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트레이서’(연출 이승영, 극본 김현정)를 보기 전에는 배우 임시완이 연기한 황동주가 탈세하거나 탈세를 돕는 이들을 끈질기게 파고드는 추적자, 유일한 트레이서인 줄 알았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여러 추적자가 보인다. 도드라지는 추적자는 박용우의 몸을 빌린 오영, 고아성이 맡은 서혜영이다.
때로 추적의 행위 또는 추적을 용인하는 것이 실제론 추적자라선지 추적을 피하기 위해선지 헷갈리는 이들도 있다. 배우 손현주가 연기한 인태준 중앙지방국세청장이 그 정점에 있다. 아주 잘 드는 칼, 황동주를 부리거나 날뛰게 두는 이유가 자신이 내쫓고 싶은 사람들을 잘라내려는 개인적 용도인지 자신을 포함해 더 이상 개선의 해법이 없어 보이는 조직 전체를 갈아엎고 그들이 힘을 합해 비호하는 PQ그룹을 베어내기 위한 대의인지 시즌1이 끝난 현재까지도 헷갈린다. 그 헷갈림을 지속시키는 게 배우 손현주의 힘이다.
박호산, 김국희, 전배수, 이규회, 연제욱… 짝사랑하는 배우들을 보는 것도 설레고 전익령, 문원주, 이창훈, 조승연, 박지일…화면에 나오면 미소가 지어지는 배우들을 보는 것도 기분 좋아서 시청했는데. 볼수록 무거운 주제 의식이 따라붙는다. 옳은 일을 할 때 그릇된 수단은 어디까지 용납될 수 있을까, 목적만 바르다면 방법이 틀려도 괜찮은 건가의 문제다.
자꾸만 추적자들을 응원하게 되고, 정의로운 방법으로만 정의를 추구하다 실패한 역사의 일부를 기억하고 있기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악랄한 놈들을 더 지독한 방법으로 혼쭐내는 그들에게 쾌감마저 느껴진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악인의 논리와 방법으로 치사한 것들을 꼼짝 못 하게 하니 재미가 오지다. 아, 돈과 권력을 가지고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굴려온 자들에게 쌓인 분노가 꽤 두텁구나, 새삼 자각한다. 추적자들의 혼쭐을 신나게 즐기다 보니, 동시에 목적과 수단의 관계에 대해 고심이 깊어지고 경계심이 발동한 것이다.
‘트레이서’의 작가와 연출가는 황동주, 서혜영, 오영으로 대표되는 추적자들에게 동력을 주었다. 무턱대고 옳은 일이니까, 정의를 위한 일이니까만 명분으로 삼게 하면 그들의 추진력은 지속적으로 강하기 힘들고 보는 우리도 깊이 공감하기 어려움을 잘 안 것이다.
황동주에게는 내부고발자로 사회정의를 추구하다 목숨을 잃은 아버지의 복수, 서혜영에게는 유망기업이라는 이유로 대기업에게 먹히고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한 가족 가운데 혼자 살아남은 죄의식, 오영에게는 모른 척 눈감은 일 하나가 불러온 비극을 또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고 싶다는 열망을 부여했다. 세 사람은 모두 사회에서 거절당하고 외톨이로 구석에 몰린 개인사를 가지고 있고, 더 이상 피하고 덮지만 않고 살기로 한 세 사람의 엔진은 가히 파괴적이다. 모두를 위한 일이지만 우선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해서, 그 열정의 강도와 식지 않을 지속성이 믿어진다. 그것이 곧바로 수단에 대한 모든 합리화를 가능케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드라마의 몰입도는 한층 강화된다.
처음부터 셋이 의기투합했다면 시시했다. 황동주는 서혜영의 인간적 관심을 함께 불행해지는 길일까 봐 거절하고, 오영과 황동주는 각자의 계획과 전술 속에 서로를 속이기도 하고 대립하기도 하고 은밀히 협력하기도 해서 진실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둘의 반목에 마음 졸이게 한다. 서혜영과 오영의 과거 인연은 처음부터 드러나지 않고, 오영의 체납 대리 변제도 선행인 건지 입막음용 비리인 건지 서혜영조차 대번에 판단하지 못한다.
그래도 같은 기운은 서로를 알아보고 모이기 마련이어서 시즌1이 끝나는 시점엔 아군과 적군이 분명해졌고, 이제 휘몰아칠 공격과 만만치 않은 상대의 응전이 펼쳐질 시즌2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시즌2에서 분명 경계 없는 수단에 대한 해법도 나오리라 기대한다. 각자의 개인에게는 자신의 목적이 ‘정의’로 느껴지기 ‘십상’이어서 자칫 잘못된 선택을 합리화하는 명분을 ‘트레이서’가 줄 수도 있음을 제작진이 이미 경계하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활력 넘치는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긴장감, 액션 못지않은 추적 활극이 26일 재개되는 ‘트레이서’를 향한 기대를 키운다. 유달리 표정 연기가 많은 임시완과 고아성 그리고 이규회, 연제욱, 이창훈 배우를 지켜보는 재미, 표정 변화 없이도 시청자 마음 쥐락펴락하고 눈길 붙드는 손현주, 박용우, 김국희, 추상미 등의 배우를 다시 만나는 즐거움이 크다.
MBC는 3년 전 방영한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도 그랬고, 지난해 ‘미치지 않고서야’에 이어 이번 ‘트레이서’도 마치 국민의 혈세를 지원받는 공영방송 KBS가 제작해야 할 것 같은 드라마를 종종 선보인다. 그동안 카메라가 잘 들어가지 않았던 곳, 만연한 문제이고 바로 잡아야 하는 골 깊은 병폐지만 관심이 적었던 이야기를 안방극장으로 데려온다. 시청률을 무시할 수 없지만, 어떠한 이야기를 통해 일궈낸 성공인가가 MBC를 ‘드라마 왕국’으로 부활시키는 의미를 짙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