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 부회장, SKT·하이닉스 등 ICT 분야 총괄…중간지주사 밑그림
유정준 부회장, SK E&S 이끌며 태양광·수소 등 미래 에너지 사업 지휘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자신의 ‘복심’으로 불리는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키며 그룹의 한 축인 ICT(정보통신기술) 분야 총괄을 맡겼다. 그룹 컨트롤타워인 수펙스추구위원회 개편을 통해 자신의 경영 철학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도 가속화한다.
SK그룹은 3일 임원인사에서 박정호 SK텔레콤 사장과 유정준 SK E&S 사장이 각각 부회장으로 승진했다고 밝혔다.
박 부회장은 기존 SK텔레콤 뿐 아니라 SK하이닉스 부회장까지 겸하게 됐다. 또 수펙스추구위원회 내에서도 ICT위원회 위원장을 맡는다. SK그룹 내 모든 ICT 분야를 총괄하게 된 셈이다.
박 부회장은 최 회장의 ‘전략형 참모’이자 그의 경영방침을 실행에 옮겨 온 ‘선봉장’으로 평가받는다. 그룹 내 최고 인수합병(M&A)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1989년 선경 입사 이후 SK텔레콤 뉴욕지사장, SK그룹 투자회사관리실 CR지원팀장(상무), SK커뮤니케이션즈 사업개발부문장, SK텔레콤 사업개발부문장(부사장), SK C&C 대표이사 사장 등 주요 보직을 거쳤다.
박 사장은 2004년 소버린과 경영권 분쟁을 벌일 당시 최 회장의 비서실장을 맡아 곁에서 보좌했고, 한국이동통신 및 신세기통신 인수, SK하이닉스 인수를 주도했다.
특히 SK하이닉스 인수 과정에서 최 회장의 뜻에 따라 내부의 반대를 추스르고 돌파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부터는 SK텔레콤 대표를 맡았으며, SK하이닉스 이사회 의장직도 겸직했다. 그는 그룹의 캐쉬카우 수장 자리에 앉은 뒤 특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2017년 SK하이닉스의 일본 도시바 인수전에서는 최태원 회장과 일본을 오가며 깊숙이 관여하기도 했다.
박 부회장의 이번 승진 및 SK하이닉스 부회장 겸임은 SK텔레콤의 중간지주사 전환 계획과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향후 예견되는 중간지주사 전환은 SK텔레콤을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를 물적분할한 뒤 SK텔레콤 투자회사(가칭)를 중간지주사로 두고 그 밑에 SK텔레콤 사업회사(가칭)와 SK하이닉스, SK브로드밴드 등을 자회사로 두는 형태가 유력하다.
이런 형태의 지배구조를 위해서는 박 부회장이 SK텔레콤과 SK하이닉스를 총괄하는 경영체제가 필수적이다.
그동안 SK텔레콤 자회사들의 합병 및 상장 작업도 박 부회장의 주도 하에 이뤄져 왔다. 미디어 자회사 쪽에서는 SK브로드밴드가 케이블TV 업체 티브로드와 합병을 완료했고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앞서 보안 분야에서는 ADT캡수를 인수하고 SK인포섹 합병도 공식화했다. 토종 앱마켓 ‘원스토어’ 역시 지난 9월 상장 주관사 선정을 마쳤다.
박 부회장은 최근 ‘11번가’와의 아마존 협력을 발표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11번가 3000억원 투자도 이끌었다. 아마존과의 협력으로 사업부진을 극복하고 차세대 커머스 플랫폼으로 도약을 기대하는 11번가 역시 상장이 예고돼있다.
SK텔레콤 내 사업부문은 이미 이동통신(MNO), 미디어, 보안, 커머스에 이어 모빌리티를 포함한 5대 핵심 체제로 재편했다. 비통신 사업을 육성하고 자회사 기업공개(IPO)를 통해 중간지주사 전환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고, 글로벌 빅테크로서의 도약을 이뤄낸다는 복안이다.
최태원 회장은 유정준 SK E&S 부회장에게 SK그룹의 미래 에너지 사업을 맡겼다.
SK E&S는 그동안 그룹 내 존재감이 크지 않았지만 정부 에너지정책과 글로벌 ESG 트렌드에 따라 태양광과 수소 등 친환경 에너지 사업이 부각되면서 그룹의 미래 성장사업을 이끌 계열사로 주목받고 있다.
SK E&S와 브로드밴드로 구성된 컨소시엄은 최근 새만금에 2조1000억원을 투입해 데이터센터와 창업클러스터를 구축하는 대가로 산업투자형 발전산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200MW 규모의 수상태양광 발전사업권을 인센티브로 받은 바 있다.
SK E&S는 현재 전국에 90MW 규모의 신재생 발전설비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번 새만금 수상태양광 발전사업권 확보를 통해 신재생 발전 규모를 3배 이상으로 늘리게 된다.
SK그룹이 최근 설립한 수소 사업 전담 조직 ‘수소 사업 추진단’에서도 SK E&S가 핵심 역할을 담당한다. 수소 생산–유통–공급에 이르는 밸류체인에서 SK E&S는 수소 생산을 담당하게 되며, 오는 2023년부터 연간 3만t 규모의 액화 수소 생산설비를 건설하고 수도권 지역에 공급할 계획이다.
SK E&S는 나아가 ‘블루수소’ 대량 생산 체제도 가동할 계획이다. 이미 연간 300만t 이상의 LNG를 직수입하고 있는 국내 최대 민간 LNG 사업자로, 대량 확보한 천연 가스를 활용해 2025년부터 이산화탄소를 제거한 25만t 규모의 ‘블루수소’를 추가로 생산할 계획이다.
SK그룹은 수펙스추구협의회도 최태원 회장이 강조해 온 ‘ESG 경영’에 초점을 맞춰 개편했다.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고 관계사의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가속화하기 위해 거버넌스위원회를 신설했다.
기존 에너지·화학위원회는 환경사업위원회로 전환해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는 환경 관련 어젠다를 본격적으로 다루게 된다.
이 외에도 바이오소위원회, AI소위원회, DT소위원회를 관련 위원회 산하에 운영하게 된다. 이같은 변화를 통해 환경, 지배구조 등 ESG 문제를 선도해 사회적 책임을 다함과 동시에 바이오, AI, DT 등 미래 먹거리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신설되는 거버넌스위원회는 수펙스추구협의회 자율·책임경영지원단장과 법무지원팀장을 맡고 있는 윤진원 사장이 위원장을 맡게 됐으며, 환경사업위원회는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이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