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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령 신인상’ 도로공사 이윤정이 닦은 길...누군가에는 발판


입력 2022.04.19 08:18 수정 2022.04.19 08:22        김태훈 기자 (ktwsc28@dailian.co.kr)

실업팀 출신 최초로 여자배구 신인상 수상...역대 최고령

더 큰 도전 앞에 두고 망설이는 후배들에게 희망 선사

한국도로공사 이윤정. ⓒ 한국배구연맹

“올 시즌 목표는 V리그 최초의 실업팀 출신 신인왕입니다.”


연말에야 숨겨왔던 바람을 밝혔던 ‘중고 신인’ 세터 이윤정(25·한국도로공사)이 목표를 달성했다.


이윤정은 18일 서울 그랜드하얏트서울에서 열린 '도드람 2021-22 V-리그' 시상식에서 여자부 신인상을 수상했다. 기자단 투표 총 31표 중 17표를 받은 이윤정은 정규시즌 203점을 찍은 정윤주(흥국생명)를 제치고 신인상을 품었다.


실업팀에서 뛰다 프로에 입단한 신인이 수상한 적은 이윤정이 처음이다. ‘경력직 신인’ ‘늦깎이’로 불린 이윤정은 6년 아래 후배들을 제치고 역대 최고령이자 최초의 ‘중고 신인’ 수상의 주인공이 됐다. "실업팀에서 쌓았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는 소감도 전했다.


실업팀에서 뛰고 있는 후배들에게나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이윤정은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희망을 쐈다.


이윤정은 고교 시절 대회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될 만큼 발군의 재능을 뽐내면서도 2015-16 드래프트에 지원하지 않고 실업리그 수원시청 배구단에 입단했다. ‘쟁쟁한 선배들에 밀려 웜업존에 머무르는 것보다 당장 더 많이 뛰고 싶다’는 생각이 컸던 이윤정이 정상적으로 드래프트를 거쳤다면 강소휘(GS칼텍스)와 데뷔 동기가 될 뻔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윤정의 생각도 조금씩 바뀌었다. “(실업리그에서 뛰고 있는데)같이 뛰던 애들이나 후배들이 프로리그에서 뛰는 것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나도 (드래프트에)나가서 프로에 가볼 걸 그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밝힌 이윤정은 결국 프로로 진출했다.


이윤정은 수원시청을 지난해 한국실업배구연맹전 우승으로 이끈 뒤 2021-22 KOVO 신인 선수 드래프트 2라운드 2순위로 한국도로공사의 지명을 받아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즉시 주전감’이라고 평가한 김종민 감독의 선택이었다.


지난 시즌 주전 세터로 활약한 이고은이 오는 시즌도 팀을 이끌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시즌 초반 고전했다. 김종민 감독이 구상했던 한 템포 빠른 토스와 플레이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답답했던 김종민 감독은 2라운드 중반부터 이윤정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경력직 신입’답게 이윤정은 프로 데뷔 시즌부터 맹활약했다. 세터로서 눈에 확 띄었다. 지난해 11월 21일 KGC인삼공사전에서는 첫 MVP에 선정됐다. 사흘 후 치른 GS칼텍스전에서는 경기 중 손목 부상을 안고 투혼을 불사르며 또 MVP에 선정됐다.


이윤정은 실업 무대서 쌓은 안정된 경기운영능력과 반 박자 빠른 토스는 켈시-박정아 등을 살리며 팀 공격력을 끌어올렸다. 이윤정이 선발 출전하기 시작한 이후 팀은 공격에 속도가 붙었고, 창단 이래 최다연승(12)까지 찍었다.


서브할 때마다 심판에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해 ‘유교세터’ ‘꾸벅좌’라는 애칭까지 붙을 만큼 팬들의 사랑도 많이 받았다. 생애 처음으로 올스타전에도 참가했다.


신인상 수상한 이윤정. ⓒ 한국배구연맹

그러나 시즌 중반을 넘어서며 슬럼프에 빠졌고, 주전 세터였던 이고은에 밀려 출전시간도 많이 줄었다. 경기력도 눈에 띄게 떨어졌다. 박수만 보낼 줄 알았던 팬들 입에서 따가운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몇 차례 악플을 경험한 이후에는 SNS를 열기도 겁났다. 스스로도 답답해 자책하는 내용의 글도 썼다.


포기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프로 입단 후 처음 겪어본 힘겨운 시간이었다. 그럴 때마다 “언니, 오래 오래 프로에서 버티고 뻗어나가 주세요”라는 실업팀 후배들의 응원과 꿈을 다시 한 번 새겼다. 결국 이윤정은 이고은과 주축 세터 역할을 하며 30경기에 출전해 세트 7위(세트당 7.802개)를 기록했다. 신장은 작지만 안정적인 토스와 패턴 플레이로 도로공사의 정규리그 2위에 큰 힘을 보태고 신인상까지 품었다.


실업리그 출신의 이윤정이 쓴 ‘중고신화’는 늦게라도 프로에 도전하고 싶은 후배들에게 희망을 뿌렸다. 현재에 안주하거나 도전이 두려워 망설이는 후배들에게는 큰 용기를 불어넣었다. 후회 없는 결단과 책임감으로 한국 여자 프로배구 ‘최초’의 주인공이 된 이윤정이 닦은 그 길은 이제 누군가에게는 발판이 될 수 있다.

김태훈 기자 (ktwsc28@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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