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단체 등 정부 방역에 불만 토로 “지나치게 행정 편의적”
“성공 방역 자화자찬, 살처분 가금류만 2800만 마리 넘어”
정부의 조류인플루엔자 방역대책 살처분 대상 축소 조정에도 불구하고 가금업계와 관련단체들은 정부의 방역정책은 실패라면서 책임론을 제기했다.
환경농업단체연합회,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연대 등 단체들과 업계는 정부의 예방적 살처분이 과잉 대응이라는 입장이다.
정부의 살처분 규정 범위는 과거 반경 500m 이내였다가 2019년 말 3㎞로 개정되면서 강화됐다. 특히 이번 겨울 AI는 발생빈도와 위험도가 높다고 판단해 좀 더 강화된 방역수칙을 적용하고 있다.
이 같은 방역조치와 살처분에 대해 철새가 잘 오지 않아 야생조류로 인한 감염 우려가 없는 농장의 경우나 산으로 가로막혀 왕래가 없는 경우에도 무차별하게 3㎞ 기준을 고수하는 등 방역지침이 지나치게 행정 편의적이라는 비판이다.
또한 업계도 “수평 전파나 역학관계로 확산되는 추세가 아님에도 과도한 살처분으로 양계농가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에 조류인플루엔자 중앙사고수습본부는 닭과 오리에 대한 3㎞ 내 살처분을 축소키로 했다. 가금농장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할 때 시행했던 예방적 살처분 대상을 15일부터 2주간 발생 농장 반경 3㎞ 내 모든 사육 조류에서 반경 1㎞ 내 발생 종과 동일한 종으로 축소 조정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좀 더 구체적이고 세밀한 방역지침을 바랐던 농가들은 정부의 ‘한시적 1㎞ 내 살처분’ 방침에 대해 “방역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보다 현실적인 방역정책을 약속하는 내용이 아니라 그간 방역이 성공적 방역이라며 자화자찬 일색인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발표”라면서 비난했다.
농가들은 “지금까지 과도한 예방적 살처분에 대한 각계의 우려와 문제제기에 대한 방역정책 전환 의사를 밝히는 정부입장이 담길 것이라 기대했던 우리는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정부의 성공적 방역 표현과 관련해서도 “발생농가나 가금류 숫자에 비해 예방적 살처분으로 어마어마한 생명이 죽어나갔다”면서 “미리 다 죽여 놓고 발생숫자로만 적다고 피해를 최소화 했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최근 화성시에 소재한 친환경 동물복지 농장에 대한 AI 예방적 살처분 논란과 관련해 “살처분 대상이 축소된다 하더라도 이전 살처분 대상에 대한 행정명령은 그대로 적용한다”는 정부의 입장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해당 농장인 산안농장의 경우 지난달 23일 이 농장 반경 3㎞내 한 산란계 농장에서 AI가 발생하자 예방적 살처분 대상에 포함돼 같은 달 26일까지 살처분하라는 행정 명령을 받은 이후 방역당국이 살처분을 진행하라는 3차에 걸친 계고장을 보냈지만 살처분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해당 농장은 살처분 집행에 대한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낼 계획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산안마을살처분반대화성시민대책위원회는 “과거에 집행된 국가 행정권력에 피해 본 사건들도 재조사해 그 억울함이 없도록 조치하는 마당에 현재 예방적 살처분 범위가 축소돼 그 범주에서 벗어난 농장을 과거 그 범주에 해당됐다는 이유로 살처분을 밀어붙이고 있다”면서 “고집불통에 더한 일방적인 행정폭력”이라며 맞서는 형국이다.
그러면서 “이미 산안농장 주민들은 반출이 통제돼 출하하지 못해 50일 넘게 쌓여져 있는 120만여 개의 유정란을 보며 한숨짓고 있으며, 이번 조치로 살처분을 면하고 반출이 가능해진다 하더라도 이미 물적 심적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들 단체들은 “정부의 행정편의적 무차별 살처분 일변도의 방역행정으로 수많은 가금류들이 생매장 당하고 농장들의 생산 기반은 무너졌으며, 이를 보상하기 위한 천문학적 예산이 낭비됐다”며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AI 방역정책은 완전히 실패했다. 실패를 인정하고 무책임한 방역결과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가축전염병 예방정책의 근본적 개선을 약속하라”고 촉구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16일 기준 고병원성 AI 발생은 야생조류에서 검출이 184건, 가금농장 발생이 93건, 관상용 2건 등으로 집계됐다. 또 AI 때문에 살처분됐거나 도살 예정인 가금류는 2800만 마리를 넘어섰다.
아울러 가금업계에서는 정부가 일제출하조치 시행과 농가 전파를 우려해 가금농장 출입을 금하면서 농가 피해 가중과 농장 관리에도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등의 지적도 일고 있다.
육계의 경우 올해부터 정부가 일제출하조치를 시행함에 따라 상차 시 규격에 맞지 않는 닭들이 모두 비품으로 전락해 버려 계열화업체와 농가에 피해가 발생함은 물론 비용 부담을 우려한 일부 소규모 업체들이 잔여 물량을 농가에 떠넘기는 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가금농장 출입이 힘들어지면서 꼭 필요한 인원마저도 출입이 제한돼 닭들의 관리가 어려워져 사육성적이 하락하는 등의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