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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목’으로 불렸으면 좀생이 노릇은 마시라


입력 2021.09.06 09:01 수정 2021.09.06 08:05        데스크 (desk@dailian.co.kr)

후보들의 정홍원 위원장 흔들기

역선택 아닌 교차투표라는 억지

이해하기 어려운 이재명의 질주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들이 지난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공정경선 서약식 및 선관위원장 경선 후보자 간담회에서 서명을 마친 서약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홍준표, 유승민, 하태경, 안상수 후보는 '역선택 방지조항 제외'를 주장하며 이날 행사에 불참했다. 왼쪽부터 황교안, 최재형, 강성민, 장기표, 윤석열, 원희룡, 박찬주, 박진 후보.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비상대책위원장이든 공천관리위원장이든 선거관리위원장이든 외부인으로서 맡을 때는 큰 각오를 해야 한다. 온갖 명분과 찬사로 모셔가지만 들어가는 순간 당내 유력자들로부터 경계 대상 1호가 된다. 면종복배(面從腹背)의 전형적인 행태가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임무가 끝나도 박수는 없다. 사방에서 원망과 조소가 넘쳐난다. 그리고 곧 잊히고 만다.

후보들의 정홍원 위원장 흔들기

당이 예의 없고 매정해서 그런 게 아니다. 그게 정치집단의 속성이다. 누구도 당의 주인은 아니다. 교과서적으로 말하자면 당원이 주인이지만 현실에서 개별 당원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당 소속 의원들, 그 중에서도 유력자들이 당 운영을 좌지우지 하는 것처럼 보이나 그들 또한 스쳐가고 거쳐가는 사람들일 뿐이다. 옛날처럼 이원체제일 때는 사무처가 주인 행세를 했지만 지금 당료조직은 사무조직에 불과하다.


국민의힘이 정홍원 전 국무총리를 대통령 후보 경선 선거관리위원장으로 영입한 것은 ‘공직 경력 및 나이’의 무게, 정치적으로 치우침이 없어 보이는 이미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자신은 정글 속으로 내던져진 기분을 느꼈을 법하다.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한 분 한 분의 면면을 살펴보았을 때 모두가 훌륭한 거목들이어서 무엇보다 뿌듯하게 생각합니다.”


지난 1일 정 위원장이 ‘당내 대선후보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에서 한 말이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서라기보다는 ‘거목’ 시늉이라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의 표현이었다고 여겨진다. 그는 후보들에게 ‘개인의 영달보다는 역사에 칭송받는 사람이 되기’를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거목’들은 호응하지 않았다. 특히 ‘역선택 방지’ 문제를 싸고 격렬하게 반발했다. 그게 심해져서 5일 공정선거 서약식에 홍준표·유승민·하태경·안상수·박찬주 등 5명의 경선 후보들이 정 위원장을 비난하며 불참했다.


정 위원장으로선 자신이 앉아 있을 자리가 아니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사의를 표한 모양인데 이준석 대표가 만류해서 없었던 일로 정리된 듯하다. 이 소동 속에 여론조사 역선택 방지 조항 채택은 포기됐다. 선관위는 5일 밤늦게 그런 결론을 내렸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도 여론조사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당헌상 대선후보 본경선은 선거인단 50%, 여론조사 50%로 이뤄진다). 그 대신에 여론조사는 더불어민주당 후보와의 경쟁력을 묻는 방식을 적용하기로 했다.

역선택 아닌 교차투표라는 억지

일단 논란은 가라앉힌 셈이지만 그렇다고 정 위원장의 앞길이 순탄해진 것은 아니다. 여론조사 문안 내용, TV토론 방식 등 대립 요소는 산재해 있다. 정 위원장의 기대대로 주자들이 ‘거목’ 행세를 해준다면 모를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공격성향을 거칠게 드러내면 또 사의를 표해야 할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미 룰이 결정됐으니 하나마나한 말이 되겠지만 역선택은 심각히 걱정할 만한 문제다. 국민의힘 지지자만큼 민주당 지지자도 많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작심하고 역선택을 할 경우 경선 결과는 아주 달라질 수가 있다. 민주당 후보와의 경쟁력을 묻는 조사에서는 그 위험성이 많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할 수 있지만 여권 성향 유권자들의 ‘전략적 응답’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역선택 방지조항을 둬선 안 된다고 주장해 온 경선 후보들은 공동성명까지 냈다. 역선택이 아니라 교차투표라고 했다. 민주당 지지자라도 후보는 야당 후보를 뽑을 것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민주당 지지자를 배제하는 것은 확장성을 포기하는 것이고 정권교체를 포기하는 것이란다. 말재간은 뛰어나지만 논리적으로는 군색하다.


국민의힘과 이 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에게는 대선승리야 말로 절체절명의 명제다. 그런데 경선에 참여하고 있는 ‘거목’들은 본선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 당의 후보가 되는 게 선결과제이기 때문이다. 그거야 어쩔 수 없지만 적전분열 상 노출은 극도로 경계해야 한다. 후보 경선 하나 깔끔히 치러내지 못하고 이전투구의 양상을 보인다면 어느 유권자가 국민의힘 후보에게 표를 주려 하겠는가. 시늉으로라도 제발 ‘거목’이기를 바란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재명의 질주

민주당은 이미 순회 경선을 시작했다. 4일 대전·충남에 이어 5일 세종·충북의 경선 결과가 발표됐다. 이재명 경기도 지사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득표율을 올렸다. 두 경선 누적 득표율은 이 지사 54.72%, 이낙연 전 대표 28.19%였다. 아직은 초입(初入)일 뿐이지만, 이 지사의 기세가 압도적이라고 할만하다. 이 전 대표가 호남에서 반전을 기대한다고 하나 역전은 어려울 전망이다. 언론들은 문재인 정권 강성지지자, 이른바 대깨문까지도 이 지사를 지지하고 나섰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는 문 대통령의 정권 내 영향력 쇠퇴를 뜻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2012년 대선과 2017년 대선 때 문 대통령은 자신의 주도력이 아니라 좌파 실력자 그룹의 점지로 후보 자리에 올랐던 것인가? 그 세력이 이번엔 이 지사를 선택해서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다고 볼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대리인이었을 뿐이고…. 이 지사의 놀라운 질주가 주는 느낌이 그렇다는 얘기다.


솔직히 이 지사의 독주 상황은 이해가 안 된다. 개인적인 판단이긴 하지만 그는 아주 독선적이고 충동적인 인격형이다. 자기애가 대단해 교만을 감추지 못하는 타입이기도 하다. 형수에 대한 욕설은 자기 파괴적이다. 이 지사보다 15년쯤 더 많이 살았지만 그런 천박하고 흉칙하고 격한 욕설을 하는 사람은 본적이 없다. 그간 음성 파일이 유포됐었으니 많은 사람들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지지세는 오히려 고조되고 있다.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혼란스럽다. 단지 몇 차례의 실수였을 뿐이라는 말로는 해명이 되지 않는다. 굳어진 성격은 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그를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밀어 올리겠다는 민주당 당원들과 지지자들의 심사는 뭘까? 패색이 감도는 민주당의 분위기를 일신하고 대선에서 역동적인 승부를 펼치는 데는 이 지사가 적격이라고 판단했을 것 같기도 하다. 영리해 보이는 인상에 하고 싶은 말 사리지 않는 용기에 기대를 걸면서?


어쩌겠는가. 구경꾼으로 지켜볼 수밖에!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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