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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태의 빨간맛] 북한은 맞고 미국은 틀린가


입력 2020.08.04 07:00 수정 2021.02.23 21:42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사고방식의 차이를 옳고 그름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건 아닌가

중재자‧촉진자 주장하기 전에 공정한 척이라도 해야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8년 6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자유의 집 앞에서 회동하고 있는 모습(자료사진). ⓒ청와대

동서양은 피부색 만큼 머릿속도 다르다. 여러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동양인은 '맥락적‧순환적 사고'에 능하고 서양인은 '속성적‧직선적 사고'에 친숙하다.


일례로 한 실험에서 대부분의 중국 학생들은 상황이 달랐다면 살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 가정했다. 반면 대다수 미국 학생들은 범인의 인격적 특성이 그대로라는 이유로 상황과 무관하게 같은 비극이 벌어졌을 거라 예상했다.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동양인의 사고와 '어떤 상황에서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서양인의 사고는 북핵 이슈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북한은 '행동 대 행동'이라는 단계적 비핵화 방안을 고수해왔다. 이는 '상황'에 따른 변동성을 감안한 주장이라고 해석된다. 리비아의 카다피가 어떻게 눈 감았는지 생각하면, 정세 변화를 감안한 비핵화는 북한이 관철해야 할 중요한 협상 틀일 수 있다.


하나 미국은 북한에 이렇게 묻는다. '비핵화 의지가 있다면, 단계적으로 어차피 폐기할 핵 시설이라면, 왜 지금 이 시점에 공개조차 할 수 없는가. 혹 다른 주머니를 차겠다는 꿍꿍이가 있는 것은 아닌가.' 논리적 일관성을 중시하는 미국으로선 북한의 비핵화 로드맵 선(先) 제시 없이는 어떠한 보상도 내놓지 않을 공산이 크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에는 서양 특유의 직선적 사고가 얼마나 강한지 드러나는 대목이 있다. 볼턴 전 보좌관은 북핵 협상 당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정신분열적인 생각(schizophrenic idea)을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한국이 북한의 '행동 대 행동(단계적 비핵화)'을 거부한 미국이 옳다고 해놓고, 영변 핵시설 폐기가 북한 비핵화의 '입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나선 건 앞뒤가 안 맞는다는 얘기다.


좀 더 풀어서 얘기하자면,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 비핵화 방안과 한국이 중재안으로 내놓은 영변 핵시설 폐기와 제재완화의 맞교환, 이른바 '굿 이너프 딜(충분히 괜찮은 합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느냐는 거다.


문재인 정부가 포기하지 않고 있는 북미 중재자 역할은 결국 북한과 미국을 설득하는 일로 요약된다. 때로는 한쪽을 때로는 양쪽 모두를 설득해야 하지만, 집권세력은 미국을 유일한 설득 대상으로 여기는 모양새다. 여권 일각에선 볼턴 전 보좌관 등 '네오콘(신보수주의자)' 세력이 군산복합체들과 얽혀 한국에 무기를 팔아먹으려 북미협상을 방해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새어나오고 있다.


백번 양보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 얘기라고 치자. 한데 어째서 미국 의심하듯 북한을 의심하지 않는가. 서로 다른 입장을 피력하고 있는 북미 사이에서 미국만 설득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또 뭔가.


혹 북미의 사고방식 차이를 옳고 그름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건 아닌가. '북한은 맞고 미국은 틀리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중재자로서 이미 자격 상실이다. 중재자니 촉진자니 하기 전에 공정한 척이라도 좀 했으면 한다.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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