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당 인사' 명분, 의원들 '예방 정치'
'경선의 귀재' 정의화 찾아 조언 들어
"당 들어왔으면 공정한 경쟁 이겨야
입당하니 캠프 돕겠다는 분들 많다"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입당 어드벤티지'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입당은 경선을 하겠다는 의미이며 경선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조직이 필요한 만큼, 조직을 갖추고 세를 불리려는 발빠른 행보로 분석된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22일 국민의힘 전현직 인사들과 접촉하며 숨가쁜 하루를 보냈다. 이날 최 전 원장은 의원회관 9층에 의원실을 가지고 있는 국민의힘 의원들을 예방했다. 첫 번째 순서는 회관 909호의 태영호 의원실이었다.
태영호 의원은 이날 최재형 전 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문재인정권이 북한 김정은정권과 대화하고 협력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국제무대에서 북한의 인권 문제를 완전히 도외시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최 전 원장도 "우리가 북한과 통일도 논의하고 핵 문제도 논의하겠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으로 돼있는 북한의 고통받는 국민들의 인권 문제"라고 십분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어 최 전 원장은 여의도 모처에서 정의화 전 국회의장과 약 50여 분간 티타임 회동을 가졌다.
정의화 전 의장은 최 전 원장의 대권 도전을 적극 권유한 '멘토'로 알려져 있었지만, 최 전 원장이 지난 16일 제헌절 메시지 등을 통해 분권형 개헌에 선을 그으면서 적극적인 개헌론자인 정 전 의장과 다소 관계가 소원해진 것으로 전해졌었다. 이날 회동은 그같은 우려를 불식한 것으로, 최 전 원장이 생각이 다른 사람도 폭넓게 만나며 의견을 경청할 자세가 돼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오래 전부터 대권에 도전하기 위한 마음가짐으로 회자되는 문구가 '태산불양토양 하해불택세류(泰山不讓土壤 河海不擇細流 : 태산은 작은 흙덩이도 사양하지 않고, 황하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는다)'"라며 "생각이 다른 인물도 폭넓게 만나며 품어안을 수 있어야 대권에 오를 수 있다"고 짚었다.
최재형 전 원장은 이날 정의화 전 의장과의 회동에서 당내 경선에 관한 조언을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전 의장은 전직 5선 의원으로 정치활동을 하는 동안 최고위원·국회부의장·국회의장을 차례로 역임했다. 이 중 최고위원은 전당대회 경선을 통해 선출되며, 국회부의장과 국회의장은 의원총회 경선에서 승리해야 한다.
특히 정의화 전 의장은 19대 국회 후반기 의장 선출 경선 당시 누구나 황우여 전 의원의 압승을 내다보는 상황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일궈내며 의장석에 앉았던 경험이 있다. '경선의 귀재' 정 전 의장에게 대선후보 경선 조언을 구한 것은 제대로 된 '임자'를 찾아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의화 전 의장도 "(최재형 전 원장이) 용기를 내서 정치 참여를 선언하고 조건 없이 바로 입당해줘서 고맙더라"며 "몇 가지 의견을 구하는 질문이 있어 과거 정치 경험을 토대로 조언을 했다"고 전해, 경선 관련 조언을 했다는 점을 감추지 않았다.
이날 최재형 전 원장이 의원회관 9층에 위치한 국민의힘 의원실을 예방한 만큼, 이를 시작으로 층수를 내려가며 국민의힘 의원들과 계속해서 접촉할 것을 쉽게 추단할 수 있다. 실언 리스크가 따르는 지방 현장 일정 등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서도 '입당 인사'를 지렛대 삼아 꾸준히 언론에 노출될 수 있는 셈이다.
또 의원실 예방을 통해 자연스레 국민의힘 의원들의 호감을 이끌어내고 이들을 지지 세력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날 최 전 원장은 태영호 의원의 '북한 인권' 관련 지적에 따뜻한 맞장구를 쳤다. 정의화 전 의장은 최 전 원장을 만난 직후 "반듯하고 존경할만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더욱 공고해졌다"며 "내 느낌은 시간이 흐르면서 국민들께서도 느끼실 것"이라고 재차 지지를 공언했다.
'최재형 캠프'의 종합상황실장인 국민의힘 김영우 전 의원은 이날 오후 YTN라디오 '정면승부'에 출연해 "최재형 전 원장은 정치를 하려면 당연히 당에 들어와서 공정한 경쟁을 해서 이겨야 한다, 그 과정에서 국민들로부터 평가와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당연시 했다"며 "그렇기 때문에 입당이 빨리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 아무래도 입당을 했기 때문에 당에 있는 의원들과 원외당협위원장들이 마음 속의 부담이 덜어졌다"며 "우리 캠프를 돕겠다고 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고 자부했다.
최재형 전 원장은 한동안 '입당 인사' 격인 예방 정치를 이어가다가 이달말 무렵에 대선 예비후보로 등록하면서 대권 도전을 공식 선언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권 도전 선언문은 최 전 원장의 주변의 조언을 경청해가며 작성하고 있는데, 청년 등 미래 세대의 삶과 관련한 메시지가 비중 있게 담길 것으로 전해졌다.
공식 대권 도전 선언이 이뤄지면 최재형 전 원장이 당내 정치인들만 만나는 게 아니라 직접 언론 앞에 나서서 메시지도 내고 인터뷰도 적극적으로 하면서 인지도를 높여나갈 계획으로 알려졌다.
김영우 전 의원은 "대권 도전 선언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개별 인터뷰부터 하면 일반 국민들께서 조금 혼란스러울 수 있다"며 "왜 감사원장을 사퇴하고 대권주자가 됐느냐는 것을 전체적으로 국민들께 먼저 알리고, 좀 더 자세한 내용을 개별 언론, 미디어를 통해 인터뷰를 하는 게 순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4개 기관이 합동으로 지난 19∼21일 설문해 이날 발표한 전국지표조사(NBS) 차기 대권 지지율 항목에 따르면, 최재형 전 원장은 3%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국민의힘 당내 대권주자로서는 홍준표 의원(4%)에 이어 오차범위 내에서 선두를 다투고 있다. 여론조사와 관련해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최재형 전 원장의 '그림'대로 향후 상황이 전개될 경우, 당내 세(勢)가 붙는데 이어 공식 대권 도전 선언 이후로 국민적 인지도가 상승하면 지지율 상승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박창환 장안대 교수는 "윤석열 전 총장이 입당 여부로 몇 달 동안 고구마 행보를 했다면 최재형 전 원장은 사이다 행보를 했다"며 "바로 입당하고 정치권 (인사들을) 만나서 조직을 만들기 위해 지금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윤 전 총장의 하락세가 이어진다면 최재형 전 원장의 지지율이 상승하는 모양새가 나타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을 보여준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