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이후 3대 국책은행 명퇴자 1명도 없어…퇴직금 적어 유명무실
노사정 머리 맞댔지만 해결책 못찾아…"임금피크 누적에 효율성 저하"
은행권에서 연말 명예퇴직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지만, 올해도 국책은행에서는 명예퇴직으로 떠난 사람이 한명도 없는 등 금융권 '인력 다이어트' 추세에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3대 국책은행은 지난 2015년 이후 명예퇴직자가 단 한명도 없었다. 디지털 금융 시대가 가속화되면서 인력 감축이 화두로 떠오른 금융권이지만, 국책은행에는 '먼 나라 얘기'인 셈이다.
이는 최근 우리은행과 농협은행, SC제일은행, 부산은행 등 시중은행이 명예퇴직 신청을 받으며 대대적인 인력 조정에 나서는 상황과 대비된다. 우리은행은 1966년생 이상을 대상으로 내년 1월 명예퇴직 신청을 받는다고 공지했고, 농협은행은 지난달 26일부터 신청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국책은행의 명예퇴직이 사실상 사문화된 것은 시중은행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퇴직 조건 때문이다. 국책은행의 명예퇴직금은 '공무원 명퇴금 산정 방식'에 따라 임금피크제 기간 급여의 45%만 특별퇴직금 명목으로 받을 수 있는데, 이는 시중은행에 비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
실제 올해 우리은행의 경우 임금피크제에 들어간 1965년생에는 24개월치 급여를 일시 지급하고, 1966년생부터는 36개월치 급여를 일시 지급하기로 했다. 농협은행도 만 56세 직원에 월평균 임금의 28개월치를 지급하고, 55세와 54세 직원에겐 각각 35개월, 37개월치 임금을 주는 등 지난해 보다 퇴직 처우를 강화했다.
국책은행 노조는 명퇴 조건을 시중은행 수준으로 올리지 않으면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는 직원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책은행 한 관계자는 "명예퇴직금이 시중은행의 20%에 불과하기 때문에 명퇴를 하느니 임금피크제에 들어가 정년까지 있는 게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임금피크제는 금융사 별로 만 55~57세가 되면 만 60세인 정년까지 해마다 연봉이 일정 비율로 줄어드는 제도다. 인건비 부담을 줄이는 대신 청년 채용을 늘리라는 취지에서 도입돼 시행 중인데, 명예퇴직이 사라진 국책은행 직원들에게는 '필수 코스'로 통한다.
'역피라미드 인력구조' 가속화…금융권 추세 역행에도 '노답'
국책은행에서 임금피크제에 돌입하는 인력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기업은행의 경우, 임금피크 인력은 2019년 530명에서 2021년 1000명 이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산업은행은 2022년이 되면 산업은행 직원 3200여명 중 550여 명이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는다. 국책은행의 직원 10명 중 1명 이상이 임금피크에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2월에는 국책은행의 명예퇴직 문제를 두고 노사 대표자와 정부 관계자가 머리를 맞댔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이후 6월에도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공공기관의 방만한 경영을 지적하며 임금피크제 개선을 언급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국책은행은 명예퇴직 제도 개편 방안으로 임금피크제 기간 3~4년 중 1년만 임금피크제로 근무하고, 나머지 임금피크 기간 2~3년치의 급여를 퇴직금으로 받는 내용 등을 제안했으나 기획재정부의 반대에 막혔다.
국책은행장들까지 나서서 퇴직금 현실화를 매년 요구했지만, 여론을 의식한 정부 반대를 넘지 못하는 형국이다.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국책은행에 억대 명퇴금까지 얹어주는데 대한 부정적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국책은행에만 명예퇴직금을 높여주면 다른 공공기관 등에서도 "우리도 해달라"는 아우성에 시달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하고 있다.
그사이 시중은행은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위기대응과 금융디지털화에 발맞추기 위해 인건비 부담 줄이기에 나서는 등 허리띠 조르기가 한창이다. 명예퇴직 단행이 단기적인 수익에는 악영향을 미치지만 장기적으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와 관련 국책은행 관계자는 "올해도 명예퇴직자가 한명도 없어서 또 한해 늙어가고 있다. 조직의 노화라는 숙제는 모두가 알면서도 해결책이 없어서 덮어두고 있는 상황"이라며 "누군가의 큰 결단 없이는 역피라미드가 되는 인력구조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결국은 인력 문제이니,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돌파해야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