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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 영리병원서 내국인 진료 가능 판결…"환자로 돈벌이?" vs "일자리 창출"


입력 2022.04.08 05:09 수정 2022.04.08 01:32        정채영 기자 (chaezero@dailian.co.kr)

제주지법 "영리병원 '내국인 진료 제한' 위법" 판결…모든 영리병원서 내국인 진료 허용 가능성

전문가 "건강보험 지정 피할 수 있는 영리병원들이 내국인 진료하면 의료비 폭등 당연"

"영리병원, 돈 안 되는 필수 의료과목 진료에서 퇴출할 것…병원 존재 목적 바뀔 것"

"일자리 창출과 의료서비스 품질 향상 등 순기능도 존재"…해외서는 의료관광 이미 산업

제주 서귀포시 옛 녹지국제병원 전경 ⓒ연합뉴스

국내 첫 영리병원으로 추진된 제주녹지국제병원에서 내국인 진료를 제한한 것은 위법하다는 1심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판결이 확정되면 녹지 측의 막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물론, 모든 영리병원에서 내국인 진료가 허용될 수 있어서 후폭풍이 예상되는 가운데, 일자리 창출이나 의료서비스 품질 향상 등 영리병원의 순기능도 작지 않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제주지법 행정1부(김정숙 수석부장판사)는 5일 중국 녹지그룹의 자회사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이하 녹지제주)가 제주도를 상대로 제기한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조건 취소 청구 소송'에 대해 5일 "피고가 원고에 대해 한 녹지병원 개설 허가 조건을 취소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번 소송은 제주도가 2018년 12월 5일 녹지제주에 대해 내국인을 제외하고 외국인 의료 관광객만을 대상으로 녹지병원을 운영하도록 하는 조건부 허가를 내면서 시작됐다.


영리병원은 말 그대로 기업처럼 이윤을 남겨 투자자에게 배당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의료기관이다. 의료기관이 주식회사처럼 민간자본 투자를 받고 결산 시 투자자에게 이윤을 배당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제주특별자치도와 경제자유구역을 제외하고 영리병원을 법으로 금지해 왔는데, 2018년 12월 제주에서 처음으로 녹지병원이 영리병원 허가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우선, 아픈 사람을 치료한다는 공공목적을 가진 병원들이 기업처럼 이윤을 추구하게 될 거라며 치료비 폭등을 우려했다.


정형준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선례가 남겨졌으니 앞으로 우리가 영리병원을 만들 때 내국인 진료를 불허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과거에는 영리병원을 만들 때 외국인 관광객 등 외국인을 받아들여 돈을 벌 수 있다는 명분이었는데 그 명분과 상관없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원래는 우리나라에 없던 실손 보험이 들어오면서 비급여 시장에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며 "가격이 결정되지 않고 무제한으로 진료할 수 있으면서 건강보험의 지정을 피할 수 있는 영리병원들이 내국인 진료를 하게 되면 의료비 폭등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도 "영리병원은 돈이 안 되는 필수 의료과목을 진료과목에서 퇴출할 것"이라며 "필수진료를 담당하는 의료기관들은 거대 자본을 앞세운 영리병원들의 횡포에 밀려 존립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걱정했다.


김종명 내가만드는복지국가 보건의료팀장은 "이번 판결이 의료민영화의 초석이 될 수 있다"며 "하나의 구멍이 생기면서 경제자유구역에 계속해서 영리병원이 들어설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팀장은 "지금은 건강보험이 적용이 안 되지만 나아가 건보 적용을 요구할 수도 있다"며 "녹지병원이 성공 모델이 되어버리면 결국엔 이득을 추구하는 병원이 늘어나고 병원의 운영 원칙이 바뀌게 될 것이다. 환자의 치료라는 병원의 존재 목적이 바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에도 불구하고 영리병원의 진료를 제한하려면 법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정 위원장은 "정부가 영리병원을 반대할 것이라면 정치권에서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에 대한 개정안을 내면 된다"며 "경제자유구역에도 비영리병원만 설립할 수 있도록 법으로 막자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순기능도 무시 못해…"태국‧말레이시아, 의료관광교육이 이미 하나의 산업"


일각에서는 영리병원 설립으로 얻을 수 있는 일자리 창출과 의료서비스 품질 향상 등 순기능도 무시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2018년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영리병원 설립 및 허용에 대한 규제 개혁 과제를 정부에 건의했는데, 당시 의료산업에 대한 규제 개혁이 이뤄질 경우 18만7000~37만40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의료서비스가 하나의 산업이 되면 경쟁을 하게 되니까 의료서비스 품질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며 "병원에서 좀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 교수는 "태국이나 말레이시아는 이미 교육·의료·관광이 하나의 산업으로 인정되고 있어 일자리 창출이나 경제에 활성화에 도움이 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외국인 투자자본이 들어와야만 영리병원 설립이 가능한데 오히려 국내 투자를 통해서라도 설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채영 기자 (chaezero@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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