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에게 첫사랑이란 어떤 존재이고 의미일까. 하루라도 바꿔 살아본다면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남자와 여자가 참 많이도 다르다는 건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살면서 자연스레 느끼지만, 사람마다의 개인차만큼이나 남녀 사이엔 차이가 존재한다는 걸 알지만, 특히나 첫사랑에 관한 부분은 굉장히 다른 듯하다.
모든 여자가 그렇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많은 여자는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첫사랑이다. 지나간 사랑을 기억하지 못한다거나 무의미하게 생각한다는 게 아니라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이해할 수 없다며 사랑의 진정성을 논하는 이들도 있지만, 현재의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다음 사랑을 바라지 않는 것이고 영원히 함께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개인적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최고의 예의이자 진정성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첫사랑이라면 잊을 것도 덮어둘 것도 없이 행복할 것이다.
많은 남자에게 있어 첫사랑은 한 명이다. 바뀌지 않고 바뀔 수도 없는 단 한 사람. 그리고 마치 그 사랑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게 진정한 사랑인 것처럼, 순수성이 훼손될까 소중히 간직한다. 심한 경우엔 가슴에 각인이 돼 있다. 그러한 모습이 의리 있고 아름다워 보이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어째서 지나간 사랑에 의리를 지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가장 아름답게 가꿔야 할 사랑을 곁에 두고 왜 엉뚱한 곳에 진심을 간직해 두는 것일까. 만일,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첫사랑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진정성 있고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맺어졌다면 ‘첫사랑’이라고 불리지도 않을 터. 애니메이션 영화 ‘초속 5센티미터’(감독 신카이 마코토, 수입·배급 ㈜에이원엔터테인먼트)는 분명 운명의 상대임에도 어긋나버린 첫사랑을 안고 사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비록 바꿔 살아보는 건 아닐지라도 남자에게 첫사랑이 무엇인지, 아니 어떤 과정으로 각인이 형성되는지 조금은 알 수 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들려주는 얘기라 더욱 믿음이 가는 것도 있다. 신카이 감독의 애니메이션이라면 어느 것이든 좋아하는데, SF보다는 일상적 느낌이 묻어나는 작품을 선호한다, ‘언어의 정원’이나 ‘초속 5센티미터’ 같은. 고독이라는 인생의 본질, 쓸쓸한 일상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피어나는 구원과도 같은 만남, 만남이 가져오는 파장에 대해 어쩜 그렇게 섬세하게 포착하고 유려하게 펼쳐내는지 볼 때마다 감탄한다.
영화 ‘초속 5센티미터’에는 토오노 타카키라는 남자의 인생에서 벌어진 서로 다른 시점의 세 가지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중학교 1학년 시절 1994년을 배경으로 한 제1화 ‘벚꽃 이야기’, 고3인 1999년 배경의 제2화 ‘코스모너트’(우주비행사), 성인이 된 후의 2009년 배경 제3화 ‘초속 5센티미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묶여 있다. 타카키의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하는 시기에 신카이 감독은 카메라를 댔다.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첫사랑의 설레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벚꽃 이야기’이다. 제목은 봄이지만, 주요 이야기는 폭설이 내린 어느 겨울날에 펼쳐진다.
전학이 잦은 유년 시절을 보낸 타카키와 아키라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도쿄로 전학해 초등학교 6학년을 서로에게 의지하며 함께 보낸다. 당연히 같은 중학교에 다닐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키라가 도치키 현의 시골 마을 이와후네로 이사 가면서 “내년에도 함께 벚꽃을 봤으면 좋겠다”던 둘의 희망은 깨지고 만다. 다행히, 반년이 지나 아키라가 타카키에게 손 편지를 쓴 것을 시작으로 소년과 소녀의 인연은 이어진다.
여름에서 가을, 겨울이 지나도록 편지를 주고받던 두 사람. 그런데 이번엔 타카키가 도쿄를 떠나 가고시마로의 전학이 결정된다. 도치키 현에서 가고시마 현, 두 사람의 물리적 거리는 더욱 멀어지게 된 상황. 소식을 들은 아카리는 “마음먹으면 전철 타고 만나러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라는 사실은 역시나 좀 쓸쓸한 일이네”라고 아쉬워한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아키라가 이사를 전화로 알렸을 때 절망한 타카키가 “이젠 됐어”라고 선을 그었던 것처럼, 이번엔 아키라가 편지로 “부모님과 잘 지내”라고 선을 긋는다. 아키라가 먼저 편지를 보냈듯, 아키라와의 결별에 절망한 나머지 전화기 너머 아키라의 슬픔과 상처를 헤아리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고 있는 타카키는 이번엔 자신이 아키라를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가고시마로의 전학 전, 3월 4일 오후 7시, 아키라가 사는 이와후네역에서 만나기로 한다. 아키라는 너무 먼 길임을 걱정하면서도 “타카키와 함께 봄도 찾아오면 좋겠다”며 설렘을 감추지 않는다. 마을에 벚나무가 있다며 그때쯤이면 함께 보았던 도쿄의 벚꽃처럼 역시나 초속 5센티미터로 떨어질 거라고 기쁨을 드러낸다. 2년 만에 두 사람은 함께 벚꽃 비를 맞을 수 있을까.
도쿄역에서 이와후네역은 정말이지 멀다. 도쿄역에서 신주쿠역까지의 9개 정류장을 빼고도, 신주쿠역에서 오후 4시 26분 JR로 출발해 오미야역에서 환승, 다시 오야마역까지 가서 환승해 이와후네역에 도착하면 6시 45분이다. 무려 2시간 19분. 타카키는 4시도 되기 전 3시 54분에 이미 신주쿠로 가는 전철에 올라 있다.
신주쿠역에서 오후 4시 26분 차를 탄 타카키, 아직 오미야역에 도착하지 않은 상황, 열차는 4시 55분 무사시우라역에 4분간 정차한다. 오미야행 급행을 먼저 보내기 위해서다. 타카키는 무사시우라역에 내려서 급행을 이용해 오미야까지 간다. 현재 시각 5시 10분, 오미야역에서 5시 15분 출발하는 오야마행 열차를 기다리는데 눈으로 인해 도착이 10분 지연된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아마도 5시 25분 출발해 오야마를 향해 열차가 달리는데, 폭설로 인해 역마다 부지기수로 정차. 오야마역은 가지도 못한 노기역에서 이미 약속 시간인 7시가 되어 버린다.
“역과 역 사이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멀었고, 열차는 역마다 믿을 수 없이 오래도록 정차했다.”
“창밖을 보이는 낯선 눈 덮인 벌판도, 서서히 흘러가는 시간도, 아플 정도의 배고픔도 나를 점점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약속 시간은 지났고 지금쯤 아카리는 불안해지기 시작했을 거다. 그날, 아카리카 전화한 날 나보다 훨씬 큰 불안을 안고 있었을 아카리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던 나 자신이 몹시 부끄러웠다.”
겨우 출발한 열차는 오야마역에 도착한다. 이제 토호쿠 신칸센으로 갈아타 4개 정류장만 더 가면 아카리가 기다리고 있을 이와후네역이다. 그런데 이번엔 얼마나 지연될지도 알 수 없는 ‘매우 지연’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어쨌거나 아카리가 기다리는 역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눈바람이 휘날리는 역사에서 열차를 기다리는데 그만, 2주에 걸쳐 정성스레 쓴 아카리에게 줄 편지가 날아간다. 지연에 또 지연에도 참고 참았던 눈물이 터져버리는 타카키. 그때 열차가 들어오고 다시 열차가 달리는데, 이번에는 역도 아닌 데서 멈춰 선다. 어둑한 밤, 도착 예정 시간에서 이미 2시간이 지난 8시 54분에 ‘잠시 정차’를 알린 열차는 타카키의 시계가 9시 5분을 가리킨 때로부터 무려 2시간을 제자리에 있고서야 움직인다. 보는 이가 타카키가 되어 이미 기력이 다 빠지고 영혼이 텅 비워진 뒤다.
“그 후 열차는 두 시간이나 아무것도 없는 벌판에 서 있었다. 1분이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고, 시간은 명백한 악의를 품고 내 위를 천천히 흘러갔다. 나는 이를 꽉 물고 어떻게든 울지 않으려고 참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카리…, 제발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 있으면 좋겠어.”
그래도 열차는 달렸고, 드디어 밤 11시 15분에 이와후네역에 도착한다. 아카리는 역사 내에 다소곳이 앉아 있다. 커지는 타카키의 눈망울, 기쁨의 웃음과 함께 터져 나오는 뜨거운 김. 타카키를 발견한 아카리는 타카키의 코트 자락을 붙들고 운다. 기다림이 만남으로 이어진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두 사람은 아카리가 싸 온 주먹밥을 먹고 엽차를 마신다. 역사가 닫혀 갈 곳 없는 소년과 소녀는 벚꽃 대신 눈이 내리는 벚나무 아래로 간다. 그리고 입맞춤. 두 사람의 마음속에서 눈은 벚꽃이 되고 계절은 봄이 된다.
“영원이나 마음이나 영혼 같은 게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13년 동안 살아온 전부를 서로 나눠 가진 듯했고, 그다음 순간 견딜 수 없이 슬퍼졌다. 아카리의 그 온기를, 그 영혼을 어떻게 다루면 될지 어디로 가져가면 될지 나는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함께할 일은 없을 거란 걸 분명하게 깨달았다. 우리 앞에는 아직 너무나 거대한 인생이, 아득하게 긴 시간이 속수무책으로 가로놓여 있었다. 하지만 나를 붙들었던 불안은 이윽고 스르르 녹고 다음엔 아카리의 부드러운 입술만이 남아 있었다.”
“아카리에게 쓴 편지를 잃어버렸다는 말을 나는 하지 않았다. 그 키스를 한 후 세상 모든 것이 변해 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타카키는 그때 ‘아이’를 탈피했던 것일까. 불안감이 사라지고, 세상 모든 것이 변해 버렸기 때문일까. 아득하게 긴 시간, 거대한 인생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편지도 쓰고 전화도 하겠다던 타카키는 혼자가 돼 있다.
‘코스모너트’ 에피소드를 보면, 수신인 없는 문자를 ‘독백’처럼 틈틈이 쓸 뿐 아카리와는 인연의 끈을 놓은 상태다. 그런 타카키를 포기하지 못하고 중학교 2학년 때부터 5년 내내 좋아한 카나에에게 마음을 주는 것도 아니다.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어선지 멀리 하늘만, 하늘 너머 우주만 공허한 눈으로 바라보는 타카키는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었던 타카키는 ‘초속 5센티미터’ 에피소드에서 보면 회사원이 돼 있다. 성실하게 일하고 동료들의 호감을 받지만, 생동감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렵고 맥이 풀려 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그 날 후에도, 시간은 명백한 악의를 품고 타카키의 인생을 느리게 관통하는 것처럼 보인다. 무기력한 일상의 어느 날, 한계를 자각한 타카키는 사표를 쓴다.
“그냥 일상생활만 해도 슬픔은 여기저기에 쌓인다.”
“‘지금도 당신을 좋아합니다’. 3년 동안 사귄 사람은 그런 문자를 보내왔다. ‘그런데 우리는 천 번도 넘게 문자를 주고받았지만, 마음은 1센티밖에 가까워지지 않았습니다’라고 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앞으로 나아가고 싶고, 닿을 수 없는 것에 손을 대고 싶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향하는 건지도 모르고, 거의 협박 같은 마음이 어디서부터 끓어오르는지도 모르면서 나는 무작정 계속 일을 했고… 문득, 나날이 탄력을 잃어가는 내 마음이 몹시 괴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느 아침, 예전에 그토록 진지하고 절실했던 감정이 말끔히 사라졌단 걸 깨달았고 한계에 도달했음을 알았을 때, 회사를 그만두었다.”
영혼을 나눌 수 있는 아카리가 곁에 있었다면 달랐을까. 슬픔이 쌓이지 않고, 마음이 가까워지지 않는 교제를 할 필요도 없고, 협박 같은 마음이 끓어오르지도 않고 마음의 탄력도 잃지 않았을까. 본래 하나여야 하는데 반쪽을 잃고 반쪽으로 살아가는 것 같은 타카키가 편의점에 들어섰을 때, 노래 ‘원 모어 타임, 원 모어 찬스’(One more time, One more chance)가 흘러나온다.
“어느 정도 아픔을 느껴야 다시 널 만날 수 있을까. 한 번만 더 계절이여 변하지 않기를.”
아키라와 타카키에게 한 번의 기회가 더 있는 건가? 첫사랑의 재회를 앞둔 설렘이 순식간에 일었다. 그리고 계속 타카키의 목소리로 들려오던 내레이션이 타카키와 아카리의 하모니로 말해질 때, ‘진짜인가 보다!’ 흥분했다. 두 사람은 지난밤 똑같은 꿈을 꾼 거였다.
“어제 꿈을 꾸었다. 아주 오래된 날의 꿈. 그 꿈속에서 우리는 열세 살이었고, 그곳은 온통 눈으로 덮인 넓은 벌판이었는데, 멀리 인가의 불빛만이 드문드문 보일 뿐 새로 쌓인 눈 위에는 우리가 걸어온 발자국만 있었다. 그런 식으로 언젠가 다시 함께 벚꽃을 볼 수 있을 거라고 나도 그도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그렇게 믿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만나야 한다, 그래야 둘 다 진정으로 웃을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분위기는 무르익고 있었고, 기대했다. 어릴 적 초등학생 아카리가 “내년에도 함께 벚꽃을 봤으면 좋겠어”라고 말할 때처럼, 두 사람이 기찻길 이쪽과 저쪽에 서자 기대는 커졌다. 초속 5센티미터로 낙하하는 벚꽃 아래서 재회하기를 바랐다.
“지금 뒤돌아보면 저 사람도 돌아볼 거라고 강하게 느꼈다.”
타카키는 상대가 아카리임을 모른 채 운명을 느꼈다. 이 짙푸르게 고독한 인생에 분홍빛을 비춰줄 인연을 알아본 건데, 놀랍게도 다시 그녀다. 같은 꿈을 꾼 다음 날, 처음 만났던 도쿄의 기찻길 위에서 두 사람은 기차를 사이에 두고 다시 선 거다.
영화의 결말은 말하고 싶지 않다. 정확히 얘기하면, 믿고 싶지 않다.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여운이 깊게 남는 결말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기적을 믿고 있다. 그 뒤를 우리가 다 본 건 아니잖은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사건’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