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은행 MMDA서 최근 한 달새 8조5천억 이탈
증시 열풍에 된서리…이자 마진 악화 '새 암초'
국내 5대 은행의 수시입출식예금(MMDA)에서 최근 한 달 동안에만 10조원에 가까운 돈이 빠져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연초에 MMDA에서 자금이 흘러나가는 모습은 낯설지 않은 풍경이지만, 올해는 주식 시장의 열기가 더해지면서 그 폭이 과하게 불어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가 불러온 제로금리 시대 속에서 수익성을 둘러싼 고민이 커진 은행들에게 이 같은 흐름은 새로운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달 말 기준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 등 5개 은행들의 MMDA 잔액은 총 108조1491억원으로 지난해 말(116조6679억원)보다 8.3%(8조5188억원)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MMDA는 은행의 대표적 단기 금융 상품으로, 잠시만 돈을 넣어놔도 이자를 주는 입출금 통장이다. 차량을 잠시 주차했다가 빼는 것처럼, 주로 짧은 기간 돈을 맡겼다가 인출할 수 있는 특성 때문에 흔히 파킹통장이라 불린다.
은행별로 봐도 상황은 모두 마찬가지였다. 우선 신한은행의 MMDA 보유량은 같은 기간 15조5581억원에서 13조8538억원으로 11.0%(1조7043억원) 줄었다. 농협은행 역시 16조7016억원에서 14조7149억원으로, 국민은행은 20조1107억원에서 19조3052억원으로 각각 11.9%(1조9867억원)와 4.0%(8054억원)씩 해당 금액이 감소했다. 이밖에 우리은행도 30조8858억원에서 27조435억원으로, 하나은행은 33조4118억원에서 33조2317억원으로 각각 12.4%(3조8423억원)와 0.5%(1801억원)씩 MMDA 잔액이 감소했다.
이 같은 연초 은행 MMDA의 약세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MMDA와 보통예금처럼 고객이 수시로 돈을 넣고 뺄 수 있는 요구불예금은 연말에 확대됐다가 연초에 축소되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연말에 상여금과 성과급 등이 지급되면서 잠시 통장에 넣어두는 돈이 늘었다가, 새해 설 명절 등으로 인해 현금 수요가 커지면서 요구불예금에 들어 있던 부동 자금을 꺼내 쓰는 이들이 많아져서다.
다만 올해는 그 정도가 예년에 비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1월 조사 대상 은행들의 MMDA 잔액은 97조1963억원에서 93조61억원으로 4.3%(4조1902억원) 줄어드는데 그쳤다. 이와 비교하면 지난 1월의 MMDA 감소폭은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이처럼 MMDA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금 이탈의 배경에는 증시 호황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빚을 내면서까지 주식 투자에 뛰어드는 빚투 열풍이 불어 닥치면서 MMDA에 들어 있는 돈과 같은 여유 자금은 더욱 남아나지 않는 형국이다.
은행에 들어 있던 개인 자금이 공격적 성향의 투자 시장으로 흘러들어가는 흐름은 해가 바뀌고 난 뒤 한층 빨라지고 있다. 코스피 지수는 지난해 4분기에만 2327.89에서 2873.47로 23.4%(545.58포인트) 급등한 상태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코스피 지수는 해가 바뀌자마자 3000선을 돌파하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 MMDA 위축은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MMDA 등 요구불예금은 저축성 예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객에게 내줘야 할 이자가 적은 저원가성 예금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즉, 싼 값에 자금을 조달함으로써 수익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수단이란 얘기다.
MMDA는 은행의 대표적 단기 금융 상품으로, 가입 시 적용되는 이자율이 시장 금리의 변동에 따라 결정된다. 자유로운 입출금이 가능한 만큼 일반 예·적금에 비해 은행이 제공하는 금리가 낮다. 넣어둔 돈이 500만원 미만의 소액이거나 법인의 경우 예치 기간이 7일 미만일 때는 이자가 아예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가뜩이나 은행들은 0% 대까지 낮아진 기준금리 탓에 주름살이 깊은 상황이다. 시장 금리가 낮아질수록 은행 이익의 핵심인 이자 마진도 함께 축소될 수밖에 없어서다. 이런 와중 그나마 저렴한 조달 금리로 힘을 보태줄 수 있는 MMDA마저 힘을 잃고 있는 현실은 은행들에게 악재일 수밖에 없다.
한은은 지난해 3월 코로나19 여파가 본격 확대되자 기준금리를 1.25%에서 0.75%로 한 번에 0.50%포인트 인하하는 빅 컷을 단행했다. 우리나라의 기준금리가 1% 미만으로 떨어진 건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어 한은이 같은 해 5월에도 0.25%포인트의 추가 인하를 결정하면서, 현재 기준금리는 0.50%로 역대 최저치를 다시 한 번 경신한 상태다.
금융권 관계자는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든 코로나19 충격에 기준금리 반등 시점 역시 점점 뒤로 밀려날 것으로 보이면서, 은행들의 이자 마진도 당분간 회복이 어려울 것"이라며 "여기에 더해 증시 여건 등 외부 요인으로 자금 조달 비용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은행들은 수익성 관리에 이중고를 겪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