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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 외면한 '2050 탄소 중립'…정부 내부서도 속도조절론 솔솔


입력 2020.12.15 07:00 수정 2020.12.15 10:56        유준상 기자 (lostem_bass@daum.net)

기재차관 "탄소 중립, 양극화 벌릴 우려"

3차 대유행 현실 동떨어진 엇박자 정책

"탈탄소와 탈원전 병행은 심각한 모순성"

문 대통령이 10일 오후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대한민국 탄소중립선언 '더 늦기 전에 2050' 연설을 하고 있다. 컬러 영상의 1/4 수준의 데이터를 소모하는 흑백화면을 통해 디지털 탄소 발자국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청와대

정부 내부에서 탄소 중립에 대한 신중론이 대두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강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제조업 중심의 한국경제 변화에 대한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소신발언도 터져나오는 상황이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지난 12일 "분야별 탄소배출 비중이나 코로나19로 더 악화된 양극화 추이를 감안해 건물·수송 분야에서 너무 의욕적인 탄소저감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 차관은 이날 늦은 밤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모든 분야에서 매우 강력한 탄소 저감 노력이 필요한데, 탄소 배출 가격이 오르면 장기적으로 건물 난방비와 전기료가 상승하고 자동차 유류세도 비싸진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2050년 탄소 중립(넷 제로) 전략이 발표된 지 채 1주일도 안 돼 정부 경제정책 컨트롤타워 책임자 중 한 명이 속도 조절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2050 탄소중립 범부처 전략회의에서 탄소 중립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적극 주문했다. 이에 지난 7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탄소세 도입을 검토하고 에너지세로 기후대응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 역시 "탄소세 도입 여부를 추후 검토하겠다"고 각각 화답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악화된 양극화
"탄소 중립 시행에 더 벌어질 우려"


김용범 기획재정부 제1차관. ⓒ기획재정부

김 차관 발언은 탄소 중립이 코로나19가 남긴 깊은 상흔인 양극화 문제를 한층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그는 "최악의 코로나19 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에선 끼니를 때우기 위해 구호트럭 앞에 수백미터씩 줄을 서고 마트에서 우유를 훔치는 산모가 적지 않다는 보도가 이어지는데, 연일 다우지수는 최고치 행진을 보이고 있다"며 양극화의 심각성을 설명했다.


국내 상황도 이와 비슷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코로나19로 고용취약계층과 소상공인의 피해가 심각한 가운데 코스피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 중이기 때문이다. 또한 코로나19 위기로 대면서비스업이 큰 타격을 받으면서 임시일용직 등 저소득층 피해가 더욱 심각해졌다. 반면 디지털·비대면 업종이나 자산시장은 오히려 사정이 훨씬 나아져 갈수록 K자형 경제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극명한 차이를 줄일 수 있는 효과적인 저소득층 지원 프로그램이 제때 마련되지 않으면 이 문제는 정치경제적으로 굉장히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게 김 차관의 생각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탄소가 배출되는 주요 분야를 보면 발전과 산업이 각각 35%, 건물과 수송이 30%를 차지한다. 의욕적인 탄소저감목표를 설정하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는 김 차관의 주장에는 이같은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조언을 문 대통령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 모양이다. 김 차관이 탄소 중립에 대한 의견을 밝힌 다음 날인 13일 문 대통령은 기후 목표 정상 회의 연설에서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조속히 상향해 제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팬데믹 현실과 동떨어진 엇박자 정책
"탈탄소·탈원전 병행은 심각한 모순"


1030명의 신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13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가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다. ⓒ뉴시스

정부가 '2050년 탄소 중립'을 발표한 것을 두고, 경제계와 학계에서도 시의적절치 않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코로나19 3차 대유행이 본격화되며 코로나 방역과 재난 지원으로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되는 시국에 국민경제에 +α비용을 초래하는 대책을 발표한 건 정책 목표가 현실을 외면했다는 것이다. 자칫 경제, 방역, 환경 셋 다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 크다.


통계청이 지난 11일 발표한 '2020 한국의 사회 동향’에 따르면 국민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가장 불평등한 문제로 '감염 확산에 의한 경제적 피해를 보상받을 기회'를 꼽았다. 또 코로나19 이전과 같은 일자리에 종사하면서 동일한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다는 응답도 절반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임금이 하락한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탄소 중립까지 시행될 경우 서민 경제에 심각한 타격이 될 수 있다. 민간 저탄소사회비전포럼이 발표한 '탄소 감축 폭이 가장 높은 시나리오'에 따르면 2017년 대비 건물 부문은 3530만톤(66.8%), 수송 부문은 7200만톤(73.3%)의 탄소량을 각각 줄여야 한다.


특히 문 대통령이 13일 기후목표 정상회의 연설에서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더욱 상향하겠다고 밝힌 만큼 난방과 수송 등에서 탄소 배출량이 많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취약 계층이 감당해야 할 탄소 저감 할당량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에너지 절약과 세금 증액 등 국민 숨통을 죄는 '소비적 측면' 대안만 즐비하고 탄소 저감을 위한 '생산적 측면'에서 해법은 제시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따른다. 탈탄소와 탈원전을 병행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모순적 행보다.


성창경 전 에너지기술평가원 수석전문위원은 "재생에너지 발전비중 50%가 넘어가면 환경편익보다 비용이 더 커지는데 2050 탄소 중립을 선언한 대통령 이하 공무원들은 이런 내용도 모른다"며 "태양광, 풍력의 질이 떨어지는 한국이 세계가 부러워하는 청정 에너지 기술 원자력이 있는데 이를 버리고 힘든 길로 가려고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유준상 기자 (lostem_bas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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