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銀 보유량 62조원 돌파…증가세 지속
"달러 미리 쌓아두자" 불안심리 수요 계속
국내 4대 은행들이 내준 외화대출이 1년 새 1조원 넘게 불어나면서 사상 최대 기록을 또 다시 갈아치운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 직후 외환시장을 둘러싼 극도의 불안을 경험한 기업들이 계속해 외화를 쌓아두려는 트라우마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금융권의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으면서 외화 수요 확대가 당분간 계속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이런 움직임이 장기적으로 은행의 재무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신한·KB국민·우리·하나은행 등 4개 은행의 외화대출금 평균 잔액은 총 62조644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조3914억원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은행별로 보면 흐름은 다소 엇갈렸다. 우선 신한은행의 외화대출이 15조6961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1조3514억원 증가했다. 국민은행의 외화대출 역시 14조2019억원으로 1조2256억원 늘었다. 반면 하나은행은 18조9281억원, 우리은행은 13조8179억원으로 각각 3691억원과 8165억원씩 해당 금액이 줄었다.
시중은행들의 외화대출은 코로나19 이후 연일 최대 규모 기록을 다시 쓰고 있는 상황이다. 조사 대상 은행들의 외화대출 보유량은 지난해 처음 60조원을 넘어섰지만, 여전히 증가세가 이어지는 모습이다.
이렇게 은행에서 나가는 외화대출이 몸집을 불리고 있는 배경에는 기업들의 자금 확보 노력이 자리하고 있다. 외화대출은 금융당국으로부터 허가를 받은 외국환은행이 특정 목적에 한해 융자를 외화로 해주는 제도로, 그 주요 대상이 대부분 기업으로 한정돼 있어서다.
◆고삐 풀린 외화대출에 은행도 고민
특히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외화대출을 찾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2019년 말 1100원대 중반을 오가던 원·달러 환율은 국내에서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지난해 3월 들어 1300원 목전까지 솟구쳤다. 이처럼 달러의 몸값이 고공행진을 벌이자, 자칫 한 발 늦으면 외환을 구하기 힘들 수 있다는 기업들의 불안도 커져 왔다. 외환이 많이 필요한 기업들이 비용 부담을 감수하고 달러 확보에 나섰던 이유다.
문제는 이제 환율이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에도 외화대출의 확장세가 꺾일 줄 모르고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코로나19로 겪은 경험이 여전히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원·달러 환율이 1100원대 초반까지 낮아졌지만, 코로나19 여파가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자 언제든 이전처럼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판단에 기업들이 계속 외화 보유를 늘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지속적인 외화대출 증대는 은행들에게 마냥 달가운 소식만은 아니다. 늘어난 대출만큼 이자 수익을 거둘 수는 있겠지만, 코로나19로 은행들의 건전성을 둘러싼 걱정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부담을 안길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어서다.
외화대출은 은행 회계 상 원화로 환산돼 위험가중자산으로 분류된다. 그리고 위험가중자산은 은행의 자본력을 악화시키는 핵심 요소다. 은행의 자본 적정성을 평가하는 대표 지표인 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BIS 비율)도 보유 자본을 위험가중자산으로 나눠서 계산한다. 결국 분모인 위험가중자산이 늘어날수록 BIS 비율은 악영향을 받게 되는 구조다.
금융권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해 다방면에서 건전성 관리가 필요한 은행들 입장에서 멈출 줄 모르는 외화대출의 증가 추세는 또 다른 숙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