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수사는 후임 정권의 당연한 임무
지지자 결집한다고 뒤늦게 소란 피워
대선이 코앞인데 여당 후보의 지지율이 지지부진해 걱정해 오던 청와대와 민주당이 지금 기다렸다는 듯이 소란을 피우고 있다.
지지율 1위의 야당 후보가 “집권하게 되면 문재인 정권의 적폐에 대해서도 수사하겠다”고 말한 것을 꼬투리 잡아, 마치 못할 말을 했다는 듯이 난리다. 국민들 눈에는 청와대와 민주당이 만들어내는 이런 소동이 우습고 또 애처롭게 보이기도 한다.
청와대에서 “엄청난 분노”라고 운운하면서 사과하라고 나서고 여당 대선 후보와 그 선거 캠프, 또 국회에 진출해 있는 ‘가신(家臣)’들이 한 마디씩 거드는 통에 세상이 시끄럽다. 겨울 밤 시골 마을의 ‘개 짖기’를 연상시킨다.
청와대나 민주당이 이런 소동을 벌이는 속셈은 뻔하다. 등 돌린 과거의 지지자들을 불러 모으자는 속셈일 것이다.
문 정권 사람들은 이 정권의 지난 시간이 거짓과 위선, 무능과 부패의 5년이라는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이 정권은 선거 때마다 ‘북한 쇼’ ‘방역 쇼’ 등을 벌여 재미를 봐 왔다. 그 결과 깜냥이 안 되는 인사들이 국무위원, 국회의원, 시도의원도 되고 단체장과 공공기관장 자리를 맡아 법치를 무시하고 오랫동안 쌓아온 이 사회의 상식과 공정과 정의의 기준을 낮춰왔다. 때로는 국민들이 이들의 저질스러움에 대신 부끄러워할 정도였다.
이런 여당의 모습에 국민들이 차례로 등을 돌리고 분노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이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정권교체를 이끄는 야당의 대선 후보로서는 “집권 후, 현 정권의 비리가 발견되면 처벌하겠다”라고 공약하는 것 또한 아주 자연스럽다고 하겠다.
모의 단계에서 처벌받는 범죄도 있지만, 대개는 범죄가 이뤄진 뒤 단죄된다. 드러난 범죄에 대해 눈을 감는 게 정의로운가,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는 게 옳은가? 그런데 “비리 척결이라니?”하면서 화들짝 놀라는 제스처를 보이는 청와대와 민주당이 국민들 눈에는 괴기스럽고 너무 가식적으로 보인다.
마치 청와대와 민주당 측 인사들은 부정과 비리, 거짓말과는 담을 쌓고 지난 5년 아니 과거 시간을 살아온 듯이 말하고 있다. 가증스러운 일이다. 국민들이 말을 않고, 눈을 감고 지냈다고 바보가 된 것이 아니다. ‘저들에게는 말이 아니라 선거를 통해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길이 공동체를 지키는 길이라고 믿고 인내해 왔다.
이제 그 때가 왔다.
모든 인간이 죽음을 피할 수 없듯이 이제 정권 심판의 시간이 왔다. 야당 후보의 적폐청산 발언은 그 심판의 시간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나팔소리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이 소리가 싫은가?
지난 5년간 국민들은, 무리하지 말고 지지하지 않은 58%의 목소리도 가슴에 담아 달라고 호소해 왔다. 이 간절함을 외면하고 우리 편만 챙기면 된다고 끝까지 고집 피운 사람이 문 대통령이고 그렇게 한 정당이 민주당 아니었던가?
이제 5년 집권의 마지막 시간을 맞은 청와대와 민주당은 좀 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시험을 준비해온 수험생처럼 눈 감고 생각해 볼 일이다. “혹시 우리가 잘한다고 하다가, 무리하게 한 것은 없는지”를 말이다.
국민은 애초 이렇게 겸손한 정권을 원했다. 국민의 목소리를 천둥소리처럼 듣고, 겸손하고 정직하게 나라를 운영하고 정의와 공정의 정신에 입각해 나라 일을 처리해 주기를 바랐다. 더도 덜도 말고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약속했듯이, 그렇게 말이다.
이 나라가 청와대나 민주당이 생각하듯이 그렇게 부끄러운 나라가 아니다. 대다수의 국민은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없어져야 될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도리어 대단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지금 나라 구석구석 성한 곳이 없다. 정직하지도 유능하지도 않은 얼치기들이 온 나라를 들쑤셔 놓아, 국토가 상처 받고 국민이 고통 받고 있다. 어떤 사람은 명예를 잃고, 어떤 사람은 회사와 재산을 잃고, 어떤 사람은 직장을 잃었다.
또 권력에 취한 막돼먹은 인간들이 내뱉어 놓은 막말로 상처 받은 국민들은 더 많다. 권력을 잡았다고, 힘이 있다고 상식과 공정과 정의를 벗어나는 언행을 해도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 ‘적폐청산’이라는 말을 놓고 벌이는 청와대와 민주당의 소동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권은 전직 대통령 2명과 전 정부의 국정원장들, 대법원장, 공직자와 군 지휘관 등 각계각층의 고위직들을 단죄한다면서 명예를 뺏고, 가정을 깨고, 목숨도 빼앗은 집단이다.
지금 국민들은 ‘이런 오만한 집단들이 한 것만큼만 해 달라’고 야당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그래서 그 인간들이 ‘하늘 무서운 줄 알게 해 달라’고 바라고 있다. 그것이 무리한 바람인가?
보통 국민이 생각하는 정권교체는 그런 것이다. 돈을 나눠 달라는 게 아니다. 무너진 국격을, 부서진 국민의 자존심을 회복시켜 달라는 바람이다.
지금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은 수치상 50~60%다. 지역에 따라서는 80% 가까이 된다. 야당 후보가 그런 건전하고도 소박한 유권자의 희망을 담아내지 못한다면, 그런 후보와 정당은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다.
그건 적폐청산이 아니라, 건강한 대한민국(大韓民國)의 회복이기 때문이다.
글/강성주 전 포항MBC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