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관통하는 민족적 사명
이럴 때 안 나서면 조국(曺國) 아니지
윤석열의 시장보기 달파멸콩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이 9일 새벽 인스타그램에 올렸다는 글이다. 그간 재벌 기업인이 이 엄혹한 문재인 정부 시절에 ‘멸공’을 자주 강조한다고 해서 ‘별스럽다’고 여기긴 했는데 이 글이 그 맥락을 분명히 인식케 해준다. ‘위에 있는 애들’은 북한의 통치 집단이다. 김정은과 그의 충성스런 부하들로 이뤄진 집단이다. 그들을 향해서는 아무리 ‘멸공(滅共)’을 외쳐도 지나치지 않다.
시대를 관통하는 민족적 사명
‘멸공’이 과거 군대에서 쓰던 구호여서 ‘구식’이라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지금 바로 이 시대에 그 당위의 구호를 외쳐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놀라움을 넘어 충격이기까지 하다. 국민 가운데서도 목소리가 큰 측에 의해 잊힌(잊은 걸 자랑하게 된) 그 구호가 기실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민족적 사명 아니던가. 그 언덕을 넘어설 때에만 우리는 민족통일의 길을 볼 수 있다는 자명한 이치를 되새기거나 깨달을 기회가 그렇게 없었다니! 그 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문 대통령과 그 참모들의 친북 정책은 탁월한 효과를 거둔 셈이다.
“제3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사람중심의 세계관이며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사상인 주체사상, 선군사상을 자기 활동의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
제8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사회제도는 근로인민대중이 모든 것의 주인으로 되고 있으며 사회의 모든 것이 근로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하는 사람중심의 사회제도이다.”
북한 헌법이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그 사람중심의 체제 하에서 북한 주민들은 통치의 주체가 아니라 그 대상으로, 그들의 생명은 김정은 집단의 유지·강화 도구로 전락했다. 그들이 얼마나 잔인한 군상(群像)인지는 새삼 떠올릴 필요도 없이 우리의 뇌리 속에 박혀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한 뒤, 참수된 장성택의 시신을 북한 간부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전시했다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장성택의 시신은 북한 고위 관리들이 다니는 건물의 계단에 놓였으며, 그의 잘린 머리는 가슴 위에 얹어져 있는 상태였다고 트럼프 대통령은 부연했다.”(조선일보 2020. 09. 12)
북한 권력집단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김정은의 친형 김정남을 독살했다. 체제에 대한 주민의 복종심, 공포심을 조장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될 때는 예사로 공개·집단 처형을 자행한다. 주민 수십만 명을 가둬둔 채 가혹행위를 자행하는 정치범수용소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능라경기장에서 대중 연설을 하던 시간에도 건재했다(물론 지금도 그대로다). 북한 주민생활의 참상은 그 지옥을 벗어나 입국한 3만3800명(21년 9월말 현재)의 탈북민들이 증언하고 있다.
이럴 때 안 나서면 조국(曺國) 아니지
그 집단을 겨냥해서 말하는 ‘멸공’ 구호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건가?
정 부회장은 이렇게도 썼다. 이 말 어느 부분이 잘못됐다는 것인가. 친북주의자들이 정권의 핵심에까지 들어앉게 된 후 멸공의 책임의식을 의도적으로 잊어버린 것을 자책하긴 커녕 그걸 일깨워주는 사람을 비난하다니! 그러고도 대한민국 집권세력의 일원, 혹은 그 주변세력의 일원이라고 행세하고 산다는 것인가.
어느 네티즌이 “아직도 21세기에 멸공을 떠드나. 중국도 깔 거면 그 어떤 물건도 중국에 수출하지 말라”고 정 부회장을 공격한 모양이다. 이에 대해 정 부회장은 “중국과 상관없다고 내가 얼마나 말했니. 얜 왜 자꾸 중국을 들먹여”라고 일축했다. 중국 없이는 한국 경제가 폭망할 것이라는 위기감을 증폭시키며 서쪽을 향해 헤실헤실 웃기에 바쁜 사람들이 넘쳐나는 이즈음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대기업을 이끄는 사람이 ‘멸공’을 외치려면 얼마만한 용기가 필요할 것인지는 손가락 산수만으로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그 네티즌이 중국 사람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정 부회장이 가리키는 멸(滅)의 대상은 ‘위에 있는 애들’이라는 것을 명념할 일이다.
이럴 때 안 나서면 조국이 아니지!.
아무래도 그 숙취 해소제는 조 씨를 위한 것인 듯하다. 그거 마시고 정신 차려서 멸공의 당위성을 새롭게 깨달을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윤석열 수준’ 운운한 것도 그렇다. 이 나라에서 아무려면 ‘조 씨 수준’에서 비판할 수 있는 ‘수준’이 달리 있을까. 창피한 줄 모르는 것도 ‘숙취 현상’의 하나일 터이다.
윤석열의 시장보기 달파멸콩
그 윤석열 후보가 8일 이마트에서 인스턴트 라면 종류인 ‘열라면’과 함께 ‘여수멸치’. ‘약콩’ 등을 구입한 뒤 SNS에 #달걀, #파, #멸치, #콩이라고 적어 올렸다. 조 씨의 시비걸기에 대한 나름의 응답이겠다.
윤 후보와 당내 후보 경선을 벌였던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9일 오후 가족이 운영하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오랜만에 소식을 전합니다. 아침식사 맛있게 하셨나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라는 인사를 보냈다. 최 전 원장이 달걀말이, 파가 들어간 맑은 국, 멸치 볶음, 콩 자반 등의 반찬으로 아침상을 받는 사진이 함께 게재됐다.
나경원 국민의힘 전 의원은 전날 SNS에 이마트에서 장을 보는 사진을 올리면서 “멸치, 콩, 자유시간 그리고 토요일 야식 거리 국물 떡볶이까지”라며 “멸콩! 자유!”라고 적었다. 김연주 상근부대변인도 전날 페이스북에 “오늘은 이마땡(이마트)에서 장을 봤다”면서 “달걀, 파, 멸치, 콩을 좀 사봤다. 달파멸콩,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란다”라는 내용의 동영상을 실었다.
언론에는 이밖에도 여야 정치인들의 ‘멸공’ 논평이나 패러디가 다양하게 소개돼 있다. 격한 감정충돌이 아니라 위트로 감정을 삭여가는 모습들이 보기에 아주 좋다. 그 이전에 ‘멸공’의 의미와 당위성을 한 두 마디 말로 명쾌하게 설명해 준 정 부회장이 고맙다. 그리고 조 씨(덩달아 정 부회장 비난 대열에 동참하고 있는 민주당 사람들도) 역시 ‘멸공’에 대한 관심을 유발해 준 공은 평가해줄 만하다. 조 씨가 건드리면 화제 거리가 된다는 걸 다시 입증해 보이지 않았는가.
입을 열기만 하면 조롱과 질타가 쏟아지는 것을 뻔히 알 것이면서 기어이 말을 하고야 마는 그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지 궁금하다. 김예령 전 경기일보 기자의 문 대통령에 대한 질문을 흉내 내자면 그 근거(이 경우는 ‘근원’)이 알고 싶다. 사회적·국민적 경각심을 일깨워주겠다는 살신성인(殺身成仁) 정신의 발로일까? 참을 수 없는 입술의 가벼움 때문은 아닐까?
하긴 그 자신 말고 누가 답할 수 있으랴.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