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자금난 위기 맞은 중소기업 금융지원 필요성 대두
이자상환유예 시 기업 물론 은행도 악영향…“포퓰리즘” 지적
관제펀드 추진부터 대출금리 상한선 제한까지 금융권을 향한 정치권의 입김이 거세지고 있다. 시장논리에 맡겨야할 금융시장에 정치권이 '감놔라 배놔라'할수록 우리 금융 수준은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중심을 잡아야할 금융당국마저 정치권에 휘둘리며 고질적인 병폐였던 관치금융이 정치금융으로 퇴보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지금, 업계에 미치는 파장과 문제점을 짚어보고 바람직한 해결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발(發)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의 금융지원과 관련해 정치적 외풍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은행권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매출 부진과 자금난 등 이중고를 겪는 중소기업에 대출을 내주고 만기 연장과 이자상환 유예 등의 지원에 적극 나섰지만 추가 금융지원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은행들의 기본 철칙인 리스크 관리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은행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직격탄을 맞은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늘리고 있다. 실제로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달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477조5109억원으로 전년 동기(431조3909억원) 대비 10.6% 증가했다.
코로나19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3월부터 7월까지 이들 은행의 코로나19 대출 원리금 유예 규모(만기연장·원금상환유예·이자납입유예)는 약 36조원에 달한다. 대출 원리금 유예 건수는 약 24만5000건 수준이다.
문제는 36조원에 달하는 대출 만기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 조치를 리스크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재연장해야 된다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은행들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어 대출 만기 연장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이자 상환까지 재연장하면 차주가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기 어려워 리스크 관리가 힘들어 진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자 역시 갚아야 할 돈으로 이를 미룰 경우 차주에게 향후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은행들은 지난 4월부터 오는 9월30일까지 만기가 다가오는 대출에 대해 6개월 이상 만기연장 및 이자 상환을 유예해 주고 있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보다 정치권의 입김이 깊숙이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여야 의원들은 코로나19 사태 속에 중소기업들이 적재적소 금융지원을 받는 것은 물론 중장기적 발판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돕는 내용 등이 담긴 각종 법안들을 쏟아내고 있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 개원 후 제출된 법안은 14일 현재 2982개다. 이 중 중소기업과 소상공인과 관련된 법안만 100여개가 넘을 정도다.
정치권에서 중소기업의 성장을 중요시 하고 있는 만큼 은행들 입장에서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중기중앙회 출신 김경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공동으로 지난 6월 ‘중소기업·소상공인 활력회복을 위한 금융지원 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김 의원은 개회사를 통해 “수출 중소기업과 제조업, 지역 중소기업의 자금난에 심각한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며 “수출 중소기업과 제조업에서의 고용한파와 자금난에 따른 도산의 도미노현상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 의원도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향한 금융지원은 우리 경제안보에 투자하는 것이자 또다시 반복될 위기에 대비해 우리 경제에 백신을 놓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4선 국회의원 출신인 박영선 장관이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를 맡으면서 가장 애정을 가지고 추진한 프로젝트인 ‘자상한 기업(자발적 상생협력기업)’에 KB국민, 신한, 우리, 하나 등 4대 은행과 IBK기업은행이 선정되면서 연간 수천억원 규모의 벤처펀드·소부장펀드 조성 등에 나서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중기부는 주도적으로 조성한 스마트대한민국펀드 투자설명회에 5대 은행 관계자들을 불러 출자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스마트대한민국 펀드는 총 160조원 한국판 뉴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비대면·바이오·그린뉴딜 분야 중소기법인 지원을 하기 위해 조성됐다.
은행들은 이미 자체적으로 스타트업 여신지원, 직간접 지분투자 등을 하고 있는데다 초저금리, 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는 와중에 수백억원을 지원하기 부담스러워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자 상환 유예 재연장의 경우에는 어차피 발생할 부실이 내년 이후로 이연되는 것으로 나중에 한꺼번에 갚아야 되기 때문에 오히려 기업에 악영향을 미치고 은행은 향후 부실폭탄으로 건전성이 악화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시장 상황을 생각하지 않은 정치권 선심형 포퓰리즘일 뿐”이라며 “은행 돈을 쌈지돈처럼 꺼내쓰는 관행 등도 없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