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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감독탐구⑫] 박찬욱, 미장센이란 무엇인가


입력 2020.11.28 10:22 수정 2020.11.29 09:34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영화 '아가씨' 스틸컷 ⓒ이하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언제부턴가 ‘미장센’은 영상이나 장면의 심미성 또는 디테일의 완벽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매우 아름다운 풍광을, 그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보전해 화면에 담았다고 해서 미장센이 좋다고 얘기하지는 않는다. 영상미라는 표현이 가깝다. 마찬가지로 바닥에 놓인 휴지통 하나 벽에 꽂은 압정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배경이 되는 공간의 모든 요소를 세세히 준비했다고 해서 미장센을 말하지 않는다. 소품, 크게 볼 때 미술의 영역이다. 미장센은 무엇일까.


사전적으로 볼 때 미장센은 ‘무대 위에서의 등장인물 배치나 역할, 무대 장치, 조명 따위에 관한 총체적 계획’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필자는 장면의 ‘경제성’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소설을 예로 들면, 어떤 인물의 성격에 관해 성장 과정 등 이력에 대한 설명이나 인상적 에피소드를 통해 충분히 전달한 뒤 본격적으로 핵심 스토리를 시작할 수 있다. 인물의 감정 또한 글로서 상세히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가 시작됨과 동시에 스토리 마차가 달리기 시작하고 사건이 발생한다. 관객은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인물의 성격도 파악한다. 인물의 감정은 배우의 연기표현에 크게 의존한다.


때문에, 감독은 장면 안에 우리가 인물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요소들을 배치해 놓는다. 때로 색감일 수 있고, 때로 카메라 구도일 수 있고, 때로 소품일 수 있고, 때로 공간의 구조나 정리 습관일 수도 있고, 때로 인공이나 자연의 조명일 수 있고, 때로 음악이나 음향일 수 있고, 그 모든 합일 때가 많다. 인물의 감정 또한 배우에게만 맡겨 놓는 것은 너무 가혹하므로 카메라 각도와 조명, 음악과 색감 등으로 우리의 공감을 돕는다. 그러한 모든 것에 관한 감독의 계획, 연출력이 장면 안에 실행된 결과가 미장센이다. 줄줄이 늘어놓을 설명들을 하나의 장면 안에 압축해 놓는 것, 이러한 측면에서 경제성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렇다고 미장센이 심미성이나 상세함과 연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으로 인물의 성격과 감정, 사건의 단서들을 심어놓되 ‘아름다운’ 장면으로 완성했을 때 우리는 ‘미장센이 좋다’고 칭송한다. 그 아름다움이 미술의 크로키처럼 즉흥적이고도 순간적으로 거칠고 대범한 필치에 의해 잡히면 좋겠지만, 영화는 시간의 예술이다. 단 하나의 프레임 안에 잠깐 스치는 장면도 길고 긴 사전제작의 준비를 거쳐 준비되고 촬영된다. 그래서 디테일까지 감독과 제작진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고, 그렇기에 인물과 사건과 감정과 스토리가 효과적으로 응축된 장면인데 아주 작은 부분까지 공을 들였을 때 우리는 또 ‘미장센이 좋다’고 경의를 표한다.


여전히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미장센, 가장 완벽한 미장센을 보여주는 감독의 영화 한 편을 통해 얘기해 보면 이해가 좀 더 쉬울 수 있겠다. 다름아닌 박찬욱 감독, 그중에서도 ‘아가씨’를 통해 설명해 볼까.


처음엔 백작과 숙희가 한 패였지만… ⓒ

먼저 ‘아가씨’(감독 박찬욱, 제작 모호필름·용필름, 배급 CJ엔터테인먼트)는 어떠한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줄거리를 설명할 수 있는 중첩적이고 정교한 영화다. 처음 볼 때, 반전을 알고 볼 때, 같은 인물이 다르게 보이고 같은 장면이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영화기도 하다. 또 어떤 인물을 중심에 두고 보느냐에 따라서도 여러 줄거리가 나온다. 잘 만든 영화는 여러 가지 접근법이 이미 허용돼 있다. 관객을 자유롭게 하는 것, 좋은 영화의 미덕 중 하나다. 필자는 박찬욱 감독의 말 중 “한 개인이 혹은 사회가 어떻게 근대성을 획득해 가는가를 보여 주려 한 영화다”라는 말에 크게 경도됐다. ‘근대성’이라는 측면에서 ‘아가씨’를 되짚어 보면 이렇다.


‘아가씨’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자신의 방식으로 근대성을 확장해 간다. 하정우가 연기한 노비 고판돌은 타고난 외모와 비상한 말재주를 이용해 일본인 백작 행세를 한다. 행세에 걸맞은 부를 얻기 위해 거대한 유산 상속녀인 히데코(김민희 분)와의 결혼을 꿈꾼다. 노비에서 일본인 귀족으로의 재탄생, 자신의 유일한 재주인 ‘사기’를 통해 근대성을 성취해 내려 하지만 만만찮다. 그래서 끌어들이는 게 소매치기로 근근이 먹고사는 고아 숙희이다. 김태리가 연기한 숙희 또한 백작을 도와 유산 일부를 배당금으로 챙겨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는 게 꿈이다. 거리의 어여쁜 신여성들처럼 양장을 입고 공부도 하고 싶다. 그래서 타마코라는 일본 이름으로 히데코의 집에 하녀로 들어간다.


히데코를 자신의 세계에 가뒀다고 코우즈키는 생각했지만… ⓒ

조진웅이 연기한 코우즈키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근대성을 획득, 구축해 가는 인물이다. 통역사를 하다가 금광채굴권을 얻어 점프대에 올라선 뒤 몰락한 일본 귀족(문소리 분)과 결혼해 신분을 얻었고, 이제 처조카인 히데코(김민희 분)와 결혼해 거대한 유산까지 차지하려는 인물이다. 중인 정도의 조선인 통역사에서 조선을 강점하고 있는 일본 제국주의 귀족 거부가 되었으니 외적으로는 충분히 근대성을 획득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만족이 안 된다. 상류계급의 지적 허영마저 채우고 싶다. 자신이 성공했음을, 전 근대적 인간을 벗어나 근대적 인사로 거듭났음을 날마다 확인하고 싶다.


김민희가 연기한 아가씨 히데코는 어릴 적 부모를 잃고 아무런 선택권 없이 살고 있다. 저택도 재산도 다 내 것이라지만 허울뿐이고 모든 걸 이모부가 관리한다. 심지어 무엇을 읽고 배우느냐고 이모부에게 결정권이 있다. 이모부 감독 아래 이모는 음란소설에 나오는 단어들을 가르치고 낭독법을 가르친다. 그리고 이모가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지금, 이모를 대신해 이모부의 손님들 앞에서 음란소설 낭독회를 해야만 한다. 진정 이것이 상속녀 히데코, 주인의 삶인지 노비의 삶인지 분간이 어려울 지경이다. 히데코는 자신의 재산을 노리는 이모부, 그리고 짝을 이뤄 덤비는 백작과 숙희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


히데코와 숙희에겐 그들만의 계획이 있었으니… ⓒ

그것은 단순히 재산 지키기 같은 전 근대적 희망이 아니다.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곳으로의 탈출, 모든 악연을 끊고 내가 원하는 인연을 내가 선택하는 삶을 희망한다. 이러한 희망은 숙희의 것과 똑같다. 두 여성은 자신들의 자유와 독립을 향해, 근대성을 향해 의기투합한다. 백작과 코우즈키에게는 보란 듯이 한 방 먹인다. 코우즈키나 백작이 추구했던 것보다 진정 근대적인, ‘자기 해방’을 향해 항해한다.


이러한 인물의 욕망과 개성이 박찬욱의 미장센을 통해 어떻게 표현됐는지 살펴볼까. 코우즈키가 지배하고 있는 히데코의 집을 보자. 이 저택에는 유럽풍 양식과, 일본식(화식), 한식이 공존한다. 조선인이면서 일본인인 척하는 코우즈키는 자신의 기거 공간, 특히 서재를 화식과 양식으로 휘감아 자신의 근대성을 입증하려 한다. 일본식을 기본으로 양식을 지향하는 모습이다. 히데코가 거주하는 집 또한 양식을 기본으로 화식이 가미돼 있다. 한옥에는 하녀장(김혜숙 분)과 하녀들이 기거하는데, 코우즈키는 자신의 과거라 할 한식집과 현재인 일본식에 양식이 더한 집을 비교하며 날마다 성공을 확인한다.


낭독회가 열리는 코우즈키의 서재 ⓒ

특히 서재를 보면 코우즈키의 내면이 보인다. 중앙의 넓은 다다미 홀을 지나면 도코노마식 무대가 있고 여기서 히데코가 음서를 낭독한다. 다다미 일부를 걷어낸 자리엔 일본식 정원이 실내로 옮겨져 있다. “일본에 붙어 먹어야지” 정도가 아니라 “일본인이 돼야지” 마음먹은, 뼛속까지 식민화된 코우즈키다운 구조다.


영국풍으로 꾸며진 서고 ⓒ

지적 허영심을 얘기했는데, 다다미 홀은 서고로 둘러싸여 있는데 영국풍이다. 막대한 돈을 들여 사들인 것이 다름 아닌 책, 희귀본들이라는 것을 대놓고 자랑하는데 막상 낭독하는 것은 끔찍할 정도의 음란서적이다. 또 다다미 홀로 입장할 때는 마치 소수에게만 허락된 상승을 의미하듯이 좁고 길게 ‘비탈진’ 통로를 올라야 하고, 마치 이 정도 문화를 즐기려면 이 정도의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는 듯이 집의 양식 부분을 지나오느라 내내 신고 오던 신발을 벗고 입장한다.


백작과 코우즈키, 연미복 입고 낭독회 감상 ⓒ

코우즈키의 손님들은 오페라 관람이라도 온양 연미복을 입고 입장해 음서 낭독을 듣는데, 상류계급 지식인층의 이중성이 느껴진다. 지식인인 체하는 코우즈키의 이중성에 대해 좀 더 말하자면, 서재 밑바닥에는 거대 문어가 사는데, 코우즈키가 보여준 호쿠사이의 춘화(외설적 그림) 속 거대 문어가 현실로 들어온 느낌이다. 또 서재 지하에는 장차 백작을 고문하고 손가락을 절단할 밀실이 있다. 영국풍 서고와 인간과 성교하는 괴물, 고문실이 공존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속내,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

코우즈키의 서재는 그의 근대성에 대한 욕망, 이중성과 폭력성만을 보여주는 곳이 아니다. 히데코에게는 치욕과 두통을 일으키는 아픔의 장소이자 반전에 반전을 일으킬 거대한 계획을 세우게 하는 공간이다. 숙희에게는 히데코의 아픔과 깊은 속내를 최종적으로 이해하고 공유하는 공간이자 사랑하는 이의 과거를 제 손으로 끊어내는 장소다. 백작에게는 가짜로 꾸민 근대적 성공을 현실로 치환하려는 꿈을 키우는 공간이었으나 히데코를 잃고 서재를 잃어 미쳐버린 코우즈키의 분노를 대신해서 받는 추락의 공간이다. 코우즈키는 몰라도 백작은 추락 후 진정한 근대적 인간으로 변화하는 첫걸음을 떼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화면 안에 있지 않은 ‘완벽함’ ⓒ

서재만이 아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벽지를 비롯해 카펫의 재질과 무늬, 계단 난간과 문살의 문양 등 요소요소에 다양한 의미를 담아내며 히데코의 공간도, 숙희의 공간도 완성됐다. 영화의 모든 공간이 구축됐다. 이렇게 인물들의 근대성을 향한 욕망과 복잡하게 얽힌 내면 심리가 총체적으로 투영되고 결집하는 곳이다 보니 박찬욱 감독과 류성희 미술감독은 그야말로 한 땀 한 땀 공을 들여 완성할 수밖에 없었고, 저택은 ‘아가씨’의 다섯 번째 주인공이 되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인물들에게 입혀진 옷들도, 장신구도, 성교에 쓰이는 기구도, 프레임 안에 들어왔든 잘려나갔든 영화 공간 안의 작은 것 하나도 위와 같은 방식으로 준비된다.


미장센에서 중요한 등장인물의 역할 ⓒ

그리고 드디어! 박찬욱이라는 마에스트로의 지휘 아래 그곳에서, 그것들을 착장하고 배우들이 연기한다. 카메라와 조명에 의해 그 모든 것이 포착되고, 그 전체가 동작과 색감과 음영으로 어우러지고 음악이 더해지며 하나의 화면으로 우리에게 도달한다. 설명이 참 길었지만 그게 미장센이다. 군더더기 설명을 대신해 하나의 장면에 수많은 요소를 응축해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박찬욱 감독이다 보니, 우리가 스토리만 좇아갈 수 있겠는가. 인물들의 복잡다단한 이력과 성격, 내면과 감정을 ‘완벽한 미장센’으로 보여준 만큼 우리 눈은 화면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뜯어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박찬욱의 미장센을 한 번에 다 알아챌 수 없다고 해서 어렵다거나 불친절하다고 볼 일은 아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정도로 인물들이 깊지 않았을 것이고 이야기는 입체적이지 못했을 것이다. 동일한 깊이와 입체성을 엉성한, 경제적이지 못한 미장센으로 전하고자 했다면 훨씬 많은 장면이 필요해 러닝타임은 한없이 길어질 것이다. 미장센을 경제성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모든 것을 지휘하는 마에스트로, 박찬욱 ⓒ

도리어 박찬욱의 정교화게 준비되고 공들여 완성된 미장센은 관객에 대한 최고의 존중이다. 누가 나를 위해, 나를 보여주겠다고 이토록 정성을 들이는 일…결코 흔하지 않다. 영화 자체의 아름다움과 완성도를 위해 미장센은 필수적이지만, 결과적으로 가장 큰 덕을 보는 건 관객인 우리라는 얘기다. 영화를 꼭 한 번 봐야 하는 것도 아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나이 들며 한 번 더 보는 재미도 색다르고 쏠쏠하다. 나들이도 어려운 이번 주말, 4년 전 칸국제영화제에서 빈손으로 돌아온 박찬욱 감독에게 우리가 뜨거운 인정을 보내기에 충분한 ‘아가씨’를 보는 건 어떨까.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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