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전환, UAM, 라스트마일 등 사업구조 개편 불가피
내연기관차 단순조립에 특화된 고임금 근로자 입지 약화
변화에 적응 못하고 기존 체제 고수하면 구조조정 빌미 제공
전기차 시장 본격 개막, 도심항공 모빌리티(UAM), 라스트마일 딜리버리(Last-mile Delivery) 상용화 등 모빌리티 대전환 시대를 맞아 기존 완성차 업체들은 전면적 사업구조 개편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적어도 기존과 같이 내연기관 자동차를 만들어 팔아서는 지속가능성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모빌리티 대전환 시대에서 완성차 업체들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는 기존 내연기관차 생산체제에 맞춰진 인력구조를 조정하는 일이다. 다수의 단순 조립 인력은 그동안 대량생산체제를 기반으로 한 완성차 업체들의 성장 원동력이었으나, 앞으로는 막대한 고정비용(인건비) 부담만 안기는 잉여 인력이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당장 전기차 전환만 해도 상당한 인력 수요 감소가 불가피하다. 부품 수가 3만개에 달하는 내연기관차와 달리 전기차에는 2만개에도 못 미치는 부품이 들어간다.
자동차 공장에서 대부분의 근로자는 차체에 부품을 조립하는 공정에 투입된다. 부품 수가 줄어들면 그만큼 인력 수요도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전기차의 작업공수(工數)는 내연기관차의 70%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의 E-GMP와 같은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활용할 경우 배터리와 전기모터, 바퀴가 달린 스케이트보드 형태의 구동계 위에 차체를 얹는 방식이니 조립 난이도도 한결 낮아진다.
앞으로 전기차에서 모듈화 되는 부분이 많아질수록 작업공수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생산라인이 전기차에 맞춰 전면 교체될 경우 생산직 고용이 30~40%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전기차 전환에 따른 잉여인력 발생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기존 내연기관차를 전기차로 교체할 때마다 해당 차종을 조립하던 생산라인에서 30%가량씩의 잉여 인력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기존 내연기관차의 엔진 등 파워트레인을 만드는 인력 수요도 점차 감소할 수밖에 없다.
전기차는 원가 구조가 내연기관차와 다르기 때문에 잉여 인력을 언제까지 안고 갈수도 없는 노릇이다. 현재 생산되는 전기차의 경우 배터리 가격이 전체 제조원가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배터리로 인해 높아진 제조원가를 인건비 절감으로 충당해야만 전기차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다.
물론 전면적인 인력 구조조정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인력 수요가 줄었다고 그동안 기업의 성장을 함께 이끌어오던 근로자들을 대거 내보냈다가는 강력한 사회적 저항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법적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도 어긋난다.
결국 정년퇴직을 통한 자연감소분을 충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점진적 인력 감소를 유도하는 한편, 기존 인력들에 대해서는 사업구조 개편에 맞춰 새로운 작업 수요를 만들어가는 식으로 공존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기존의 경직된 노사관계가 지속된다면 이조차도 힘들 수 있다. 특히 노조에 편향된 노사간 힘의 불균형을 기반으로 노조가 작업배치 전환 등에 유연성을 허용하지 않고 기존 내연기관 생산체제 하의 작업방식을 고수한다면 사업구조 개편에 있어 계속해서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 파업권을 쉽게 확보할 수 있는 국내 완성차 업체 노조는 사업구조 개편 뿐 아니라 인력 자연감소 등 여러 측면에서 파업을 앞세워 기득권만 고수하려는 구태를 보여 왔다.
현대차와 기아 노조가 올해 임금·단체협약(임단협)에서 정년 연장(64~65세)을 요구한 것이나, 기아 노조가 정년퇴직에 따른 인원 감소분 충원을 요구하는 게 대표적이다.
현대차는 올해 초 아이오닉 5를 출시하면서 생산라인 투입 인원 수(맨아워)를 놓고 노조와 줄다리기를 하느라 양산 일정을 늦춰야 했다. 앞으로 전기차 투입은 물론, UAM, 로보틱스 등 신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노조가 두고두고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가 일 만한 대목이다.
노조의 강성화가 지속된다면 완성차 업체들로서는 새로운 전기차 생산시설을 만들거나 미래 모빌리티 사업에 투자하는 데 있어 한국을 꺼리고 해외를 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미 한국GM의 모기업인 제너럴모터스(GM)와 르노삼성자동차의 모기업인 르노그룹은 중장기 전동화 전환 계획에 있어 한국 공장들을 제외한 상태다.
완성차 업계의 ‘탈(脫)한국’ 러시가 이어지면 국내 근로자들은 구조조정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노조가 사업구조 개편에 적응해 업무 환경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버틴다면 기존 인력을 구조조정할 당위성이 힘을 얻게 된다.
대중은 이미 노조의 편이 아니다. 매년 반복되는 줄파업으로 그들에겐 ‘배부른 자들이 더 달라고 떼쓰는’ 이미지가 각인돼 있다. 올해 역시 현대차와 한국GM 노조가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가결시키는 등 파업 사전준비에 나서는 등 ‘귀족노조’의 꼬리표를 떼긴 힘들어 보인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후일 있을지 모를 완성차 업계의 인력 구조조정 상황에서 노조는 여론의 힘을 빌어 저항할 여지조차 없게 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자동차 산업에 큰 변화가 불어닥치는 상황에서 노조가 유연성 없이 기존 체제만 고수한다면 일자리를 지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구조조정의 빌미만 제공할 것”이라며 “기존 업무가 사라져 새 일거리를 주겠다는데 그걸 못하겠다면 회사를 떠나는 게 맞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