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세라 돌풍 아니고 새로운 사람 환호해서 보니 36세
이준석은 세대교체 수혜자라기보다 정권교체 수혜자
이준석 현상의 결과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11일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과연 36세 젊은이를 새 대표로 모시게 될 것인가? 지난 한 달 동안의 여론조사 흐름은 그 가능성을 매우 높게 한다. 후보 등록이 시작될 때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 지각변동을 세대교체 바람이라고 부르는 건 너무 도식적이고 안이한 해석이라고 필자는 본다.
보다 일관되고, 왜 36세 인물이어야 했는가에 대한 답으로 더 수긍할 수 있게 하는, 도도한 민심의 변화가 그 밑바닥에 있기 때문이다. 바로 정권교체다.
그가 뜬 시점과 배경에 있는 윤석열과 오세훈의 나이를 보라. 지난 4.7 서울시장 보선에서 ‘바람’으로 나경원과 국민의힘 당내 경선에서, 이어 안철수와 야권 단일화 경선에서 역전승해 최종 당선에 이른 오세훈은 60세이고, 검찰총장 재직 시부터 보수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 대권 주자로서의 `바람'이 일어난 윤석열은 61세이다.
이 두 60대 초반 주자들이 일으킨 바람은 나이 때문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실정, 위선과 무능, 오만과 독선에 실망하고 분노한 민심이 일으킨 반 진보좌파, 중도우파 바람이다. 강경 진보도 강경 보수도 아닌 일반 국민들의 정권교체 바람인 것이다.
그래서 곧바로 이어진 또 다른 바람의 주인공 나이가 36이라고 해서 그것을 세대교체 바람이라고 보는 건 일관된 해석이 아니다. 보수 정당이 (새로운 인물의 대표와 함께) 바뀌어야 정권교체를 확실히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민심이 만든 돌풍인데, 그 돌풍 속에서 그 인물의 나이를 보니 36이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지 않겠는가?
변화를 바라는 바람에 의해 이준석이 구름 위로 올라간 것이다. 그는 그런 시대적 행운을 거머쥔 사람일 뿐이다. 그가 그만한 복을 누릴만한 실력과 이미지는 갖춰 왔기에 그 바람이 가능했다는 건 물론이다.
나경원(57)과 주호영(61)은 과거 여야 당 대표들에 비하면 오히려 젊은 나이다. 그들이 늙어서 지금 고전하는 게 아니고, 기존의 보수 정당 얼굴이기 때문에 고전하는 것이다. 이준석보다 덜 똑똑하고 더 나이 많기 때문에 일반 국민과 당원들이 덜 지지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최근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정권교체를 원하는 민심은 절반 이상이다. 민주당이 계속 집권을 해야 나라에 좋다고 보는 국민은 30%대인데, 이런 여론은 지역적으로는 호남, 연령별로는 40~50대, 성별로는 젊은 여성들이 더 많다.
나라와 자기 삶을 위해 정권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그 밖의 지역, 특히 영남과 충청, 수도권에 많고, 60대 이상 남녀와 20~30대 남성들 사이에서 특히 그런 여론이 강하다. 이 민심이 보수 제1야당 대표 후보 지지도에 그대로 옮겨붙은 것이라고 봐야 한다.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이 먼저 돌풍을 일으켰고, 민심이란 게 늘 그렇듯이 이 돌풍과 함께 중노년층과 영남 지역민들의 선호 또한 이준석 밴드왜건으로 옮겨 타게 된 것이다. 이렇게 돌연한 기류 변화에 이준석은 36세 답지 않은, 준비된 노련함으로 잘 적응하고 이용하고 있는 반면, 나경원과 주호영은 무방비 상태로 쓰나미에 휩쓸려 간 셈이다.
한길리서치가 지난 5일~7일 조사를 보면, 이준석 지지도는 48.2%로 거의 50%다. 2위 나경원(16.9%)에 비해 더블스코어도 아니고 3배에 가깝다. 3위 주호영(7.1%)보다는 약 7배 높다. ‘이준석 돌풍’이란 말이 나오고 상대 후보들이 그를 집중 비판하기 시작했을 때 이-나 차이는 더블스코어였다.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경이로운 바람이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관위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나경원과 주호영에게는 경악할만한 바람일 것이다. 보수의 본산이라는 대구 사람들도 나경원, 주호영이 아닌 이준석 편이 된 놀라운 현실에 두 후보는 직면했다. 두 사람은 국민들이 뭘 몰라서 경험 없고 철없는 이준석에게 맹목적인 ‘세대교체 바람’에 의해 ‘위험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그게 아니다. 국민들은 이준석이 완벽하다고 절대로 보지 않는다. 그 나이만큼 미숙하고 불안한 면도 있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지지가 차이 나게 많은 건 변화를 위한 기대 때문이고,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이준석은 문재인 실정 반사효과의 수혜자이지 36세 나이의 수혜자가 아니다.
그 자신이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 이준석은 지난주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구 시민들로부터 매우 뜨거운 환대를 받은 것과 관련 “지난 4년간 보수가 뼈저리게 느끼고 도출해낸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는 결론이 아닐까 한다”라고 말했다. 맞는 말 아닌가?
상대 후보들이 그의 30대 나이와 0선 경력을 문제 삼아 공세를 벌이는 가운데서도 그는 여성할당제 폐지, 실력주의 도입, 박근혜 탄핵 정당 같은 소신을 밀고 나갔다. TK 눈치나 보는, ‘완곡어법’의 선수들인 기성 보수 정치인들이라면 엄두도 못 낼 정공법이다.
그 결과 여론조사 지지도는 더 올랐다. 정치 감각이 결코 0선 솜씨가 아니다. 국민들은 이런 ‘꼰대’가 아닌 소신과 패기, 실력과 체력을 갖춘 새로운 인물, 변화를 바라고 있다. 36세로 젊고 예쁘장하고 해외 명문대를 나온 ‘영재 소년’이어서 그에게 보수 정당의 키를 덜컥 쥐어 주려는 게 아니다.
그러니 ‘세대교체’라는 말은 쓰지 말도록 하자.
글/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