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비롯 책임 있는 인사들 “제1호 접종” 소식 없어
인사들이 이렇게 신중한 것, 양보가 아니라 비겁(卑怯)
백신 접종비 2조원…내가 내는 건강보험 부담이 70%
오는 26일부터 국내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예정된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우선 접종 여부를 두고 논란 중이다.
야권에서는 코로나 백신의 순조로운 접종을 위해 다른 나라처럼 대통령이 제일 먼저 백신을 맞는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사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가운데 미국, 영국, 이스라엘 등 32개국은 이미 접종이 상당히 진행돼, 새 감염자 발생이 감소하는 등 백신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고. 나머지 미접종 5개국 가운데 일본, 뉴질랜드, 호주, 콜롬비아도 17일에서 22일 사이에 접종이 시작됐고, 한국은 26일로 꼴찌다.
“K-방역”을 자랑할 때는 대통령과 총리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서더니, ‘꼴찌 접종’에 대해서 해명이나 사과가 없는 것이 꼴 사납고, 대통령이나 총리 등이 생색낸 만큼의 책임감도 보여주기를 바라는 여론을 탓하기는 어렵다.
지난해 12월 초에 시작된 백신 접종에서는 나라 별로 제1호 접종자가 달랐다.
고령자나 의료계 종사자를 앞세운 나라도 있고 지도자가 앞서는 나라도 있었다. 국민들에게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을 보여주고 안도감을 줄 필요가 있는 나라에서는 대통령이나 총리, 국왕 등이 앞장섰다.
일상에서도 전쟁과 테러의 공포가 깔려있는 이스라엘의 경우,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71)가 앞장섰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해 12월 19일 율리 에델스타인 보건부장관(62)과 함께 방송이 생중계하는 가운데 1호 백신 접종자가 됐다.
벌써 이스라엘 국민의 반 이상이 접종했고, 박물관 미술관 등 다중 이용시설들이 재개장을 준비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인도네시아 등도 현직 대통령이 1호 접종자가 됐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78)은 당선자 시절인 지난해 12월 21일, 당시 펜스 부통령(61), 펠로시 하원의장(81)과 함께 방송이 생중계하는 가운데 부인인 질 여사(70)와 함께 백신을 맞았다.
엘리자베스 여왕(94)은 부군인 필립 공(99)과 함께 올 1월 9일 접종했다. 영국에서 90세 할머니가 세계 최초로 접종한 지 딱 한 달 만이다. 여왕은 소아마비 백신 개발 초기인 지난 1957년에도 국민들이 불안해 할 때 어린 찰스(9)와 앤(7)에게 백신을 맞혀 국민들의 불안감을 잠재웠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1호 접종도 마다하지 않을 사람들인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74), 존슨 영국 총리(56),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43)은 아직 백신 접종 소식이 없다. 이들은 모두 코로나에 걸렸던 적이 있어서, 치료 과정에서 백신의 효과가 생겨난 것이 아닌가 보여진다.
국민과 함께 한다는 이미지 정치에 익숙한 정치인들은 생색을 낼 때도 빠르지만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 때도 놓치지 않는다. 그것이 대중 정치인의 숙명에 가깝다. 누리면서 생색은 혼자 내고, 책임은 나 몰라라 한다면 그건 비겁(卑怯)에 가깝다.
우리의 코로나 방역은 사실 정부가 자랑할 게 못 된다. 국민들의 희생과 의료계 종사자들의 헌신과 협조로 이뤄진 것이지 정부가 잘했다고 나설 일이 아니다.
시진핑의 방한(訪韓)이라는 정치적 계산 때문에 발생 초기 중국발 입국을 금지하자는 전문가들의 요청을 연이어 무시해 코로나가 창궐하도록 한 정부 실책은 참으로 가슴 아프다.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발 입국자 차단이 빨랐던 캄보디아는 코로나 사망자가 아예 없고, 부탄(1), 몽골(2), 대만(9), 싱가포르(29), 베트남(35), 태국(83) 등이 선방했지, 한국에서는 1557명의 희생자가 났다(2021.2.21, 월드오미터).
그런데도 정부는 문화가 다른 서유럽이나 미국 등과 비교해 “한국이 선방했다”는 말로 국민의 희생을 가로채고 있다. 떳떳하지 못하다.
자의적인 영업시간 제한, 인원 제한, 거리두기로 영세상인들이 폐업하고 가족들이 설 날 조상 제사도 모시지 못하도록 하면서도, 서울시청 앞에서 수천 명이 분향(焚香)을 하고, 수백 명이 노제(路祭)를 지내도록 한 일 등은 시간이 지나서도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
또 연초 대통령은 신년사(新年辭)를 통해 “우선순위에 따라 순서대로 전 국민이 무료로 접종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며칠 뒤 2 조원 가량의 접종비는 국가 부담 30%, 건강보험 부담 70%로 말이 바뀐다.
더 어이없게도 대통령은 코로나가 극복되면 전 국민에게 위로금을 준다고 한다.
국민들의 희생과 협조로 코로나를 극복한 것은 맞지만, 세금으로 국민들을 위로한다는 것은 이상하다. 세금은 거두기도 어렵지만 잘 쓰기는 더 어렵다는 사실을 알 때도 됐다. 책임 보다 생색이 앞서면 그 자체가 비겁이다.
글/강성주 전 포항MBC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