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정신 아닌 상태서 메스 잡아도 의료사고만 안나면 형사상 처벌 받지 않아"
5년간 음주 의료행위 7명 적발, 처분은 '1개월 자격정지'…면허 취소 처분 받고도 의사 10명 중 9명 재발급
"처벌 강화, 법적 개선하려고 해도 그 길목에 늘 의사들이 서 있어 번번이 무산"
의료계 "무조건적 처벌·감시 보다는 자율 징계권 달라"
최근 충북의 한 산부인과에서 술 취한 의사가 제왕절개 수술을 집도해 아기가 숨졌다고 주장하는 청와대 국민청원글이 올라오면서, 음주 의료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강화하고 법제화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의무화 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의사의 의료행위가 의료사고로 이어질 경우 해당 의사는 '업무상 과실치사상'으로 형사처벌을 받게된다. 하지만 현행 의료법상 음주 의료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은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의사가 맨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메스를 잡아도 의료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한 형사상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음주 의료행위가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지만, 자격정지와 같은 행정처분을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약 5년간 술을 마시고 의료행위를 하다 적발된 의사 7명은 모두 '1개월 자격정지'의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데 그쳤다.
설령 면허 취소 처분을 받더라도 다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2020년 의사 면허 재교부 신청 96건 중 88건이 인용돼 재교부율이 91.6%에 달했다. 이 가운데는 마약 중독 의사도 포함돼 국민적 공분을 샀다.
관련 법과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의사의 잘못된 의료행위를 감시하기 위해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의무화하자는 이른바 '권대희법'이 발의됐지만, 의사 단체의 강력한 반발로 상임위에서 논의조차 못 되고 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서는 ▲수술실 내 CCTV 설치 ▲행정처분 의료인 이력 공개 ▲금고형 이상 의료인 면허 취소 등 '환자보호 3법'이 논의되고 있다. 특히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이달 3월 안으로 '환자보호 3법' 통과를 추진하고 있는 점은 일단 고무적이다. 민주당 홍익표 정책위의장은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 의료법(중범죄 의사 면허 취소법)의 조속한 통과를 요청한다"며 "일각에서 과도한 면허 제한을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다, 업무상 과실치상은 결격 사유에서 제외했고 의료인의 특수성도 고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수술실 CCTV 의무 설치법'과 '의료인 행정처분 공표법'은 현재 소관 상임위인 복지위원회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수술실 CCTV 의무 설치법'은 지난해부터 복지위에서 여·야·정부가 찬반 격론만을 지루하게 벌이고 있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환자 권익 보호와 의료 사고 방지를 내세웠고, 반대하는 쪽에서는 CCTV가 설치되면 의사들이 방어적 진료를 하게 돼 외려 환자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2월 18일 열린 복지위 법안소위에서 '수술실 입구-의무 설치, 수술실 내부-자율 설치'로 여야의 중론이 모아지는 듯 했지만, 의료사고 피해자 측에서 '반쪽짜리 법안'으로 일축해 여전히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의사 단체에서는 반대 성명 등을 통해 '수술실 CCTV 설치법'에 대한 거부 입장만 표명할 뿐,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3월 국회 통과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그래서 나온다.
최성철 암시민연대 대표는 "대리 수술로 사람이 사망하는 의료사고가 발생해도 1심에서 징역 1년을 부과할 만큼 의료인에 대한 법적 처벌이 약하다"며 "의료행위와 상관없는 사소한 도덕적 결함에도 면허정지 사유가 되는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는 자율 징계 처분 수위가 너무 낮다"고 비판했다.
감태언 의료소비자시민연대 사무총장은 법적 개선이 지지부진한 이유에 대해 "법률을 강화하려고 해도 그 길목에 늘 의사들이 서 있어 번번이 가로막힌다"며 "설사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처음 입법 취지와는 달리 의사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갈까봐 우려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다른 것은 몰라도 음주 의료행위를 근절할 수 있는 방안으론 수술실 내 CCTV 및 블랙박스 설치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수술 영상 기록을 남김으로써 환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문제 발생 시 철저한 진상규명이 가능하기때문이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수술실 내부에 CCTV를 설치해 운영하는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 관계자는 "상시 촬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 동의를 얻어 수술할 때만 CCTV 촬영을 한다"며 "의료진들도 각별히 조심해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정작용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부터 신생아 분만실에 CCTV를 설치한 경기도의료원 포천병원 관계자는 "처음에 CCTV를 설치할 때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보호자들이 더 안심하는 것 같다"며 "의료진도 신생아를 돌볼 때 더 조심하고 신경쓰게 됐다"고 전했다.
다만 의료계는, 의료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처벌·감시 강화 보다는 의사들에 대한 자율 징계권 부여가 잘못된 의료 관행을 바로잡는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현재 60만명의 보건의료 인력을 보건복지부에서 3명의 인원이 관리하고 있다"면서 "선진국처럼 의료 단체에 자율 징계권을 주면 사안에 따라 평생 의사를 할 수 없게 더 엄격하게 관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이어 "의료행위를 하다 보면 윤리적 판단이 복잡해지는데, 법률 조항에서 판단할 수 없는 부분까지 세부적으로 판단해 징계 처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