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 창업주 김정주, 지난달 말 미국서 별세
'마비노기', '바람의 연' 등 국내 PC온라인 게임 시대 열어
'제2의 디즈니' 꿈꿔…어린이 사회공헌 적극
국내 게임업계 벤처 신화 주역으로 평가 받았던 고(故) 김정주 NXC 이사가 향년 54세로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26세에 게임사 넥슨을 창업한 국내 벤처 1세대로, '카트라이더', '크레이지 아케이드', '바람의 나라' 등 한국 PC온라인 게임 시장을 열었다. 이후 2020년 넥슨을 연 매출 3조원의 국내 대표 게임사로 성장시키는 등 게임산업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NXC 측은 1일 "넥슨을 창업한 김정주 NXC 이사가 지난달말 미국에서 유명을 달리했다"며"고인은 이전부터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으며,최근 들어 악화된 것으로 보여 안타까울 뿐"이라고 밝혔다.
1968년생으로,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1986년 2월 서울 광성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카이스트 대학원에서 전산학과 석사를 취득한 후 박사과정을 이어가던 중 6개월 만에 그만두고 1994년 넥슨을 창업했다.
그는 국내 대표적인 벤처 1세대 기업인이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86학번으로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 투자책임자(GIO)와 동기다. 두 사람은 카이스트(KAIST) 대학원 시절 기숙사 룸메이트이기도 했다.
김 창업주는 1996년 세계 최초의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를 개발해 흥행에 성공했다. 이후에도 ‘메이플스토리’와 ‘마비노기’, ‘카트라이더’, '크레이지 아케이드' 등 온라인 게임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넥슨을 국내 최대 게임업체로 성장시켰다.
특히 2008년 중국에서 흥행 대박을 터뜨린 ‘던전앤파이터’를 개발한 네오플, 2010년 이후 ‘군주’를 개발한 엔도어즈와 ‘서든어택’을 개발한 게임하이를 잇따라 인수하는 등 인수합병(M&A)에서도 남다른 능력을 발휘했다. 게임과 관련 없는 레고 온라인 거래 사이트 '브릭링크', 유모차 브랜드 '스토케' 등을 인수했고, 전기차나 달탐험 관련 스타트업에도 투자했다. 그가 개발자 보다 '사업가'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고인은 2011년에는 넥슨 이름을 넥슨코리아로 바꾸고 넥슨 일본 법인을 도쿄거래소에 상장해 같은해 게임 업계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이어 2017년 넥슨은 연매출 2조원을 넘어서며 게임업계 '맏형'으로 자리 잡았다. 2020년에는 '바람의 나라:연', ' V4', '카트라이더:러쉬플러스' 등 모바일 게임 흥행에 성공하면서 업계 최초로 연 매출 3조원을 돌파했다.
'제2의 디즈니' 꿈꿔…"세상 모든 아이들이 아프지 않길 바라" 사회공헌 의지
김 창업자는 막후에서 경영활동을 하는 게임업계 대표 '은둔형 경영자'로 꼽힌다. 고인이 회사에 들렀다 경비는 물론이고 직원들도 못 알아봐 쫓겨났다는 일화는 업계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그는 2005년 6월 최고경영자(CEO)로 나서기 전까지 10여년간 경영 일선에 나타나지 않았다가 대표 취임 1년 5개월여 만인 2006년 11월 넥슨홀딩스(현NXC) 대표로 물러났다.
이어 지난해 7월 김 창업주는 NXC 대표 이사직에서도 물러났다. 이재교 브랜드홍보본부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알렉스 이오실레비치를 글로벌 투자총괄 사장으로 영입해 ‘투톱’ 전문경영인 체제로 개편했다.
당시 그는 “보다 자유로운 위치에서 넥슨컴퍼니와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길을 찾겠다”고 밝히며 미래 산업 투자와 사회공헌 활동에만 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그는 넥슨을 미국의 디즈니와 같은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싶어 했다. 그의 넥슨 창업 과정을 다룬 책 ‘플레이’에서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돈을 내는 디즈니의 100분의 1이라도 따라가고 싶다”고 언급한 바 있다. 김 창업주가 지난 2019년 넥슨 매각을 추진할 때도 디즈니는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되기도 했다.
2020년에는 월트디즈니 최고전략책임자 출신의 케빈 메이어 신임 사외이사를 선임했다. 작년 7월에는 엔터테인먼트 사업 전문가 닉 반 다이크를 수석 부사장 겸 최고전략책임자(CSO)로 선임하고 '넥슨 필름 & 텔레비전' 조직을 신설했다. 이어 로벌 엔터테인먼트 제작사 AGBO에 4억 달러 규모의 전략적 투자를 단행했다.
그는 사회공헌 활동에 있어서는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낼 정도로 각별히 힘썼다. 고인은 넥슨 어린이 재활 병원 행사에 꾸준히 참석할 정도로 어린이의 건강을 위한 사회공헌 활동에 관심을 기울였다.
실제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가 이날 사내공지한 애도문에 따르면 "(김 창업주는)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아프지 않기를 바랐고, 행복한 시간과 추억을 경험하며 건강하게 성장해 나가는 것에 진심이었다”며 “이 사회에서 사랑받는 회사를 만들어 나가자는 것도 그분의 생각이었다”고 한다.
넥슨 신화의 주역이었던 고인의 별세 소식에 게임업계도 비통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가 사랑하는 친구가 떠났다"며 "살면서 못느꼈던 가장 큰 고통을 느낀다"고 애도를 표했다.
한게임 창립 멤버로서 게임업계 대표 벤처 1세대인 남궁훈 카카오 대표 내정자는 "업계의 슬픔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밝혔다.
넥슨의 한 직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개발자의 꿈을 꾸게 해줬고 작지만 회사의 일원으로서 기여할 수 있어 너무 영광이었다"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