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민석 "내 이름 건 프로그램, 제작진은 아무런 잘못 없다"
'철인왕후' 아무리 픽션이라지만...실존 인물·국격 훼손 지적
“제작진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내 이름을 건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모든 잘못은 나한테 있다”
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 설민석의 사과문 중 일부다. 물론 역사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설민석이 느껴야 할 부담감과 책임감은 매우 크다. 이번 클레오파트라 편과 관련해 역사적 사실 전달에 있어서 오류를 범한 것도, 질타 받아 마땅하다. 그렇다고 제작진은 아무런 잘못이 없을까.
설민석의 이 발언이 굳이 필요했었는지 의문이다. 스타 강사인 설민석의 이름을 빌려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지만, 제작진이 짊어져야 할 무게 역시 설민석 못지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간 설민석을 향한 전문성 논란은 있었다. 그럼에도 제작진이 그를 진행자로 내세운 건 재미있는 입담과 과장된 연기력으로 역사에 대한 대중의 호감을 올려놓고,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해내는 덴 설민석 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신뢰’보단 ‘재미’를 택한 셈이다.
제작진이 설민석을 내세운 것 자체는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설민석이 역사 전달자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려면, 철저한 팩트 체크를 거쳤어야 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단이다. 제작진은 기존 자문단을 구성해놓고도 활용하지 못하는 황당한 실수를 저질렀다.
설민석에 앞서 제작진이 내놓은 해명도 그리 와 닿지 않는다. 제작진은 “방송 시간에 맞춰 압축 편집하다 보니 역사적 부분은 큰 맥락에 따라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생략된 부분이 있었지만 맥락상 개연성에 큰 지장이 없다고 판단해 결과물을 송출했다”고 했다. 역사적인 사실을 들려줘야 할 프로그램에서 정보 전달에 이상이 없는지 최소한의 체크도 없었다는 말이다. 심지어 ‘맥락’ ‘개연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 자체에 오류가 있음에도 말이다.
한 번은 실수로 넘어갈 수 있다. “재발 방지를 위해 자문단을 늘리고 다양한 분야의 자문위원 의견을 겸허히 수용하겠다”고 밝혔지만 대중이 여전히 신뢰를 갖지 못하는 건, 앞서 tvN이 이와 유사한 논란을 여러 차례 겪고, 사과 글을 올리면서 얼렁뚱땅 넘어가는 태도를 보여 왔기 때문이다.
예능프로그램에서 ‘재미’를 취하면서 왜색 논란에 휩싸인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지난 7월 ‘여름방학’은 정유미와 최우식이 생활하는 가옥의 구조가 ‘적의 재산’이라는 의미를 가진 ‘적산가옥’에 가깝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는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후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 남긴 아픈 역사의 흔적이다. 기존 민박집을 제작진이 리모델링 하는 과정에서 적산가옥과 유사한 집의 형태로 바뀌었다. 결국 제작진은 사과하고 집을 재정비했다.
또 ‘즐거운 토요일-도레미마켓’에서는 아역배우 김강훈에게 입혔던 갑옷이 임진왜란에 참여한 이시다 미츠나리 집안의 문장이 쓰여 있어 왜색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의상 대여 업체에서도, 제작진도 해당 갑옷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채 그대로 방송에 내보냈고, 결국 제작진은 VOD 재편집에 들어가야 했다.
드라마도 예외는 아니다. 2018년 방송된 ‘미스터 선샤인’은 나라를 팔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완용을 모티브로 실존 단체들을 차용하면서 ‘친일이 정당하다’는 명분을 부여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고, 지난 12일 첫 방송된 ‘철인왕후’도 ‘픽션’이라는 명목으로, 실존 인물과 국격을 훼손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역시나 제작진은 “몰랐다” “그럴 의도는 없었다”는 식의 사과문을 내놓았다.
이렇듯 tvN는 역사 왜곡 논란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논란이 반복되면서 tvN이 역사 문제에 대해 안일함, 책임감 결여도 지적된다. 역사를 재미있게 전달하고, 창의적으로 재구성해내는 건 그들의 역량이다. 동시에 결코 ‘재미’를 위해 바뀌어서는 안 되는 것이 역사다. 드라마, 예능을 통해 건강한 웃음을 주기 위해선 최소한 그 배경에 있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철저한 사전 조사와 검증 과정이 동반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