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이 기준 된 가격 압박 정책
비난 역풍 우려에 숨죽인 시장
대선을 앞두고 정치 논리를 앞세운 금융 정책이 이어지면서 시장이 멍들고 있다. 은행의 대출 금리와 실손보험료, 카드 수수료 등 실생활과 밀접한 금융비용을 두고 정부의 가격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금융사는 혹여나 비난의 화살을 맞게 될까 숨을 죽인 모습이다.
가장 큰 논란이 되고 있는 화두는 역시 대출 금리다. 금리 산정은 시장에 맡기겠다는 방침을 유지하던 금융당국이 돌연 태도를 바꿔 개입 의지를 드러내면서다. 은행이 대출 이자를 통해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결국 자신이 세웠던 원칙을 스스로 깬 셈이다.
문제는 최근 대출 금리가 급격히 오르고 있는 배경에 금융당국의 정책 실패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계부채 증가율을 일정 수준으로 묶는 이른바 총량 규제가 시행되자, 은행권이 실질 이자율을 상향하는 방식으로 대출 속도조절에 나선 까닭이다.
보험업계는 실손의료보험을 두고 금융당국과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보험사들은 법으로 정해진 연간 인상률 상한인 25%까지 실손보험료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올해 들어 3분기까지 손해보험사의 실손보험 손해율이 131%에 달하고 있어서다. 보험사가 받은 보험료가 1만원일 때 그보다 많은 1만3100원이 보험금으로 지급되고 있다는 얘기다.
금융당국도 이 같은 사정에 공감대를 갖고 있다. 그러나 대선을 앞둔 시기의 여론을 고려할 때 물가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실손보험료를 요구대로 상향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카드업계는 수수료 산정을 둘러싼 논란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금융당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이후 경영이 어려워진 자영업자들의 고충을 근거로 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를 추진하면서다.
카드사는 계속된 가격 인하 정책으로 지금도 가맹점 수수료 부문에서 적자를 내고 있다고 항변한다. 실제로 국내 8개 카드사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만 해도 가맹점 수수료로 5000억원 가량을 벌어 들였지만, 2019년부터 지난해 사이에는 1317억원의 손실을 감내해야 했다.
얼마 전에는 여당의 대선 주자인 이재명 후보의 한 마디가 금융권을 들쑤셔 놨다. 이 후보는 지난 7일 서울대 금융경제세미나 초청 강연회에서 "가난하면 돈을 안 빌려주고, 빌려줘도 조금밖에 안 빌려주고, 이자를 엄청나게 높게 내야 한다"며 금융권이 정의롭지 않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저신용 차주의 금리가 높은 건 가난해서가 아니라, 원금을 못 갚을 확률을 기반으로 산출한 일종의 사용료다. 가난한 이들에게 돈을 더 분배해야 한다는 건 복지의 영역이지 금융의 논리가 아니다.
대선이 가까워 올수록 금융권을 향한 포퓰리즘 압박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국민의 환심을 사기 위한 정책일수록 시장에 깊은 상흔을 남기기 마련이다. 이제는 선심성 약속보다 금융의 미래를 그리는 공약을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