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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메모리즈⑬] 김용화 감독과 ‘서태지♥’ 이은성


입력 2021.01.22 09:53 수정 2021.01.22 09:54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영화 '국가대표' 방수연 역의 배우 이은선 ⓒ출처=네이버 블로그 doddl9084

때는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2017) 개봉 즈음이다. 김용화 감독에게 문득 영화 ‘국가대표’(2009)에서 방 코치(성동일 분)의 딸, 수연을 연기했던 배우 이은성에 관해 물었다. ‘국가대표’가 마지막 출연작이기도 했고, 촬영현장에서의 모습이 궁금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배우 이은성을 좋아했기에 이제는 볼 수 없는 아쉬움에서 건넨 질문이었다.


김용화 감독은 담담히 당시를 회상했다. “당차면서도 예의 바르고, 보기 드물게 깨끗하고 매력 있는 마스크를 지닌 배우였어요. 연기도 과하지 않게, 잘했고요. 극 중에서 직업으로 옥장판을 파는 설정인데, 어린 배우에게 좀 꺼려지지 않을까 했는데 전혀 그런 게 없더라고요.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 수연에게 잘 어울렸고, 수연 캐릭터가 더 살았어요”.


영화 '국가대표' 스틸컷. 오른쪽부터 배우 이은성, 하정우, 성동일, 이재응, 최재환, 김동욱, 김지석 ⓒ제작 KM컬쳐, 배급 ㈜쇼박스

“예의 바르다는 게 어떤 거냐면. 강원도 평창에서 한창 촬영 중이던 어느 날 은성 씨가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쭈볏쭈볏하더라고요. 어렵게 입을 열더니 뮤직비디오 섭외가 들어왔는데, 촬영장소가 서울이라 고민이라고, ‘안 되겠지요?’ 하는 거예요. 제가 안 될 게 뭐 있느냐, 기회가 되면 어디든 가야지, 촬영일정을 조정하겠다고 말했지요”.


이제 스무 살 갓 넘은 신인 배우, 주연 아닌 조연을 위한 배려에 적잖이 놀랐다. 역시나 따뜻한 마음을 지닌 김 감독에게 엄지를 세우자 “아휴, 당연한 일이죠”라며 손사래를 쳤다. 김용화 감독은 이어 “무심코 물었어요, 그런데 가수 누구? 물어도 되나? 했더니 조심스레 ‘서태지요’라고 답하는 거예요. 제가 누구? 아니 그럼 뭘 망설여 무조건 가야지. 좋은 경험이 될 거야, 응원했죠”라고 말했다. 마치, 자기 일처럼 좋아하는, 설렘과 흥분이 9년이 지난 후에도 묻어났다.


사실 영화 ‘국가대표’와 노래 ‘버뮤다트라이앵글’ 뮤직비디오의 촬영 연도가 같아 영화 촬영 전이나 후쯤에 서태지와 이은성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겠구나, 짐작만 했는데 놀랍게도 촬영 중이었다. 생각해 보면, ‘문화 대통령’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면 인지도도 상승하겠지만, 보통 깐깐하게 퀄리티 따지며 제작할 게 아니니 배우로서 좋은 경험이 될 건 자명해 보였을 터. 하지만 사랑으로, 결혼으로 이어질 줄은 누구도 몰랐을 일이다.


영화 '다세포 소녀'에서 두눈박이 역을 연기한 이은성 ⓒ출처=네이버 블로그 doddl9084

배우 이은성을 좋아한 이유는 여럿인데, 우선 독특한 얼굴에서부터 압도당했다. 남자 같기도 여자 같기도 한 중성적 매력, 현실의 사람 같기도 판타지 속 인물 같기도 한 경계인이 주는 신비함, 오뚝한 콧날에 배우 한지민에게도 있는 작은 진주라도 박힌 듯한 코끝, 도톰한 입술 끝에 자리한 환한 보조개,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쌍꺼풀이어서 더욱 아름다운 눈. 비밀을 가진, 어려움 속에서도 밝고 씩씩한, 재벌과 재투성이를 모두 담을 수 있는,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외모다.


연기도 좋았다. 김용화 감독의 말처럼 과하지 않게, 그러나 제 몫은 분명히 해내는 똑순이였고 뭔지 모르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느껴지는 연기였다. 드라마 ‘반올림’도 좋았지만 ‘얼렁뚱땅 흥신소’에서 선배 예지원과 팽팽한 기 싸움을 벌이는 모습, 재벌의 외형은 갖췄으나 정체를 알 수 없고 뭔가 비밀을 지닌 것 같은 은재 연기가 마음에 들었다. 그 전 영화 ‘다세포 소녀’에서 여장 남자 두눈박이를 연기했을 때부터 자꾸만 눈길이 갔다.


배우 이은성. 영화 '더 게임' 스틸컷 ⓒ제작·배급 프라임엔터테인먼트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원천은 여럿이다. 배우로서 일가를 이루는 일과 자연인으로서 엄마로 아내로 사는 일의 가치를 비교할 수 없다. 우주의 기적과도 같이 짝을 알아보고, 함께 아이를 만들고, 아이가 자라며 보여 주는 우주 이상의 행복을 누리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잘 안다. 배우 시절 어떤 보람과 고통을 느꼈는지 잘 모른다, 현재 얼마큼 만족스럽고 행복한지도 잘 모른다. 다만, 절대 양립할 수 없는 일일까, 선을 넘는 오지랖을 부리는 것은 그만큼 배우 이은성이 ‘다음 장’을 보고 싶어서다. 배우 이은성과 너무 일찍 헤어졌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즈음이니 조금은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꼭 보고 싶다, 배우 이은성을 잊지 않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말해야겠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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