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KDB산업은행 등에서 제주항공에 인수금융으로 17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미지급금 해소와 경영 정상화를 이루기는 역부족인 만큼 정부의 추가지원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다만 정부가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는 무조건적인 지원은 자제하고 있어 상황 반전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나오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또 LCC인 이스타항공은 대한항공 등 대형항공사에 비해 규모가 작아 지원 규모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기는 하지만 창업주인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엮어 있어 자칫 특혜로 비춰질 수 있는 점도 부담이 될 전망이다.
또 다른 업계 한 관계자는 “결국 제주항공은 정부가 나서주기를 기대하며 시간을 갖겠다는 포석으로 보인다”면서도 “정부가 추가 지원 방안을 내놓기 어렵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인수 무산의 책임을 최소화하기 위한 포석도 ᄁᆞᆯ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