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안, 尹정부에 '원자력 정책 비전' 제시
"급격히 몰락한 국내 원전 생태계 복구 가장 시급"
이승만~박근혜정부가 축적한 원전 경쟁력, 文정부때 급격히 몰락
대한민국이 원자력 강국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이승만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역대 정부가 원전 투자 기조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란 개념에 눈을 뜬 이승만 정부는 1956년 문교부 산하에 원자력과를 신설했다. 그해 7월 워커 시슬러 미국 전력협회 회장을 만난 이 대통령은 원자력을 이용한 전력난 해결 방안을 듣고 감탄하며 원자력 엔지니어 양성을 결심했다.
원전 개발과 지원 정책은 보수당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역대 진보 정권들도 원자력 발전에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최소한 원자력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친원전 정책을 추진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신규 원전 4기 건설을 허가하면서 전력 예비율 확보에 일조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김대중 대통령의 문민정부도 원전의 효용을 인정하고 적극적인 지원 정책을 폈다. 문민정부에서 최연소 과학기술부 장관을 역임한 다선 국회의원 출신의 김영환 전 의원은 지난해 "탄소 제로의 그린 에너지인 원전을 포기하면서 어떻게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냐"며 탈원전을 추진하는 현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이와 같이 원자력 개발에 대한 역대 정부의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이 우리나라가 원자력 강국이 되는데 주춧돌이 됐다는 게 에너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헌정사상 최초 탈(脫)원전 정책을 추진한 문재인 정부 5년의 시간은 이를 반증하기에 충분하다. 유례없는 탈원전 정책에 원자력업계는 융단폭격을 맞았고 국가경쟁력을 훼손한 유무형의 손실은 천문학적으로 분석됐다.
원자력 산업계 직격탄…안보 위기 부르는 원자력 두뇌의 해외 유출
탈원전 정책으로 원자력 산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원전을 주력 기저전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발언에도 원전 납품업체들은 여전히 침체된 분위기다. 원전주가 급등하는 등 장밋빛 희망을 꿈꾸는 증권시장 분위기와는 대조적이다. 특히 중소 원전업체들은 이미 폐업 수순을 밟은 상태라 원전 생태계를 복구하는데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는 회의적인 시각이 팽배하다.
국내 원자력 종사자 감소도 두드러졌다. 원자력 핵심 인력이 밀집된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전력기술, 한전KPS 등 3개 공기업에는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선언한 2017년 한 해에만 120명이 사표를 썼다. 이는 정년퇴직 등을 제외한 자발적인 퇴직자만 집계한 숫자로, 2016년 93명에서 크게 늘어났다.
원자력 두뇌들의 해외 유출 문제도 심각하다. 3개 공기업 원자력 고급인력의 해외 이직 건은 2015~2016년에는 1명 뿐이었으나 2017년에는 9명으로 늘었다. 원자력공학 박사학위를 마친 인력도 전망이 암울한 국내 원자력 기관이나 기업에 취업하기보다 러시아 로사톰, 중국 광핵집단공사(CGN), 미국 뉴스케일사 등 비전 있는 해외 원전 기업으로 떠나기를 바라고 있다는 전언이다.
원자력 전공 학생도 급감했다. 한국원자력산업협회에 따르면 원자력학과를 개설한 국내 17개 대학에서 학부와 석박사 신입생은 2016년 802명에서 2020년 524명으로 34.7% 감소했다. 같은 기간 석사는 182명에서 106명으로 줄었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는 2018년에 입학한 신입생 정원 32명 중 6명이 1년 새 학교를 떠났다.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의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는 2012~2016년 5년간 94명의 신입생이 입학했지만 2017~2021년 5년간 31명으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울산과학기술원(유니스트) 원자력공학과 역시 진학생이 87명에서 19명으로 급감했다. 이러한 추이를 고려하면 친원전 정책을 천명한 차기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당분간 국내 원자력 인력 수급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원전 두뇌들의 엑소더스(대탈출)는 국내 원자력산업의 경쟁력 저하를 불러올 뿐만 아니라 안보 차원에서 커다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 나온다. 지난 50년간 세계 각국에서 원자력을 이용한 무기화가 시도된 점을 감안하면 원자력 핵심 기술이 유출됨으로서 국가 안보와 직결된 커다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차기 정부가 원자력 생태계 회복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尹 복(復)원전 선언에…다시 기지개 켜는 K-원전업계
윤석열 당선인이 '탈(脫)원전'에서 '복(復)원전'으로 180도 전향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고사 상태에 내몰렸던 원전 산업계 전반에도 차츰 온기가 돌고 있다. 2010년경 미국을 비롯해 중국 인도 UAE(아랍에미리트) 등 신흥국이 잇따라 원전 건설에 나서며 전세계적으로 불었던 원전 르네상스 분위기가 국내에 재현될 것이란 기대감도 나온다.
원전 정책을 탄력적으로 추진하려면 무엇보다 원자력 생태계를 복원하는 정부 차원의 노력이 절실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윤 당선인은 지난 15일 경북 울진 산불 피해 현장을 찾은 자리에서 "5년 동안 방치된 신한울 원전 3·4호기 건설을 즉각 재개하겠다, 공사를 서두르겠다"며 "또 한미 원자력 동맹을 통해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수출하고 관련 일자리도 10만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윤 당선인이 '탈원전 폐기' '원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에 확고한 의지를 드러내면서 정부와 유관기관들의 개편 작업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새 정부 기조에 맞춰 재탄생할 것을 주문받은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조직과 인력 구성 등의 재편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재생·탈원전 정책을 뚝심 있게 추진해온 산업통상자원부 역시 재빠른 태세 전환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인수위 관계자는 "산업부가 인수위에 제출한 업무보고 문건을 보면 작성한 주체가 산업부가 맞나 싶을 정도로 문재인정부의 탈원전·신재생 기조를 신랄하게 비판해놨다"며 "이를 감안하면 새 정부의 원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에 별다른 의견 충돌 없이 수행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귀띔했다.
대통령의 비전 제시에 따라 원전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력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인 공약 가운데는 '범정부 원전수출지원단'을 꾸려 원전 산업체계 개편 방안을 마련하고 수출체계 일원화 방안과 원전 건설·운영 분야 민간참여 대책을 수립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관련 전문가들은 차세대 원전으로 꼽히는 소형모듈원전(SMR) 개발과 원자력 수소기술 개발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수위원장을 역임하는 만큼 SMR에 대한 그의 철학과 소신이 정책에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안 전 후보는 산업부 내에 별도로 차관보급의 원전 정책 책임자를 임명하고, SMR 기술개발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신속히 마무리해 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원전최강국 청사진②]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