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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터뷰] 어른이 된 김의성, 말보단 행동으로


입력 2021.06.13 14:59 수정 2021.06.13 15:00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모범택시' 무지개 운수·파랑새 재단 대표 장성철 역

"나이 들며 역할과 수입이 줄어드는 건 배우가 감당해야 할 몫"

1987년 극단 한강 단원으로 연기를 시작한 김의성은 현재까지 드라마와 영화를 가리지 않고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특히 영화 '관상', '부산행', 드라마 tvN '미스터 션샤인', '알함브라의 궁전' 등에서 강렬한 악역을 연기해 '악역 전문배우'란 이미지를 각인시키기도 했다.


그는 SBS '모범택시'에서는 복수대행 업체 무지개 운수와 파랑새 파랑새 재단의 대표 장성철 역을 맡아 계획의 판을 짜고 이끄는 연기를 보여줬다. 이번 작품에서는 가해자에게는 냉철한 면모를 보이지만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는 한없이 따뜻해지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연기를 펼쳤다.


'모범택시'는 방영 전 배우 교체, 촬영 후반부엔 작가 교체, 이제훈의 액션 대역 논란, 잔혹성 등으로 여러가지 잡을을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모범택시'는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이었음에도 15.3%(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을 기록하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예상 못할 정도로 뜨겁게 좋아해주시고 응원을 보내주셔서 놀라웠어요. 코로나19 속에서 사고없이 성공적으로 드라마를 마치게 되서 감사해요."


'모범택시'는 사적 복수를 소재로 한다. '악은 악으로 대응한다'는 드라마의 기조가 시청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줬다. 특히 실제 사건을 연상케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해 시청자들이 한 껏 더 몰입할 수 있었다. 현실에서는 답답한 결말을 맺었을지 몰라도, '모범택시' 안에서는 다크 히어로들이 거침없이 가해자들을 처단했기 때문이다.


"근현대사를 통해 법과 공권력이 꾸준히 개선되고 잘 감시되며 긍정적인 쪽으로 변화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법이 충분히 미치지 못하거나,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요. 이런 기획은 그들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줬을 겁니다. 그래서 더 열광해준 것 아닐까요."


좋은 반응도 있었지만 일부 시청자들은 사적 복수라는 키워드가 사회적 윤리와 상충하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김의성 역시 방송 전에는 현실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자세하게 구현한 점과 높은 수위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모든 히어로물은 사적 복수를 위해 법과 공권력을 비웃는 이야기가 바탕이잖아요. 미디어는 이걸 오락으로 즐기는 거죠. 한편으로는 준비하면서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어요. 묘사의 수위도 높았고 주제 차제도 사적 복수에 대한 이야기다보니 사회적 유리와는 부합하지 않는 부분도 있고요. 저는 특히 1부에서 장애인 여자를 고문하는 신이 시청자로서 마음이 걸리더라고요. 하지만 2부에서 가해자에게 똑같이 재현하는 순간, 말로 할 수 없는 쾌감을 느꼈어요. 이 순간이 중요했어요. 우리 드라마와 시청자들이 약속을 맺는 순간이었거든요. 무리한 설정들도 시청자와의 약속이 맺어지면 허용이 가능해요. 무리한 설정도 그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나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장성철은 과거 부모님이 연쇄 살인범에게 살해 당한 후 공권력에 불신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과거의 상처로 인해 가해자를 처단하는가 하면 끔찍한 일을 겪은 피해자는 물심양면으로 지원한다. 김의성은 극단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장성철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고. 지금까지 맡았던 캐릭터 중 가장 고민이 컸다고 털어놨다.


"이 사람의 이중성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어요. 한쪽의 감정만 다룬다면 고통과 연민만 파고들면 됐지만, 자애로운 사람임과 동시에 눈도 깜짝하지 않는 면도 공존했어야 했어요. 고민 끝에 양쪽 모두 장성철이란 결론을 내렸어요. 그런 두 가지 모습을 갖는 게 인간으로서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사람은 모두 양면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잖아요. 너무나 참혹한 트라우마가 아물지 않는 상처를 만들었고, 그 상처가 장성철을 괴물로 만들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학교 폭력 회차였다. '누군가에게는 학창시절의 추억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죽고 사는 문제일 수 있다'란 자신의 대사가 깊게 와닿았다고 고백했다.


"요즘 학교 폭력 사건이 너무 많이 들려오잖아요. 어렸을 때 그런 일을 당한다면 세상이 끝난 느낌을 받을 겁니다. 그런게 마음이 쓰여요.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죄의 무게가 가벼워지는건 아닌 것 같아요."


지난 2월 연예계도 학교 폭력 의혹으로 진통을 겪었다. 연예인들로부터 학교 폭력을 당했다는 피해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한 바 있다. 김의성은 확인되지 않은 정보와 의혹만으로 연예인이 악플에 시달리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을 밝혔다.


"도를 넘은 끔찍한 일들은 엄격하게 법으로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해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이 문제를 기다렸다는 듯이 거짓말을 보태 옥석을 가릴 수 없게 만드는 건 더 문제라고 생각해요. 과거에 잘못을 했다면 마땅한 벌을 받는 것이 맞지만, 온라인에서 충분치 않은 정보들로 매도하는 일은 피해자를 구제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는 이제훈을 향해 주연 배우의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며 칭찬했다. 특히 김의성은 액션 대역 논란이 있었지만 더 멋있는 액션신들을 훌륭히 소화해, 그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14부 감옥 속 액션 장면을 너무 잘 해냈어요. 이제훈이 액션을 소화하는 걸 보고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어요. 이제훈의 액션신을 볼 때마다 '칼을 가는 사람이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죠. 본 받을 점이 많은 배우였어요."


지금까지 작품 속 악역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김의성. 이번에는 이 관심을 빌런 차지연이 가져갔다. 차지연은 2011년에 방영했던 SBS '여인의 향기' 이후 10년 만에 드라마에 출연해 폭발력 있는 악역으로 호평 받았다.


"드라마는 오랜 만이라 걱정이 많더라고요. 함께 연기하면서 압도적인 에너지를 느꼈어요. 보는 입장에선 화났어요. 예전에 내가 하던건데 말이죠.(웃음) 다들 임팩트 있는 역들을 선호하잖아요."


김의성이 주로 악역만 맡아왔던 건 아니다. 다양한 역할을 해왔지만 유독 악역으로 출연했던 작품들이 흥행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웃었다.


"한 두 번 하다보니 그런 역이 많이 들어오긴 해요. 저 스스로도 밋밋한 캐릭터는 조금 심심하더라고요. 배우로서 악역이 연기하기엔 더 재미있어요.


김의성은 SNS를 통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사회적 발언을 하며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지만 다양한 사회의 문제점을 짚으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기도 했다. 그랬던 그는 최근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일에 신중해졌다.


"그 때는 맞았는데 지금은 틀린 일도 있더라고요.하하. 영향력 있는 사람이면 제 발언이 나쁜 영향이나 상처를 주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 주장을 함부로 하기보단 신중하게 생각하고 표현방법도 주의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제 발언이 속시원하다는 이유로 좋아한 분들은 실망하시겠지만 말보다는 행동으로 할 수 있는걸 찾으려 해요. 어른이 된거죠.(웃음)"


김의성이 배우란 직업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머리, 육체, 감정을 모두 쓴다는 점이었다. 항상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극 안에서 감정을 나누는 일이 그에게 기쁨이다. 나이가 들 수록 맡을 수 있는 역할의 폭은 좁아지지만 배우의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부디 오래도록 자신을 필요로 해주길 바랄 뿐이다.


"나이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할 수 있는 일이 적은 건 사실이죠. 수입과 역할이 줄어드는 건 배우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삶의 규모를 줄이고 잘 유지해서 오래오래 일을 하고 싶어요."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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