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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LH는 흙수저 조롱하며 농지를 사들였다


입력 2021.03.10 05:00 수정 2021.03.09 22:23        이배운 기자 (lbw@dailian.co.kr)

기강·도덕적 해이 2019년부터 본격화…내부 평가는 '자화자찬'

일부 직원 비아냥·몰염치 발언에 분노하는 민심…"자기들이 무슨 잘못했는지 몰라"

2019년 12월 '흙수저 조롱' 논란이 제기됐던 행복주택 옥외광고물.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너는 좋겠다."

"뭐가?"

"부모님이 집 얻어주실 테니까."

"나는 니가 부럽다."

"왜?"

"부모님 힘 안 빌려도 되니까."


지난 2019년 12월 이른바 '흙수저 조롱' 논란을 일으킨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옥외광고 내용이다. 하단에는 '내가 당당할 수 있는 집(家)! 행복주택' 이라는 문구가 적혔다. 행복주택은 신혼부부·청년 등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으로 주변 시세 60~80% 이하의 저렴한 임대료로 공급된다.


광고가 노출된 지 하루 만에 2030 청년 세대가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광고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금수저' 청년이 '흙수저' 청년을 부러워하는 내용은 주거 빈곤층에 속하는 대다수의 청년들을 기만·조롱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쇄도했다.


LH는 사흘 만에 사과의 뜻을 표명하고 옥외광고를 자진 철거했지만 청년 주거난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드러내고 사회분열을 조장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이어 7개월 뒤에 내놓은 '신혼희망타운' 광고에는 신혼부부들을 빈곤 계층으로 표현하고 성관계 묘사를 넣어 빈축을 사기도 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 문제의 광고가 LH 직원들이 광명시흥지구 토지를 본격적으로 사들인 시기에 터져 나왔다는 점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 따르면 투기 의혹을 받는 필지 대부분은 2019년에 거래가 이뤄졌다. '주거 빈곤층'에 대한 안일하고 비뚤어진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뒤로는 땅 투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LH 직원들의 기강 해이 조짐은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났고, 땅 투기 사태도 결국 예고된 참사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2020년 공공기관 청렴도 측정 결과' 발표에서 LH는 종합청렴도·외부청렴도 부문 4등급을 받았다. 청렴도 평가 등급은 총 5단계로 나뉘며 최하 등급인 5등급을 받은 기관은 한 곳도 없다. 사실상 LH가 꼴찌인 셈이다.


LH 2019년 부패행위자 현황 표.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 제공, 데일리안

또한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LH 내부 부패행위 발생 건수는 2014~2018년 동안 연간 3~10건 수준에 그쳤지만, 2019년에는 23건으로 급증했다. 적발된 23건 중 15건의 유형은 '관련 업체로부터의 금품·향응 수수' 등이며 이들이 수수한 금품·향응 액수는 총 1억5700만원에 달한다.


하지만 내부 평가는 낯 뜨거운 자화자찬이다. LH는 내부 청렴도 평가에서 2018년과 2020년에는 2등급을, 2017년과 2019년에는 3등급을 받았다. 또한 LH가 최근 3년간 발간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윤리·청렴 경영, 내부 통제 등을 종합해 측정되는 '윤리경영지수'는 2017년 72.4점에서 2019년 79.2점으로 꾸준히 상승했다. 자체적으론 윤리경영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는 직장인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났다. LH 직원 인증을 받은 한 사용자는 최근 임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에 대해 농민·시민단체들이 시위하는 사진을 게재하고 "층수 높아서 안 들려 개꿀~"이라고 작성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또 다른 LH 직원은 "(LH 직원이라고) 부동산 투자 하지 말란 법 있느냐", "광명에 땅 사둔 사람들이 걸렸을 수도 있는데 무조건 내부정보 악용한 것 마냥 시끌시끌하다"고 주장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청년·직장인들은 LH 직원들의 몰염치한 언행에 일제히 분노를 표출하고있다. 삼성전자 직원 블라인드 사용자 'm***'은 "역시 공기업이 짱이다. 연봉 그까짓 것 몇백, 몇천 오르는 게 무슨 소용인가? 한방에 몇십 배 당기는데"라고 비꼬았다.


기아자동차 직원 사용자 '거****'은 "LH의 진짜 문제점은 자기들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른다는 것"이라며 "피의자들은 파면에 전 재산 몰수 후 징역 30년 이상 가해야 한다. 기본 정치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로 반드시 일벌백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배운 기자 (lbw@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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