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금융지원 독려하는 한편 대출 총량규제는 강화
은성수 "금융사에 '옥죄라 풀어라' 내 입장도 염치없다"
혼란에 빠진 금융사들 "가르마는 타줘야 할 것 아닌가"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적극적인 코로나19 금융지원을 독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계부채 증가 문제와 관련해 대출 총량을 규제하겠다고 밝혀 업계에 혼란을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돈을 더 풀면서 돈줄을 조이라'는 모순된 요구를 받아든 금융사들도 당혹스럽다는 표정이다.
19일 금융권에선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나온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의 발언을 '해석'하느라 분주했다. 은 위원장과 윤 원장이 지난 17일 한목소리로 가계부채 증가세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며 은행 대출창구를 옥죄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특히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강화하겠다며 '빚투(빚내서 투자)‧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막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불과 하루 전인 16일 은 위원장은 금융지주 회장들과 만나 "코로나19의 완전한 극복까지 실물 지원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소상공인에게 대출창구를 열어두라고 당부한 상황이었다. 은 위원장도 이를 의식한 듯 "어제 금융지주 회장들과 간담회에서 코로나19 금융지원을 독려했는데, 한편으로는 가계부채가 증가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제 입장도 염치가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에 금융권은 혼란스럽다는 표정이다. "금융위원장이 가르마는 타줘야 할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금융사 한 임원은 "과거 정부에서도 부동산 경기를 떠받치는 정책을 내놨다가 과열되면 다시 억제 대책으로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부동산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금융정책을 활용해온 것"이라며 "이번 정부에서는 지금 냉탕에 가라는 것인지, 온탕에 들어가라는 것인지 판단하는 것부터가 혼란스럽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의 뇌관으로 불리는 가계부채는 이미 지난해 3분기를 기점으로 국내총생산(GDP)을 넘었다. 지난 한 해 동안 가계부채는 100조원이나 늘어나 누적액이 1700조원에 이른다. 여기에 국제결제은행(BIS)은 우리의 민간부채 위험도를 11년 만에 주의에서 '경보'로 올렸다. 은 위원장이 "가계대출은 결국 자기 능력 범위 내에서 받는 게 맞다"고 거듭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권에선 당국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유를 정치권의 압박으로 보고 있다. 4.7보궐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포퓰리즘이 금융당국의 정책을 뒤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내년 대선까지 이어지는 정치 시간표를 감안하면 금융당국이 내놓는 정책 방향이 언제든 틀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말 신용대출 급증에도 "규제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더니 정치권의 압박에 갑작스레 대출을 조여 시장의 혼선을 부른바 있다.
당장 금융당국은 이달말 가계부채 증가를 옥죄는 방향의 '가계부채 관리 선진화 방안'을 발표한다고 밝혔다. 은 위원장은 "소득이 없는 젊은층을 어떻게 배려해야 할지 등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가려고 한다"며 "경제에 충격주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선 "이번 대책엔 염치가 있었으면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