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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터뷰] 장혜진 "또 엄마 역할? 연기하면서 치유 받는 기분"


입력 2020.11.19 10:00 수정 2020.11.19 10:06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지난해 '기생충'으로 국내 뿐 아니라 전세계에 존재감을 각인시킨 배우 장혜진이 이번에는 최하나 감독의 입봉작 '애비규환'으로 돌아왔다. 9년간 쉬면서 연기를 그만두려고까지 마음 먹었지만, 자신을 배우로 찾아준 윤가은, 봉준호 감독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다시 일어섰다. 장혜진은 그 때의 동력을 잊지 않고 나아가기 위해 선택한 작품이 '애비규환'이라고 말한다.


'우리들'에서 현실적이면서 자연스러운 엄마 연기를 선보였고, 그 모습을 본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에 러브콜을 보냈다. 그 결과 현재 장혜진은 '사랑의 불시착', '니나 내나', '출사표', '산후조리원', '애비규환'까지 출연하며 바쁘게 활동 중이다.


"누군가가 저와 함께 하자고 하면 저는 너무 고마워요. 연기를 그만뒀을 때 제 문제가 컸어요. 연기가 들어올 만한 제 안의 여유가 없었죠. 마트에서 일하면서 위안도 얻었지만 욕도 많이 먹었어요. 그 때 저를 불러준게 윤가은 감독인데, 다시 현장에 나가보니, 하고 싶은 열의와 헤쳐나갈 힘이 생기더라고요. '애비규환'은 그 때의 에너지가 그대로 담겼어요."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전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이 지난해 일이다. 올해는 92년생에 '애비규환'이 첫 작품인 최하나 감독의 손을 잡았다. 최하나 감독이 나이는 어리지만, 장혜진에게 봉준호 감독처럼 자신이 따라가야 할 현장의 수장이란 점에서 다를 것이 없었다.


"감독님이 젊다는 인식은 있지만 나이가 어리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기존 감독님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현장에서의 패션피플이랄까요?(웃음) 시간이 지나면 머리도 못감고 트레이닝복 입고 오시는 감독님이 많은데 최하나 감독님은 항상 패셔니스타셨죠. 그래도 저에겐 최하나 감독님도 봉준호 감독님과 마찬가지로 역할과 존재감은 똑같아요. 어쨌든 저는 그들의 선택에 의해 연기를 해야 하는 입장이니까요."


영화 '애비규환'은 똑 부러진 5개월 차 임산부 토일(정수정 분)이 15년 전 연락 끊긴 친아빠와 집 나간 예비 아빠를 찾아 나서는 설상가상 첩첩산중 코믹 드라마로, 장혜진은 토일의 엄마 선명 역을 맡았다. 장혜진은 에프엑스 크리스탈이 자신의 딸로 출연한단 소식에 설레고 궁금했다.


"'상속자들'을 통해 수정이를 보면서 배우로서 연기 잘한다고 생각했죠. 특히 말에 리듬감이 있는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봤는데 조금 더 성숙하게 감정 전달을 하더라고요. 단언컨데 수정이가 현장에서 아이돌로 있던 적은 없어요. 매우 털털하고 예의도 바르고요. 자유분방하지만 정리가 돼 있는 배우입니다."


장혜진은 시나리오를 읽을 땐 몰랐던 캐릭터들의 상처와 화해가 눈에 보여 울컥하는 마음으로 '애비규환'을 감상했다. 그리고 또 한 번 젊은 감독의 직선적인 메시지 전달에 무릎을 쳤다.


"영화로 봤을 때가 조금 더 감동적이었어요. 시나리오 읽을 땐 선명과 두 아빠들이 철부지처럼 느껴졌어요. 토일이를 방황하게 만들었으니까요. 그런데 완성된 걸 보니 아빠들의 아픔과 상처가 잘 보이더라고요. 최 감독님이 콩가루 집안을 통해 위로를 주고 싶다고 시작 전에 말씀하셨는데, 그 의도가 정확히 영화를 통해 드러나더라고요."


토일의 임신으로 두 집안이 뒤집히지만, 엄마인 선명은 냉철함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인물이다. 토일이 가출을 하든, 친아빠를 찾아나서든, 끓는 화와 걱정을 숨기고 이성적으로 토일이를 대하려 한다. 장혜진은 최하나 감독이 원하는 선명의 색깔을 인지했지만 연기하면서 속이 끓어올라 난감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며 웃어보였다.


"감독님은 냉철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제가 몰입하면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부글부글 거렸어요.(웃음) 엄마들이 화를 참으면 동공과 목소리가 흔들리잖아요. 제가 딱 그랬죠. 감독님이 말하는 냉철과 제 감정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데 애썼어요."


현재 딸을 키우고 있는 장혜진에게 실제로 딸이 혼전임신을 한다면 어떤 결정을 내릴 것 같냐고 물었다.


"임신이 문제가 아니라 5개월이나 숨긴 뒤 말한 사실이 섭섭할 것 같아요. 조금 더 일찍 말해줬다면 함께 고민하고 나눴을텐데 말이죠. 제 딸에게도 정말 사랑하고 책임질 수 있다면 허락할 것 같아요. 딸의 인생이지 제 인생은 아니니까요."


장혜진은 처음에는 '애비규환' 속 선명보다 강말금이 연기한 호훈의 엄마 역이 더 탐났다고 털어놨다. 중년의 나이에도 자유분방하고 범상치 않은 엄마의 캐릭터에 눈길이 더 쏠렸던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엔딩 장면이 선명을 연기하기로 마음 먹은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호훈 엄마가 하고 싶다고 하니까 최하나 감독이 '선배님은 선명을 하셔야 합니다'라고 계속 저를 설득하더라고요.(웃음) 엔딩장면이 너무 멋있고 와닿아서 선명 역을 맡기로 마음을 굳혔죠. 이 장면을 읽으면서 '왜 나는 엄마 손잡고 결혼식장에 들어갈 생각 못했지'란 생각을 했어요. 촬영하면서도 이 광경 자체가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리딩 때 그 장면을 읽으면서 이런 발상 자체에 깜짝 놀랐어요. 우리 딸이 만약에 제 손 잡고 들어가달라고 너무 좋을 것 같아요."


극중 선명과 토일의 고향은 대구다. 일찍 서울로 상경한 탓에 토일이는 사투리를 구사하지 않지만 선명은 화를 주체하지 못할 때 대구 사투리가 튀어나온다. 경상도 지역 사람이 아니라면 부산과 대구 사투리를 구분하지 못할테지만, 자신이 부산 출신이다보니 경상도 사람까지도 속여보자란 심산으로 차이점을 두려했다.


"저는 부산 출신이라, 대구 사투리를 열심히 한다고 노력은 했는데 완벽하진 못한 것 같아요. 보고 반성했어요."


'우리들', '니나내나', '사랑의 불시착'에서 엄마 역을 맡은 장혜진은 이번에도 엄마 역할이다. 다른 역할이 욕심날 것도 같았지만 그는 자신이 편하게 연기할 수 있는 엄마 캐릭터를 선호하고, 캐릭터에 몰입해 상처를 치유한다고 고백했다.


"제가 엄마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요. 제가 엄마다보니 표현할 감정에 더 이입도 잘 되고요. 가족 이야기를 촬영하면 스스로 다독거려주는 느낌을 받아요. 나의 혹은 주변의 이야기다보니 많은 분들께 공감을 줄 수도 있고요. '애비규환'을 촬영하면서는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다시 바로잡아나갈 용기가 있다면 절대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우리 모두 잘해보려는 선택으로 상처도 받고 성장하기도 하잖아요."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이며, 인터뷰도 화기애애하게 이끌어가는 장혜진이지만, 사실 그는 소심한 성격으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즉각적으로 잘 표현하지 못한다고 의외의 면을 밝혔다. 자신이 상처를 받아도 아무도 '왜'라고 물어봐주지 않았던 경험이 그를 더 위축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도구가 장혜진에게는 연기인 셈이다.


"친구들이 저보고 경주마 스타일이라고 해요. 연기 할 땐 집에도 잘 전화 안하고 집중해요. 개인적으로 상처를 연기로 치유해나가는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조금 소심하거든요. 상처도 잘받고요. 제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연기였어요. 제가 속상해서 화를 내거나 징징거리면 시끄럽다고만 하지 아무도 왜 화를 내냐고 물어봐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연기로 화를 내고 징징거리니까 칭찬을 해주더라고요. 연기로 스트레스가 해소되니 더욱 집중하는 것 같아요."


'애비규환'은 장혜진이 엄마로서 다시 한 번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다. 더 단단한 엄마가 돼 아이들을 지켜주고 싶다고 말한다.


"'애비규환'을 통해 토일이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고 의지하는지 또 한 번 느꼈어요. 저도 제 딸에게 엄마가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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