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세 인하 첫날 서울 휘발유 61원 이상 떨어져, 경유·LPG도 하락
국제유가 강세는 불안요소…인하분 보다 더 오르면 체감효과 '반감'
정부의 유류세 인하 조치가 시행된 첫날인 12일 휘발유, 경유, 액화석유가스(LPG) 가격이 비교적 큰 폭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유류세 인하 효과가 지속되려면 현재 강세를 보이고 있는 국제유가가 반드시 잡혀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전 전국 주유소에서 판매된 보통 휘발유 가격은 전날보다 ℓ당 평균 29.35원 하락한 1780.81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달 31일(1780.9원) 이후 가장 낮은 수준(보통 휘발유 기준)으로, 유류세 인하 효과가 이어지면서 주간 평균가격은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날 서울에선 전날보다 무려 61.99원이나 내린 1826.67원에 판매되고 있다. 이 지역엔 1500원대 주유소도 등장했다.
경유도 전국 평균은 21.63원 내린 1584.01원이었고, 서울은 44.97원 인하된 1638.88원으로 조사됐다. LPG는 전국 평균이 24.80원 내린 1053.50원, 서울은 39.13원 떨어진 1099.23원이다.
정유사들은 유류세 인하 조치 시행으로 이날 0시 출고분부터 내년 4월 30일 11시 59분 59초 출고분까지 6개월간 한시적으로 유류세 20% 인하가 반영된 가격으로 주유소에 휘발유, 경유, LPG 부탄을 공급하고 있다.
유류세란 휘발유, 경유, LPG 등에 붙는 세금으로, 휘발유와 경유에는 교통에너지환경세와 교육세, 주행세가, 자동차용 부탄에는 개별소비세와 교육세, 부가가치세 등이 부과된다.
기름에 붙는 세금을 내리면서 최종 소비자 가격도 인하됐다. 이번 조치로 유류세가 휘발유 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2일 기준 36.9%, 경유는 29.4%로 줄었다.
휘발유 등 석유제품 가격이 내려가면서 가계 부담도 한시적으로나마 덜게 될 전망이다. 정유사 한 관계자는 "유류세를 인하하면 수요량이 늘어 판매량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실제 2018년 유류세 인하 당시에도 국내 석유제품 소비량이 늘었다. 석유공사에 따르면 휘발유·등유·경유의 국내 소비량은 유류세를 내리기 전인 그해 10월 1943만7000배럴에서 유류세를 내린 11월 2381만7000배럴로 증가했다. 유류세 인하 기간인 10개월간 월 평균 소비량은 2315만9300배럴로,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3.2% 늘었다.
정유·유통업계는 유류세 인하 효과가 즉시 나타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다.
정유사들은 지난 9일 정부의 유류세 인하 효과가 시장에 조기 반영될 수 있도록 인하 당일 직영 주유소에서도 즉시 가격을 낮춰 공급하고, 일반주유소 등 유통망에도 제품을 적시 공급해 국내수급에도 문제가 없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석유유통협회 역시 "500여 석유대리점과 1만여 주유소들이 즉각적인 기름값 인하에 동참해주도록 요청했다"고 말했다. 한국주유소협회도 "사전에 유류세 인하시기에 맞춰 재고관리를 해왔기 때문에 최대한 빠르게 유류세 인하분을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번 유류세 인하 효과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국제유가가 반드시 잡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세금을 낮춰도 원유 가격이 그 이상으로 오르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현재 국제유가는 당분간 원유 수급 불균형이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에 심상치 않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
브렌트유 가격은 지난달 1일 배럴당 79.28달러에서 이달 12일 현재 82.87달러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75.88달러에서 81.59달러로 상승했다. 두바이유 역시 75.68달러에서 81.83달러로 올라서며 강세를 보였다.
원유 가격은 산유국들의 증산 의지가 여전히 없는데다, 천연가스 가격도 강세를 보이고 있어 내년 상반기까지 상승세를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이투자증권은 "최근 80달러에 안착한 국제유가 흐름은 내년 상반기까지 지속될 것"이라며 "코로나 팬더믹으로 훼손됐던 원유 수요는 내년 완연한 회복을 보이는 반면, 공급은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진 크게 늘어날 여지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WTI 기준 유가는 상반기 70~90달러, 하반기 60~80달러 내외로 상고하저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오를수록 유류세 인하 효과는 줄어든다. 특히 원유 가격이 유류세 인하분 보다 오르면 최종 제품 가격도 그만큼 상승해 체감효과가 사라진다.
실제 2008년 당시 유류세를 10% 인하했음에도 불구, 유가가 계속 오르면서 휘발유 가격이 훨씬 치솟은 바 있다. 가격이 오르자 정유업계에 대한 소비자들의 원성도 커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제유가 상승으로 유류세 인하 효과가 사라지면 소비자들의 체감효과는 당연히 떨어지게 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유류세는 내렸는데 제품가격은 오히려 올랐다'는 비난을 정유업계가 뒤집어 쓸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