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적 공분 자아내는 아동학대 범죄 여전히 봇물…판사들 솜방망이 처벌에 비난 가중
대법 양형위, 피해 회복·재범 방지 위한 자발적 노력 여부 등 조사 통해 '진지한 반성' 판단키로
법조계 "재판부가 의지 보인 것, 의미 있는 변화…개별 사건에 세부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한계"
"실질적 의미 가질 수 있을까? 결국 현장에서 판사들이 어떻게 운영하고 해석할 지에 달려 있어"
국민적 공분을 자아내는 아동학대 범죄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시대와 현장의 변화에 뒤처진 판사들의 안일한 솜방망이 처벌도 한 몫하고 있다는 비난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 아동학대 범죄의 감경 사유 가운데 하나인 '진지한 반성'의 조건을 더욱 까다롭게 판단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법조계는 양형위의 판단을 환영하면서도 가해자의 '진지한 반성' 기준이 여전히 모호하고 추상적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 2부는 지난 17일 생후 2주 된 아들을 던지고 때려 결국 숨지게 한 친부에게 징역 25년형을, 친모에게는 징역 7년을 확정했다. 부부는 지난해 2월 전북 익산시 한 오피스텔에서 신생아인 아들을 침대에 던지고 손바닥으로 얼굴 등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부부는 폭행당한 아이가 숨을 헐떡이고 경기를 일으키는 등 이상증세를 보이는데도 지인을 집으로 초대해 술을 마시고 외출하기도 했고, 유튜브로 아동학대 사건 관련 언론 보도를 시청하고 '멍 없애는 법'을 검색한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날 다섯 살 조카의 머리, 엉덩이 등을 폭행한 뒤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40대 여성이 구속되기도 했다. 여성의 조카는 폭행 다음 날 몇 차례 구토를 한 뒤 집 화장실에서 쓰러졌고 다른 가족이 신고해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숨졌다. 조카의 몸 곳곳에선 멍 자국도 발견됐다.
이처럼 아동학대 범죄가 끊이질 않자 양형위는 지난달 24일 제114차 회의를 열고 아동학대범죄 양형기준 수정안을 의결했다. 특히 양형위는 이번 회의에서 '진정한 반성'의 의미를 처음으로 "범행을 인정한 구체적 경위, 피해 회복 또는 재범 방지를 위한 자발적 노력 여부 등을 조사, 판단한 결과 피고인이 자신의 범행에 대해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라고 규정했고, 양형위 자문위원들도 찬성했다. '진지한 반성'을 함부로 인정하면 법원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가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법조계 전문가들은 진지한 반성을 새롭게 정의 규정한 것은 의미 있는 변화이지만 여전히 그 기준이 추상적이고 모호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영미 변호사는 "예전에는 범행 자백 여부만을 갖고 (반성을) 단편적으로 판단했다면 이제는 진정한 의지를 갖고 반성하는지,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떻게 할 건지 등 다각도로 보겠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라며 "재판부가 의지를 갖는 것만으로도 한 걸음 나아갔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인 서혜진 변호사는 "구체적인 상황과 요소로 세분화해 (가해자가) 정말 반성하는지를 보겠다는 점에선 이전보다 훨씬 앞서 나갔다"며 "하지만 진지한 반성 자체가 여전히 추상적인 개념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 변호사는 "진지한 반성이라는 감경 인자가 있어 (가해자의) 반성문을 대필해주는 업체가 생겨나거나 많은 양의 반성문을 무작정 제출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진지한 반성이라는 요소 자체를 양형기준에서 삭제하고 양형위가 이번에 제시한 규정과 같은 구체적인 하위 개념들을 판단 기준에 포함하는 게 훨씬 더 적절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허용 변호사도 "상당히 의미 있고 바람직한 개선안"이라면서도 "다만 어느 정도 일괄적인 기준을 마련하자는 취지이기 때문에 개별 사건에 적용할 세부적인 내용까지는 규정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실질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란 문제는 결국 앞으로 현장에서 판사들이 어떻게 운용하고 해석할지에 달려있다"고 덧붙였다.
허 변호사는 "이번 변화를 시작으로 재판부가 개별 사건마다 진지한 반성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데이터를 쌓아 갈 수 있을 것"이라며 "이것을 나중에 양형 기준 개선안에 반영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아울러 "아동학대 관련 교육을 열심히 받았는지, 피해 아동에게 미안함을 어떠한 방식으로라도 지속해서 표현했는지, 피해 아동 외 다른 양육 아동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는지 등도 진지한 반성 판단의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양형위는 자문위원들의 의견을 반영해 3월에 열릴 제115차 회의에서 아동학대 수정 양형 기준을 최종 의결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